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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거리두기
  • [이진우의 거리두기]‘합법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
    ‘합법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

    “왕의 목은 단두대에서 잘렸지만, 왕의 통치 방식은 살아 있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여겨지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만천하에 공표한 프랑스 대혁명은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처형하고 공화국을 선포함으로써 절대왕정이 지배하던 ‘앙시앵레짐’, 즉 구체제를 전복했다. ‘왕의 목’은 어떤 견제도 없이 정치권력을 집중화한 권력 체제를 상징한다. 절대군주인 왕이 사라지면 인민의 삶이 좋아질 것이라는 혁명의 약속과 기대는 빗나갔다. 프랑스 혁명이 구체제를 무너뜨린 후 공화정, 제정, 군주정으로 국가 체제가 바뀌며 불안한 정치 상황이 지속됐다. 사실상 독재자로서 프랑스를 지배했고 숙청을 통한 공포정치로 많은 반대파를 단두대로 보낸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단두대의 희생양이 되었다. 왕이 사라지고, 왕의 자리에 수많은 다른 정치 지도자들이 어떤 이름으로 등장하건 ‘통치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위협하는 ‘구체제’는 여전히 지속된다.민주주의가 제도화된 오...

    2025.10.21 20:22

  • [이진우의 거리두기]민생쿠폰은 정말 민생을 살리는가
    민생쿠폰은 정말 민생을 살리는가

    돈이 없어도 소비를 하면 할수록 돈이 생긴다는 경제 이론이 있다. 터무니없는 소망처럼 들리지만 사실 한때는 효과가 있었던 케인스 경제학의 기본 전제이다. 수요와 공급을 통해 움직이는 시장은 자율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못하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총수요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가 위축되어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면 시장은 더욱 나빠진다. 경제 침체기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경기순환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 개입에 정당성을 제공한 것이 바로 케인스 경제학이었다. 정부가 재정 지출을 확대하거나 중앙은행이 ‘양적 완화’라는 전례 없는 정책을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실 이 이론은 20세기 중반 이후 대공황 탈출, 전후 재건, 1970년대 전까지의 자본주의 황금기에는 유효했다.정부가 최근의 경기 부진과 민생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소위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는 것도 케인스주의의 효과를 믿기 때문일 것이다....

    2025.09.16 20:53

  • [이진우의 거리두기]도대체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왜 필요한가
    도대체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왜 필요한가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은 폐지되어야 한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부부와 윤미향·최강욱 전 의원,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등 2188명에 대한 광복절 특별사면과 복권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사면이 이루어졌다”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국민통합이라는 시대 요구에 부응하고, 민생경제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한 법무부의 사면안에 공감했다”고 맞받았다.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우리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특별사면이 어떻게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민생회복 사면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과연 국민통합을 가져올 것인지도 적이 의심된다.사면권의 기원과 목표는 물론 사회통합이었다. 오늘날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

    2025.08.19 19:58

  • [이진우의 거리두기]‘서울대 10개’의 함정
    ‘서울대 10개’의 함정

    “현실을 무시한 이념은 스스로 웃음거리가 된다.” 기억을 바탕으로 쉽게 재구성한 마르크스의 이 말이 떠오른 것은 이재명 정부가 핵심적 교육 정책으로 추진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때문이었다. 이념은 현실 속의 문제와 모순을 해결하고 도달해야 할 목적과 방향을 제시한다. 바람직한 미래 사회에 관한 이상 없이 어떻게 현실을 개혁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념은 현실을 해석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현실 속에서 실천으로 나갈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 이론이나 이념이 현실과 단절되어 있으면 무력하며 오히려 현실의 물질적 조건 속에서 이념이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이념이 없는 현실의 이해관계는 맹목적이고, 현실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이념은 공허하다. 이상만 말하고 현실의 조건을 무시하면, 이념은 추상적 도덕 설교가 되어버린다. 반면에 아무런 이상도 없이 현실적 이해관계만 추구하면 냉소적 기회주의자가 된다. 우리가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혁하려면 이념과 현실 사이의 적...

    2025.07.22 20:40

  • [이진우의 거리두기]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어려운 시기에 출범한 이재명 정권은 이념을 버리고 경제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이제까지의 행보를 보면 민생과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과 노력이 실용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깔딱고개를 넘어가는 것 같다”고 표현한 것처럼 우리의 경제 상황은 실제로 어렵고 심각하다. 경제의 위기가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구조조정을 제때 하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대미 무역 흑자를 보고 있는 모든 나라에 선포한 트럼프의 관세전쟁 탓인지 아니면 시장경제의 논리를 왜곡한 정치의 지나친 간섭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국민의 경제적 삶이 팍팍한 것은 사실이다.“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유명한 클린턴의 슬로건은 멍청하게 정권을 빼앗긴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한 조롱 섞인 경고일 뿐만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정권을 유지하고 확대할 확실한 정책적 목표처럼 들린다. 30조5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이 이재명 정부의 공언...

