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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정치가 괴물을 낳는다
‘계엄 선포’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로 나라가 비상사태로 치닫고 있다. 실제로 위급한 상황이 아닌데도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말 하나로 정말 비상사태가 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 선포 대국민 특별담화문에서 탄핵과 특검을 남발하는 민주당의 입법 독재로 국정이 마비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전복될 위기에 처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계엄을 선포했다고 강변했다. 많은 사람이 처음 들었을 때는 가짜뉴스로 생각할 정도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한 국가의 지도자가 국정의 난맥과 마비를 민주적 절차에 따라 풀지 못하고 폭력에 의존한다는 말인가? 자신의 정치적 무능력을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주권자의 권한으로 대체하려는 것부터가 자신이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다. 그는 거듭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기반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되었다”고 변명한다. 탄핵 찬성 집회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알... -
‘트럼피즘’에서 배운다
‘트럼프 2.0’ 시대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이제까지 낯설고 기이하게 생각하던 ‘트럼피즘’(trumpism)이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트럼프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기괴한 정치’와 익숙해져야 한다. 좋은 정치를 바란다면 적어도 트럼피즘의 기괴함을 이해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권위주의적이고, 반항적이며, 극우적이다. 트럼프는 거짓말을 하고, 천박한 언행을 일삼고, 법을 어긴다. 미국의 보수주의 세력은 이 깡패이자 거짓말쟁이고 반동적인 정치인을 47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정말 기이하고 이상한 일이다. 본래 보수주의는 미덕, 조화, 위계와 영원한 진리에 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였는데 트럼피즘은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나간다는 사실이 괴이하다. 무엇보다 기괴한 것은 거짓말이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정치의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이다.‘기괴하다’는 말은 지난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가 트럼프를 정치적으로 낙인찍기 위해 사용한 정치적 논평이다. 트럼프 진영에서 해리스를 ‘아이를 낳지... -
‘영부인’이라는 정치적 리스크
‘영부인’이 정치를 실종시키는 가장 커다란 위험이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의 절반이 지나가는데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정치적 논란만 보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역대 대통령의 퇴임 후 좋지 않은 삶은 많은 부분 가족과 연관이 있다. 어떤 대통령은 혁명과 쿠데타로 하야하고, 어떤 대통령은 군사반란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어떤 대통령은 뇌물과 비자금 조성으로 구속되고, 그리고 어떤 대통령은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하는 ‘대통령 퇴임 잔혹사’는 근본적으로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권력을 사유화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사적인 것의 핵심은 두말할 나위 없이 ‘가족’이다. 우리는 여전히 ‘가족’과 ‘국가’의 관계를 규정한 <대학>의 8조목을 정치의 근본으로 들먹인다.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잘 다스려야 한다.” 서양의 정치철학은 근본적으로 ‘가족’과 ‘국가’, 제가와 치국, 즉 가정을 잘 다스리는 일... -
AI 디지털 교과서, 혁신인가 유행인가
“잠자는 교실을 깨우겠다”고 윤석열 정부가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야심만만하게 추진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로 드러난 인공지능의 부작용과 문제점에 관한 우려가 증대하고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딥페이크의 위험에 관한 소란스러운 공포가 오히려 인공지능의 혁명적 성격을 은폐한다면, 심도 있는 논의와 토론은커녕 소리 소문도 없이 진행되는 인공지능의 개발과 활용은 우리의 삶과 사회에 훨씬 더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제까지 종이책 교과서로 가르치던 전통적 교육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AI 디지털 교과서가 그렇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가장 취약한 국가인 대한민국을 디지털 교육 강국으로 탈바꿈하겠다는 듯이 현 정부는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인공지능 접근성이 높고 디지털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면, 인공지능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모두 다른 나... -
새로운 디지털 성범죄 ‘딥페이크 성착취물’
생성형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익숙한 경험과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세계가 아무리 변화무쌍해도 변하지 않는 진정한 현실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시대나 가짜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만큼 진짜도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힘든 새로운 현실이 펼쳐졌다. 진짜만큼 많은 그리고 영향력이 더 큰 가짜가 만연한 세계는 그야말로 ‘페이크 현실’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우리와 현실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그것이 쉽게 감지할 수 없는 인공지능의 힘이다.지금 세상은 ‘딥페이크 성착취물’로 떠들썩하다. 인공지능을 사용하면 성착취물 이미지를 더 쉽게 제작할 수 있고, 이전보다 더 빠르게 퍼뜨릴 수 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제작과 유통 속도는 정말 가공할 만하다. 우리가 인지하고 대처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는 뜻이다. ‘딥러닝’과 ‘페이크’의 합성어인 딥페이크... -
