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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수공예와 여성성의 동일화를 넘어…기성 권위에 맞선 잠재력 확인
이영순, 한지 공예 ‘지승’의 현대화에 앞장…세계적이고 지역적인 혼성적 미감으로 ‘공예 한류’ 이끌어장응복, 민예에 특별한 가치 부여하며 무늬 디자인 브랜드 구축…전통 모티브의 현대적 차용 돋보여두 작가의 실용성·예술성·작품성 아우르는 열린 태도, 여성적 가사 문화의 맥을 동시대적으로 이어가1. 수공예와 페미니즘 지난해 1월 시작한 본 연재 기획 기사가 올해 4월 총 17회로 종료된다. 이번 최종회는 맺음말을 대신해 공예를 화두로 삼았다. 그 까닭은 전통 사회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익명의 여성들 노동, 특히 그들의 가사 행위와 살림 노동이 공예 발전의 큰 힘이 되었고, 여성들의 접근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수공예나 민예가 페미니즘 미술의 정치적·미학적 토대를 만드는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부분은 특별한 장비나 전문 기술이 요구되지 않는 천, 바느질, 자수, 뜨개질과 같은 가사적 수공예나 대부분 수공으... -
(16)‘이념과 미학’의 사잇길에서 한국 근대 여성화단 일군 두 거장
여명기 이끈 선구적 서양화가 나혜석민족주의 계몽운동가와 방종한 자유주의자 사이에서 방황한 지식인페미니스트 문필가이자 각광받는 화가로 인생 황금기 누렸지만페미니스트 화가로서는 시대와 장르의 벽 넘지 못하고 ‘과제’ 남겨1. 나혜석과 천경자에 대한 경의3월 연재는 15번째 복식조 작가로 근대기의 두 선구적 여성작가 나혜석(1896~1948)과 천경자(1924~2015)를 초대했다. 대략 1980년대 이후의 현대 페미니즘 미술을 다루어 온 연재가 이번 호로 근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환 구조를 이루게 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역사적 연속성에 대한 의미 부여와 함께 전설적인 두 여성화가에 대한 경의가 자리했다.나혜석은 근대 한국 화단의 문을 연 대표적인 여성화가이자 동시대의 민족주의, 자유주의 사상에 경도된 투철한 페미니스트였다. 서양화 전공의 신여성이자 시대를 앞선 페미니스트로서 그가 남긴 공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나혜석은 여... -
(15)망명자, 이민자, 소수자, 여성…작품에 아로새긴 소외의 굴레
1. 후기식민주의 페미니즘환상의 복식조 14라운드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디아스포라 작가들인 고(故) 차학경(1951~1982), 민영순(1953), 윤진미(1960)의 작업을 후기식민주의 페미니즘 시각에서 다뤄본다. 후기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은 각기 독자적인 담론이지만, 인종과 젠더, 민족 정체성과 성 정체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식론적, 실천적으로 상호 연대하며 후기식민주의 페미니즘 논의를 이끌어낸다.유년기 북아메리카로 이주한 차학경, 민영순, 윤진미는 망명의 상실감과 이중 정체성의 혼란을 탈식민적 작품세계로 일궈낸 대표적인 1세대 이산 작가들이다. 자신이 속한, 그러나 결코 속할 수 없는 장소에서 인종적, 국가적, 젠더적 타자로서 이중 소외를 겪는 이산 여성 작가들의 작업은 생래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3인 작업의 진가는 정치적 면모보다는 자신의 모태공간으로부터 일탈하여 겪게 되는 공간과 언어의 불일치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미학적 비전과 작... -
수수께끼 같은 난해함과 모호함 속 페미니즘 그 이상의 미학이 있다
