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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보수, 길을 잃다
한국의 보수가 갈 길을 잃었다. 보수의 이념은 실종되고, 보수적 정책은 효율성을 상실하고, 무엇이 보수 집단의 정체성인지 모호하다. 기형적 대통령제에서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을 보유하였음에도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것은 한국의 보수가 정치적 나침반을 잃어버렸다는 분명한 징후이다. 이런 징후는 이미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진 촛불집회에서 명약관화하게 드러났지만, 보수 세력은 당내 민주화를 통해 정치문화를 혁신하는 대신 과거 권위주의적 행태를 답습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거리낌 없이 거론되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지금의 모습은 보수의 혼돈과 종말을 보여준다.보수가 패배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정권을 잡기 위해 정당하게 경쟁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 패배는 결코 몰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해 패했다면, 국민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도록 성찰과 혁신을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 -
상식을 파괴하는 정치
우리는 지금 도덕의 총체적 파괴를 목도하고 있다. 이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니 많은 사람에게 근심 많은 학자의 과장으로 들릴 수 있다. 과장이었으면 좋겠다. 아무도 절대적 가치를 신뢰하지 않는 허무주의 시대에 우리 사회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상식’이라는 게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도덕의 붕괴는 지나치게 불린 말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도덕 운운하느냐고 ‘쿨한’(cool) 태도를 보일지도 모른다. 필요 이상의 감정 소비는 바보짓이라고 생각하는 ‘쿨하다’의 사고방식은 도덕에 대한 무관심을 오히려 멋으로 여긴다. “이야기 장단에 도낏자루 썩는다”는 말처럼 도덕 냉소주의에 빠져 우리는 도덕이 침식당하는 줄도 모를 수 있다.우리는 지금 막장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정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막장 드라마가 보통 사람의 상식과 도덕 기준으로는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다면, 막장 정치는 그나마 명맥을 이어... -
바보야, 문제는 사람이야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선거철만 되면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유명한 말이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현직 대통령이었던 공화당 후보 조지 W 부시를 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선거 구호이다.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국민은 불만을 품게 마련이기에 우리의 살림살이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구체적인 희망으로 유권자를 설득하는 후보가 선거에서 이긴다. 이 구호가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사실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고 시대정신을 꿰뚫어 본 정치인의 혜안에서 나온다. 모두가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아무리 민생을 내세워도 말하는 사람의 진정성이 없으면, 말뿐인 구호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온갖 말이 난무하고 선전과 선동의 이미지가 범람하는 총선 시즌의 핵심 문제를 포착하려면, 우리는 이 구호를 이렇게 바꿔야 한다. “바보야, 문제는 사람이야!”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수사... -
‘위선 공화국’의 역설
“누가 욕하는 거 들으면 그 사람한테 전달하지 마. 너희들 사이에서는 다 말해주는 게 우정일지 몰라도 어른들은 안 그래. 괜히 말해주고 그러면 그 사람이 널 피해. 내가 상처받은 걸 아는 사람 불편해, 보기 싫어. 아무도 모르면 돼, 그러면 아무 일도 아니야.” 많은 사람의 인생 드라마가 된 <나의 아저씨>에서 이제는 고인이 된 이선균이 연기한 박동훈의 대사이다. 연말에 갑작스럽게 날아든 이선균의 사망 소식으로 한동안 우울했다. 내가 좋아했던 연기자 한 명을 잃어버렸다는 슬픔에 더해 왠지 모를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바로 ‘우리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닌데 모든 걸 알고 싶어하는 관음증에 걸린 우리 사회의 위선이 그를 죽게 만든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우리나라는 혹시 ‘위선 공화국’이 아닌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총선을 목적에 두고 터진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민낯을 드러냈을 뿐... -
과거를 잊어야 미래가 보인다
새해가 더 나은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과거를 잊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기후변화를 뒤로하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 싶다면, 우리는 정치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산적한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할 유일한 수단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2024년 새해에는 지구상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전국 선거를 치른다고 한다. 70개국 이상에서 약 20억명이 투표소로 향한다고 한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할 것을 소망하지만, 그 전망은 오히려 흐릿하고 암울하기까지 하다.2024년 안팎에서 치러질 두 선거는 특히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단연코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선거인 미국 대선은 그 결과에 따라 세계 정치를 뒤흔들 것이다.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미국 사회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입후보 자체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만약 그가 승리한다... -
정치는 연극이다