‘뉴 노멀’이 된 탄핵 정치
정치는 다른 수단으로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뒤집어 놓은 이 말을 요즘처럼 실감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긋지긋하지만 우리의 감각이 무뎌져 이제는 그것이 정상인 것처럼 생각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전쟁터로 변하였다.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는 두 가지 공간이 특히 두드러진다. 하나는 포퓰리즘 물결과 함께 폭력적인 투쟁의 장소가 된 ‘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을 감정적으로 선동하는 프로파간다가 난무하는 ‘소셜미디어’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감성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적 논의는커녕 적대적 혐오와 원한 감정을 강화하는 증폭기일 뿐이어서 투쟁으로 전락하고 타락한 정치는 사회 전체를 폭력적인 전쟁터로 만들고 있다.우리 정치가 폭력적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말을 과장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정치 현장을 뒤덮고 있는 정치적 수사가 비록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폭력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 -
‘규범’을 파괴하는 ‘사실’의 힘
도덕은 실종되고 적나라한 현실만이 지배한다. 인간이 행동하거나 판단할 때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기준과 도리를 통상 규범이라고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온갖 종류의 갈등을 겪지만 그래도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는 합의가 오랫동안 존재했었다. 사람들이 종종 ‘양심’ 또는 ‘상식’이라 부르는 행동 기준은 설령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과 다를지라도 우리가 따라야 할 이상과 당위로 여겨졌다. 당위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이상주의자’가 되고 사실을 중시하면 ‘현실주의자’가 되기도 하지만, 사실과 당위 사이에는 일종의 생산적 긴장 관계가 존재한다. 현실을 무시한 당위는 공허하게 들리고, 당위를 배제한 현실은 맹목적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우리가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구체적 현실 속에서 이상을 실현할 힘을 발견해야 한다. 도덕과 규범이 사라졌다는 것은 우리가 현실의 사실적 힘에 완전히 예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권위주의 사회의 분노와 화병
‘왜 격노했을까?’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이 사고에 대한 해병대수사단의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격노가 불거진 것이다. 대통령이 실제로 격노했는지, 어떤 식으로 반응했기에 격노라고 하는 것인지, 현장에 없었던 우리는 사실 알 길이 없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은 오히려 편견의 살을 붙여 의혹을 부풀릴 뿐이다. 대통령의 행위가 격노였는지 질책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격노로 해석되어 널리 퍼진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수사 중인 이 사건 자체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화와 분노가 가지는 의미다.왜 우리는 격노할까? 사람들은 종종 어떤 일에 대해 화를 내고 분노한다. 분노는 사실 상호작용으로 얽혀 있는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누구나 화를 내고 분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이 격노하면 안 ... -
‘경청의 기술’과 정치
사람들은 자기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엄청나게 말을 많이 하지만 정작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불평을 한다. 구텐베르크 문자 혁명 이후 글로 소통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제대로 듣는 능력이 쇠퇴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읽을 때 집중해서 읽지 않는 것처럼 들을 때도 건성으로 듣는 일이 흔하다. 실제로 듣는 것은 사람의 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어느 연구에 의하면 그 어느 때보다 올바른 청취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부부싸움도 서로 제대로 듣지 않아서 일어나며, 정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는 정당들이 상대방의 말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면 극단적 갈등과 대립으로 이어진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느 곳에서도 더 많은 경청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얼마 전 꽉 막힌 정국을 풀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영수회담을 했다. 서로의 말을 듣고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에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서로 인사말을... -
한국의 보수, 길을 잃다
한국의 보수가 갈 길을 잃었다. 보수의 이념은 실종되고, 보수적 정책은 효율성을 상실하고, 무엇이 보수 집단의 정체성인지 모호하다. 기형적 대통령제에서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을 보유하였음에도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것은 한국의 보수가 정치적 나침반을 잃어버렸다는 분명한 징후이다. 이런 징후는 이미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진 촛불집회에서 명약관화하게 드러났지만, 보수 세력은 당내 민주화를 통해 정치문화를 혁신하는 대신 과거 권위주의적 행태를 답습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거리낌 없이 거론되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지금의 모습은 보수의 혼돈과 종말을 보여준다.보수가 패배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정권을 잡기 위해 정당하게 경쟁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 패배는 결코 몰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해 패했다면, 국민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도록 성찰과 혁신을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