1. 페미니즘 계보의 ‘열외’ 작가환상의 복식조 13라운드 작가는 정서영(1964)과 양혜규(1971)다. 200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해 온 이 두 작가는, 다르지만 비슷한 가족 구성원처럼, 교차하고 중첩하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닮아 있다. 유사성의 큰 줄기는 쉬운 이해를 거부하는 비타협적 태도이다.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 관측이 어려운 블랙홀과 같이 난해한 이들의 작품은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다른 한편으로 첨예한 감성과 지성, 비상한 통찰력과 탐구력으로 새로운 예술영역을 개척하며 관객을 개안시키는 양면가치를 내포한다. 이 두 작가는 어떤 사조나 이념에 속하지 않는 독립성을 견지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그러니 페미니즘이 이들의 일차적인 관심사가 될 수 없다. 물론 젠더 의식이나 여성적 감수성이 부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이들 작업은 페미니즘 독해로는 충분치 않은 미학적, 정치적 진폭과 특성이 두드러진다. 그 자체가 여성 화단을 비옥하... -
(13)남성 본위 화단에 맞서 투쟁…집단화로 권력 획득한 ‘공생의 실험’
1. ‘콜렉티브’ 연대 활동여성성·여성미학 강조 ‘표현그룹’반모더니즘 입지 공고히 한 ‘여미연’황금의 복식조 12라운드는 미술계 페미니스트 ‘콜렉티브’의 연대 활동에 관한 것이다. 콜렉티브는 공동의 목표와 가치를 지닌 특정 집단의 자발적 모임을 지칭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과 저항정신으로 변화와 개혁을 꾀한다는 발족 동기에서 동호인 성격의 일반 그룹 활동과 구별된다. 실로 콜렉티브는 가장 효력 있는 행동주의 기제 중 하나이지만, 법적·제도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거나 해체되기 십상이다. 단명한 까닭에 더욱 강력한 결속력을 갖는 것이 콜렉티브의 속성이기도 하다.페미니스트 콜렉티브는 남성 본위 화단의 모순과 한계에 맞서 투쟁한다는 태생적 명분과 절실한 젠더특정적 의제로 남성 콜렉티브보다 더 쟁의적이고 저항적인 운동을 펼쳐왔다. 이들의 치열한 연대 활동이 오늘날 여성/여성주의 미술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추... -
(12)불안정성이 지닌 전복적 잠재력…부계적 문명의 벽을 허문다
1 일탈적 정치예술과 저항예술황금의 복식조 11라운드는 임민욱(1968), 송상희(1970), 김아영(1979)을 초대했다. 이들은 근대주의 진보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건설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현대적 개념의 정치예술을 수행하는 한편, 형식주의 모더니즘으로부터의 일탈을 위한 다매체 실천으로 역사적 저항예술의 계보를 이어간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예술은 정치성이 정제된 비/탈정치적인 것이며, 이들의 저항의식 역시 은유와 의역의 수사로 미학화된다. 또한 재현과 젠더, 차이의 문화적 코드에 주목하며 담론적·실천적으로 페미니즘과 공유 지대를 형성, 현대미술과 페미니즘 미술의 양 영역을 확장·심화시킨다. 2 임민욱, ‘내 안의 바틀비’ 임민욱 ‘관조…건너뛰기의 미학’무력·게으름으로 ‘거부’ 수행하고은폐적 존재들의 역사에 시선 돌려임민욱의 정치사회적 문제의식과 시대비판적 태도는 자신을 둘러싼 일상적 삶과 실존 경험에 기인한다. 그러한 까닭에, 비... -
(11)여성의 퀴어적 충동·욕망에 초점…페미로 재편한 ‘젠더 정치학’
1 퀴어 정치학황금의 복식조 10라운드 초대작가는 한국의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인 정은영(1974), 흑표범(1980, 장맑은), 김나희(1991)다. 이번 연재는 이들의 작업을 통해 현대 페미니즘의 첨예한 화두 중 하나인 퀴어 정체성의 문제를 다뤄본다. 퀴어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 트랜스젠더(LGBT) 등 성소수자의 범주를 통칭하거나 그것의 대안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20세기 초반 비하 명칭이었던 퀴어가 1990년대에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퀴어 정치학”으로 개념화되면서 전복적인 반항문화로 코드화되고 있으며, 이와 함께 문학, 축제, 영화, 미술 등 문화 전반에 새로운 주제의식과 창작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동기가 되고 있다.정은영은 1990~2000년대 운동권 중심의 문화주의 ‘영페미니즘’ 토양에서 성장, 오늘날까지 담론적, 실천적 투쟁을 실천하고 있는 ‘페밍아웃’ 페미니스트다. 그는 젠더 정치학 입장에서 부계구조로부터의 전략적 분리를 요구... -
