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백승찬의 우회도로
  • 전체 기사 58
  • [백승찬의 우회도로]오디세우스의 귀향은 왜 그리 힘들었나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왜 그리 힘들었나

    *영화 <오디세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맷 데이먼에게는 ‘귀향 전문 배우’라는 농담 섞인 별명이 붙어있다. 2차대전 전장의 복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병사 역을 맡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가 시작이었다. 데이먼은 화성에 낙오했다 지구로 돌아왔고(<마션>·2015), 얼음 행성에 고립됐을 때는 귀향에 실패했다(<인터스텔라>·2014).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귀향 이야기의 원형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영화화하며 데이먼을 캐스팅한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나선 지 20년이 되도록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왕이 죽었다고 여긴 구혼자들은 매일 왕궁에 모여 왕비 페넬로페에게 구혼한다면서 흥청망청 먹고 마신다. 손님에 대한 환대를 강조하는 ‘제우스의 법’ 때문에 왕비는 불청객들을 내치지도 못한다. 사실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 역시 오디세우스의 생존에 확신을 갖지 못한 ...

    2026.08.12 20:04

  • [백승찬의 우회도로]조선과 6·25 사이, 광화문광장의 ‘지금’
    조선과 6·25 사이, 광화문광장의 ‘지금’

    지방선거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고 선보여 말 많았던 ‘감사의 정원’이지만 막상 가보니 존재감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광화문광장 남쪽 이순신 장군 동상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북쪽에 자리한 세종대왕 동상 쪽으로 몇분 걸어가니 그제야 왼편에 석제 조형물 ‘감사의 빛 23’이 눈에 들어온다.높이 6.25m의 기념석 23개는 한국전 참전국 22개와 한국을 뜻한다. 어두워지는 오후 8시면 조형물들이 하늘로 빛을 쏘아 올린다. 일각에서는 그 모양이 ‘양갈비’ 같아 우스꽝스럽다거나, ‘받들어총’ 모양이 맞은편 미국대사관을 향한다고 비판한다. 정작 조형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디자인 단계에서 ‘받들어총’을 의도한 적이 없다고 한다. 조형물이 세종대왕 동상을 창살 안에 가둔 것처럼 보인다는 비판도 있지만, 일부러 조형물 뒤편으로 돌아가는 수고와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는 이상 이는 다소 무리한 시각으로 보인다.서울 핵심부 중요 공간의 기념물들 조선 시대·전쟁 기억에만 갇혀 있어 시...

    2026.06.03 22:47

  • [백승찬의 우회도로]다른 목소리
    다른 목소리

    탄핵 찬성한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국회 밖의 다른 목소리도 외로워헌재 결정부터 혹시 있을 대선까지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들은 많다김예지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국민의힘 의원 2명 중 1명이다(다른 한 명은 안철수 의원). 시각장애인인 김 의원은 3일 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에 참여하려고 국회 월담까지 생각했으나, 안전을 우려한 당시 한동훈 대표의 만류로 뜻을 접었다고 한다. 김 의원은 BBC코리아 인터뷰에서 “우리 당이 만들어서 세운 대통령을 탄핵소추하는 안건에 대해 표결해야 한다는 무겁고도 무겁고도 정말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면서도 “제가 대리해야 하는 시민들을 대신해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할 일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고 말했다. ‘계엄은 잘못이지만 탄핵은 안 된다. 질서 있는 퇴진은 물 건너갔지만 탄핵은 안 된다. 당론이 탄핵 반대니 탄핵은 안 된다. 대안은 없지만 무조건 안 된다’는, 집권여당이라고는 믿을 ...