드라마의 흥행 여부와 마찬가지로 정치의 성공 여부 역시 훌륭한 무대연출에 달려 있다. 최근 우리가 경험한 한 사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2030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취임 후 첫 공개 사과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부산 엑스포 유치에 그만큼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엑스포에 건 기대는 무엇이었을까? 대통령의 말처럼 대한민국을 서울과 부산의 두 축으로 균형 있게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내년 총선에서 민심을 유리하게 움직이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계박람회를 유치하였다면 정체의 덫에 빠진 대한민국에 새로운 가능성을 확보할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부산 엑스포 유치는 참패로 끝났다. 정보·외교력과 전략의 부재 탓일 수도 있고, 최종 프레젠테이션의 보기 민망한 ‘개념 없는’ 영상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감동 없는 드라마 뒤에는 반드시 형편없는 ‘무대연출’이 있다는 점이다.정치는... -
양당 체제는 끝났다
양당 체제는 끝났다. 아니 끝나야 한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는 겉보기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에 엄청난 충격을 준 것처럼 보인다. 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은 곧바로 인요한 연세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혁신위원회를 꾸려 뭔가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고 있고, 큰 격차로 이긴 민주당은 정쟁을 중단하고 민생에 몰두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모두 2024년 봄에 치러질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대비한 행보이지만, 그 저변에는 예측할 수 없는 민심의 동요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승리한 당이나 패배한 당이나 민심이 어떻게 움직일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확연하다.민심을 두려워하고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려는 것은 물론 의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다. 선거 결과가 아무리 압도적이더라도 오만하면 반드시 패배한다는 것이 역사적인 교훈이었음에도 정당들은 대체로 선거가 지나면 민심을 잊는 경향이 강하다. 대통령이 ‘국민’이라는 낱말을 입에 자주 올리면... -
‘권위 없는 시대’의 권위주의 정치
오늘날 민주주의를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사를 조금이라도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제일 먼저 두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권위주의와 포퓰리즘. 일반 대중을 동원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과 국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정치·사회적 지위에 부여된 권한을 내세워 복종을 강요하는 ‘권위주의’는 모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두 개가 결합한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적 의식이 널리 퍼진 민주사회에서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이 만연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항저우 아시안 게임이 끝난 직후 열린 강서구청장 선거 과정과 결과 때문이다. 스포츠와 정치는 모두 탁월한 능력을 통해 권위를 획득하는 게임이다. 경쟁자들과 당당히 겨루려는 용기, 부상과 같은 온갖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는 불굴의 투지,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라는 책임 의... -
‘카니발 정치’의 비극
정쟁만 있고 진정한 정치는 실종된 한국 사회에서 정치 행위는 오락이 되고, 예능이 된 것처럼 보인다. 어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는 한국의 정치는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온갖 기술을 다 사용한다. 정치인들은 때로는 이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누아르를 연출하기도 하고, 때로는 진지한 논의 대신 비방과 풍자에 능한 카바레티스트가 된다. 우리나라에 정치를 풍자하는 카바레 예술가가 발전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이미 너무 많은 카바레 정치인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현실을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일에 종사하는 정치인에게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따위를 비웃는 비판 행위는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비판에서 자기 자신을 제외할 때 발생한다. 자신은 전적으로 옳다고 믿고 남의 결점을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하다 보면, 결국에는 옳음과 그름의 문제는 사라지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욕설만 난무한다. 정치적 비판은 해학적이어야 하는데, 요즘의 정치적 공방은 파괴적이고 자기 파괴... -
‘이기주의’로 변질된 인권
누구나 ‘권리’를 주장하지만, 아무도 ‘의무’는 얘기하지 않는다.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불거진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사회적 병리 현상은 아무래도 이 간단한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사람이 권리를 주장한다.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 좋은 일자리를 가질 권리, 안전하게 이동할 권리, 여름에는 더위를 피할 권리,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낼 권리, 일하면서도 적절하게 쉴 권리.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욕구가 마땅히 요구할 권리로 전환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마땅히 가지는 권리가 보편화된 ‘인권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가 조금이라도 침해되었다고 느끼면 어김없이 ‘인권’을 내세우며 자기 권리를 주장한다. 우리는 정말 ‘인권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 최근 서로 연결된 두 사건을 바라보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유명 웹툰 작가가 자신의 자폐 성향 아들이 초등학교 특수교사로부터 아동학대를 당했다고 고발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