(10)도자기 파편, 비누, 머리카락…탈인습 ‘문화적 번역’의 매체가 된다
1. 재료 발굴과 조형 실험 환상의 복식조 9라운드의 초대작가는 이수경(1963), 신미경(1967), 이세경(1973)이다. 이들은 3인 3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재료 발굴, 매체 확장, 방식적 실험을 통해 시각 언어와 조형 코드의 진폭을 넓히고 있는 점에서 한데 만난다. 매체적, 조형적 실험으로 기존의 재현 체계를 변화시키고 주류 미술 경향과 차별화되는 여성적이며 여성주의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들에 의해 여성미술의 다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깨진 도자기 조각, 비누라는 뜻밖의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미술사 전통과 재현적 관례에 도전하는 이수경과 신미경, 이들에 이어 이세경은 머리카락으로 두 선배의 탈인습 이데올로기에 합류한다. 이들은 버려진 것, 비예술적이고 일상적인 것을 재료로 새로운 예술품을 탄생시킨다. 우리가 이들의 작업을 혁신적이라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이들의 조형 실험이 낯설고 새로운 미학적 경험을 안겨줄 뿐 아니라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비정... -
(9)상실과 차별의 시대…지금, 여기 ‘작은 이야기’로 전하는 ‘큰 울림’
1 알레고리 작품세계환상의 복식조 8라운드는 김명희(1949), 김원숙(1953), 조영주(1978)를 초대했다. 같은 세대에 속하는 김명희와 김원숙은 현대 여성화단의 대표적인 형상화가들이다. 전자는 정밀묘사 수법으로, 후자는 일필휘지 방식으로 양식적 대척점에 위치하지만 양자 모두 객관적 리얼리즘을 초월하는 알레고리 페인터들이라는 점에서 상통한다. 이들보다 30년 연하인 조영주는 설치, 영상, 퍼포먼스 중심의 다매체 작가로, 페미니즘을 선언하지 않는 두 선배작가와 달리 저돌적이고 전격적인 페미니스트다. 그러나 그의 페미니즘은 폭로적이지도 감상적이지도 않다. 그러한 묵시론적 태도나 판타지 픽션을 구사하는 방법론적 측면에서 볼 때 그 역시 알레고리 비평의 대상이 된다.요컨대 이 3인 작가들은 알레고리라는 동일 선상에서 조우한다. 은유와 상징에 의거하여 자전적 일화를 집단 서사로 우화화하며 문학적, 인문학적 감성으로 자전적이면서도 탈자전인 작품세계를 구가하는 ... -
(8)여성추상은 불가능한 명제인가···이 질문에 응답하는 세 명의 작가
색점과 바코드의 변주 양주혜“나는 그림을 쓰고 있다” 점·선·면의 반복적 증식으로 손노동의 흔적을 예술로 승화 1 추상미술에서의 여성적 영역환상의 복식조 7라운드는 양주혜(1955), 홍승혜(1959), 박미나(1973)를 초대했다. 양주혜는 색점과 바코드, 홍승혜는 컴퓨터 픽셀 이미지, 박미나는 딩벳 폰트로 각기 고유한 추상적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추상미술은 20세기 부계적 모더니즘과 형식주의의 총아로서 남성양식으로 주류화됐던 반면, 형식보다 주제, 체계보다 서사를 중시하는 형상적 여성미술을 타자화하는 미학적 준거가 되었다.초창기 페미니즘 미술운동은 추상 대 형상이라는 이분법적 논리 속에서 여성미술을 폄훼하는 모더니즘에 대한 반격으로 시작되었다. “페미니즘 미술운동의 가장 위대한 공헌은 그것이 모더니즘에 대해 아무것도 공헌한 바가 없다”는 루시 리퍼드의 단언이 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의 양식적, 젠더적 대립을 요약한다. 그렇다면 추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