    2024.12.18 21:06

  • [백승찬의 우회도로]이토록 친밀한 타인
    이토록 친밀한 타인

    유럽서 주로 활동 연출가 요나 김‘심청’ 추월만정 놓고 독창적 해석 예술의전당 ‘관행’엔 아쉬움 토로 내부를 벗어난 ‘외부의 시선’ 신선심청은 ‘눈먼 아버지를 위해 공양미 300석에 팔려간 효녀’다. 현대인의 감각으로 볼 때 ‘부처님께 공양미 바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제안은 종교를 빙자한 사기고, 비록 자발적이라고는 하나 심청이 공양미와 목숨을 바꾸는 행위는 끔찍한 인신매매다.국립극장과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현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 기괴한 이야기를 내년 공연을 목표로 제작 중이다. 판소리 대본을 활용해 소리꾼이 노래하니 ‘창극’이라 불릴 만하지만, 제작자들은 ‘소리악극’ 같은 새로운 장르 이름을 구상 중이다.과거 한국의 정서에 기반한 이 작품이 동시대 세계 관객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심청>을 연출하는 요나 김은 듣도 보도 못한 해석을 들려줬다. “심청 이야기는 너무나 보편적이에요. 옛 동화들이 착한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끔찍...

    2024.11.13 19:57

  • [백승찬의 우회도로]서바이벌의 법칙: 여왕벌 게임·흑백요리사·더 인플루언서
    서바이벌의 법칙: 여왕벌 게임·흑백요리사·더 인플루언서

    “저는 방송이 존나 지겹습니다. 이 게임이 그렇게 재밌습니까? 그렇게 사람 본능 건드리면서 팀원들 바꿔가면서 TV를 보는 사람들이 무엇을 느껴야 합니까. 제가 솔직하게 게임한 게 그렇게 재밌습니까? 이걸 원하세요? 결국에는 사람들의 악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결국에는 깨끗하게 마무리 지으실 거죠? 우승이라는 글자로. 진짜 우승이 어딨습니까? 이딴 식으로 하는데. 정신 차리세요. 전 진 게 아닙니다.”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에서 방영 중인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여왕벌 게임>에서 ‘여왕벌’ 모니카가 말했다. 4일 공개된 4화에서 탈락이 확정된 후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었을 때였다.이날 여왕벌과 해당 팀의 ‘수컷’ 중 한 명은 한정된 시간 동안 진흙을 최대한 많이 옮기는 게임을 했다. 최종 1위를 차지한 ‘여왕벌’ 장은실은 패배한 세 팀 중 한 팀의 우두머리 수컷을 영입할 수 있었다. 우두머리 수컷을 빼앗긴 팀의 나머지 인원은 모두...

    2024.10.09 16:55

  • [백승찬의 우회도로]살인자 오씨의 경우
    살인자 오씨의 경우

    “한 전방 부대의 사령관 오모씨가 아내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의 목격자들과 경찰의 말을 종합하면, 오씨는 관사에서 아내 A씨를 살해했다. 오씨는 A씨와 자신의 부관 B씨의 외도를 의심했다고 한다. 다투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사람들에 의해 오씨의 오해가 밝혀지자, 오씨는 그 자리에서 후회하며 자살했다. 오씨가 아내를 의심한 배경에는 또 다른 부관 이모씨가 있었다. 이씨는 자신 대신 B씨가 승진한 데 대해 앙심을 품고 오씨를 파멸시킬 계획을 세웠다. 이씨는 오씨에게 A씨와 B씨의 불륜을 암시했으며, 오씨가 이를 믿지 않으려 하자 A씨의 손수건을 훔쳐 B씨의 숙소에 가져다두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씨는 현장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경찰에 체포됐다.”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를 사건 기사 형식으로 쓰면 위와 같이 앙상하게 요약할 수 있겠다. 오모씨는 오셀로, 이모씨는 이아고다. 피의자가 사망했으니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는 종결되고, 한때 미디어에 오...

    2024.09.04 16:58

  • [백승찬의 우회도로]자기확신
    자기확신

    “숨 막히게 아름답다”는 표현은 지나치게 관용적이라 리뷰에 쓰기에 그다지 좋지 않지만,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파리 오페라 발레단 에투알(최고무용수) 박세은의 ‘빈사의 백조’를 보고서는 딱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1907년 전설적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가 초연한 이 작품에서는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에 맞춰 발레리나가 서서히 무대에 오른다. 무용수는 우아하게 날갯짓하며 수면 위를 이동하지만, 이 백조는 제목 그대로 죽어가는 중이다. 첼로 선율, 푸른 조명에 휩싸인 백조는 엄습한 죽음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마지막으로 몸을 떤다. 잦아드는 첼로 소리와 함께 백조의 생명도 빠져나간다. 막이 내린 뒤에도 박수는 다음 무대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이어졌다. 죽음의 순간을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안무의 기괴함에 놀랐고, 그 아름다움을 완벽히 체현한 박세은의 몸짓에 다시 놀랐다.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1669년 창단됐다. 박세은은 입단 10년 만인 2021년 이 세...

