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민생이 아닌, 노동입법의 정치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한 달 후면 21대 국회도 마무리다. 곧 22대 국회가 출범한다. 그러나 지난 4년의 모습을 답습하면 안 된다. 되짚어 보면 21대 국회 입법 과정에서 여야의 눈치로 차별금지법은 좌절되었고 노조법 2·3조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가로막혔다. 정부 부처와 관료조직의 소극적 행정 또한 제도의 지체에 영향을 끼쳤다. ‘아프면 쉴 권리’를 위한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구멍투성이고 전국민고용보험은 소리 없이 정책에서 사라졌다. 이 모두 우리 사회가 차별이 아닌 평등으로 나아가야 할 바로미터인데도 말이다.

21대 국회 평가는 여러 잣대가 있겠지만 입법성과만 살펴보자. 지난 4년 동안 국회에서 약 2만6783건의 법안을 다루었다. 그러나 법안 처리는 36.1%(9676개)에 불과하고 그 외 다수는 처리되지 못했다. 문제는 시민의 삶과 밀접한 고용노동과 보건복지 법안들 대부분이 계류된 점이다. 통과 법안 다수는 경제·산업, 건강·안전, 인권·참여 분야다. 그에 비해 복지돌봄과 고용노동 분야는 12% 남짓에 그쳤다. 이뿐만이 아니다. 17개 상임위 중 보건복지(1위)와 환경노동(4위) 계류 법안은 전체 10개 중 1개를 상회한다. 복지와 노동은 시민권의 대표적 사회권인데도 말이다. 여야 모두 그들의 ‘민생’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이런 이유로 22대 국회는 달라야 한다. 산적한 노동 현안이 적지 않고 반드시 처리해야 할 과제도 많다. 무엇보다 ‘모든 일하는 사람’이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사업장 규모와 고용형태, 연령, 성별, 노동시간, 장애 유무 등에 따라 구조적 차별이 존재한다. 국가는 합리적 사유를 이유로 법·제도의 사각지대를 방치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부터 초단시간 노동자는 물론 65세 이상 고령 및 장애인 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 사회보험 등 법령의 예외 적용을 받는다. 결국 22대 국회 역할은 기본권 보장과 차별·격차 해소가 핵심일 것 같다.

적어도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과 권고, 가이드라인이 우리의 지향점이어야 한다. 반면 지난 2년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은 어떠했나. 우리 사회 안팎의 사회적 소수자나 특정 집단을 배제했고, 편견과 왜곡, 차별을 넘어 혐오의 정치였다. 최근 몇년 동안 최저임금 업종 구간 차등화 추진이 대표적이다. 작년부터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듯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이 작동한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그 필요성, 서울시의회는 국회 건의안을 발의했으니 말이다. 최저임금 차등화는 ILO의 ‘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에 관한 협약’(제111호) 위반 소지는 물론 국가인권위원회법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제2조의 3)조차 저촉될 듯하다.

이제는 극단의 정치를 떨구고 대전환을 고민할 시점이다. 제도와 사고의 전환은 정책의 지평을 넓힌다. 22대 국회에서는 임금 투명성과 성별임금 격차 해소, 아프면 쉴 권리와 과로사방지, 디지털 플랫폼노동·AI의 일자리 대응, 노조할 권리와 모든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우선 다루어야 한다. 대부분 국가 경제나 기업 투자 축소 등을 이유로 진척 못한 과제들이다. 물론 중대재해·감정노동·직장 내 괴롭힘 문제 또한 개선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대학실습학생부터 돌봄노동, 유통 협력업체와 프랜차이즈 모두 제도 밖에 놓여 있다.

해결의 실마리는 지방정부의 노동정책 실험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돌봄과 필수노동자 지원(서울 성동구), 초단시간 최소생활시간보장제(울산 동구), 플랫폼노동자 산재보험지원(경기도), 모든 일하는 사람의 도시(광주시) 등 다양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여야 모두 민생을 이야기하고, 매번 공감한다면서도 꼭 입법 과정에서는 부작용을 언급하며 주저했다. 22대 국회에서는 모든 일하는 사람의 삶을 위한 정치와 문법을 기대할 수 있을까.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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