    2024.07.31 17:24

  • [백승찬의 우회도로]모든 황금기에는 끝이 있다
    모든 황금기에는 끝이 있다

    칸국제영화제는 한국에서 통상 베니스, 베를린과 함께 ‘세계 3대 국제영화제’라고 불리지만 이는 그다지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현재 칸영화제의 위상은 나머지 영화제보다 크게 높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영화인들은 가능하면 칸영화제를 먼저 두드린다. 굳이 나누자면 칸이 1강, 베니스와 베를린은 2중이다.한국영화에 칸의 문턱은 그만큼 높았다. 베를린이 1961년 <마부>에 특별 은곰상, 베니스가 1987년 <씨받이>의 고 강수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수여했지만, 한국영화가 칸의 핵심인 경쟁 부문에 오른 것은 2000년 <춘향뎐>이 처음이었다. <춘향뎐> 상영 후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 고 이태원 제작자는 어깨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세계 최고의 영화축제에서 턱시도를 차려입은 관객 2000여명이 일제히 기립박수로 경의를 표하면 어떤 영화인도 감정을 감추기 어려울 것이다.제77회 칸영화제가 25일까지 열린다. <춘향뎐&...

    2024.05.22 14:11

  • [백승찬의 우회도로]3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는 것
    3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는 것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다룬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바흐 ‘마태 수난곡’ 연주 시간은 인터미션을 포함해 190분에 달했다. 현장에서 만난 지인이 체력을 보충하라며 고맙게도 초코바를 건네주었지만 인터미션에도 먹지는 않았다. 바로크 악기 특유의 거칠고도 맑은 음향, 최고 수준 성악가들의 청아한 목소리, 2000년 전 성인(聖人)의 위대한 행적이 감상자를 몽롱하게 했고, 그 아름다운 몽롱함에서 억지로 깨어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몽롱함의 원인은 연주 자체와 함께 연주 시간에도 있었다. 기나긴 연주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통한 외부의 자극이 없으니,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종교음악의 흐름에 몸을 온전히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종류의 음악은 귀가 아니라 온몸으로 듣는다.국립오페라단의 <한여름 밤의 꿈> 공연 시간은 인터미션을 포함, 170분이었다. 셰익스피어 원작 희곡을 바탕으로 벤저민 브리튼이 1960년 발...

    2024.04.17 16:34

  • [백승찬의 우회도로]‘패스트 라이브즈’의 인연과 우연
    ‘패스트 라이브즈’의 인연과 우연

    영국 소설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1879~1970)는 근대와 현대의 접점에서 나고 자랐다. 그가 31세에 출간한 대표작 <하워즈 엔드>는 교외의 오랜 저택 하워즈 엔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두 가문의 이야기다. 자동차와 기차가 다니고 사람들의 이주가 조금씩 활발해지는 시기, 인물들은 신문물이 전통을 대체하는 과정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한 인물은 말한다. “자기 집과 헤어진다는 것, 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난다는 것-그런 일은 일어나면 안 돼요. (…) 사람이 자기가 태어난 방에서 죽지도 못한다면, 문명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죠?”이제 태어난 방에서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향’이라는 말은 무의미해졌다. 생애주기에 따라 진학·취업·결혼·출산하는 과정에서 끝없이 이주를 경험한다. 이런 주기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한곳에서 오랜 세월 정주하기는 어렵다. 집값 변동, 도시계획, 자연재해, 전쟁같이 이주를 강제하는 요인은 차고 넘친다.한국계...

    2024.03.13 15:16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