    2025.06.24 20:53

  • [이진우의 거리두기]‘감정적 투표’는 정권을 부패시킨다
    ‘감정적 투표’는 정권을 부패시킨다

    우리나라가 진짜 민주공화국인지 그리고 민주공화국으로 남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투표일이 다가왔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에 명시된 이 문장은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치인들의 입에 자주 오른다. 이 말을 빈번히 사용하면 할수록 입에 발린 상투어가 되는 역설은 모호한 상징성 때문이다. 이 말이 구체적인 현실에서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오직 ‘투표’뿐이다.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혁명과 쿠데타가 원천적으로 배제된 민주 사회에서 정권을 갈아치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투표이다. 현대적 혁명은 오직 투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급격한 변화인 혁명은 언제나 ‘극단적 감정’을 수반한다. 이제까지 감히 저항하지 못했던 권력에 대해 저항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건 혁명적 감정이다.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혁명에 참여하지 못한다. 감정은 혁명의 동력이다. 이것저...

    2025.05.27 20:54

  • [이진우의 거리두기]탄핵 이후, 정치 혁명을 바란다
    탄핵 이후, 정치 혁명을 바란다

    탄핵이 끝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위기에 빠뜨렸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었지만, 계엄 사태를 유발한 정치 구조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거의 예외 없이 느끼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갈등은 봉합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국민이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꼽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대립은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정치인들은 선거철마다 염불처럼 외우는 사회통합은커녕 갈등을 오히려 부추긴다. 대립하면 할수록 유리하다는 기괴한 공식에 감염된 도착적 정치 문화가 지속되는 한 헌정 위기는 끝나지 않는다.1987년 체제는 끝났다. 오랜 독재를 경험한 국민의 염원이었던 대통령 직선과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한 임기 5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한 현행 헌법은 38년이 지난 지금 역사적 수명을 다했다. 세 번의 탄핵과 전임 대통령들의 불행한 감옥행은 ‘87 체제’의 한계와 폐해를 분명히 말해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치유할 수 없는 사회 분...

    2025.04.29 20:34

  • [이진우의 거리두기]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

    정치가 실종되고 온통 법률만 따지는 사회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회다. 사람들은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법치주의로 이해하고, 모든 것을 법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생각한다. 오해이고 착각이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에서 양날의 칼이다. 법 규범의 내용이 이성적이고 입법 과정이 정당하고 법 운용이 합리적이라면, 민주주의는 실제로 ‘법의 지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역사적 사례와 현재 신권위주의 정권에서 볼 수 있듯이 법은 국민보다 독재자의 이익에 맞게 설계될 수도 있다. 법률 시스템은 엄격한 절차를 따르지만, 그 법률이 비이성적이거나 억압적이거나 선택적으로 시행된다면 여전히 부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법치주의가 그 자체로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정권이 안정되고 세상이 편안할 때는 사람들이 별로 법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일반 사람이 법을 접하게 되는 것은 대체로 송사에 휘말릴 때이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법률 용어, 까다로운 절차, 고압적인 법률 전문가 등을...

    2025.04.01 20:54

  • [이진우의 거리두기]‘오징어 게임’의 다수결 정치
    ‘오징어 게임’의 다수결 정치

    지금 우리 정치는 오징어 게임을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며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두 번째 시즌이 작년 말 공개돼 다시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중첩된 <오징어 게임 2>는 우리 정치의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시즌 1은 엄청난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456명의 참여자가 목숨을 걸고 위험한 일련의 어린이 게임을 하여 참가자 한 명당 1억원씩 총 456억원의 상금을 얻기 위한 서바이벌 스릴러 게임이었다. 어린이의 즐거운 게임을 살벌하고 야만적인 생존 게임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무엇이든 이 드라마는 자본주의의 사악한 논리를 비판하는 것으로 여겨졌다.<오징어 게임>은 자본주의의 최대 문제점으로 거론되는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직접 건드리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흥행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보편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2025.03.04 21:09

  • [이진우의 거리두기]자제하지 못하는 권력의 광기
    자제하지 못하는 권력의 광기

    동트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둡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암흑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찾을 때 이 속담은 종종 인용된다.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지 두렵기만 하고 아무런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다시 밝힐 한 줄기 희망을 간절히 바란다. 칠흑 같은 밤이 드리웠다는 것은 어떤 돌파구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장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이 속담에서 위로와 희망의 빛을 보지만, 그 이면에는 쉽게 지울 수 없는 절망과 비관의 기운이 숨겨져 있다. 낮고 짙게 드리운 구름 때문에 새벽인데도 동이 트지 않을 수 있다. 상황이 악화하면, 자기 위로의 이 말은 결국 헛된 희망으로 자기를 기만한다.동이 트지 않을 수도 있다. 어둠을 몰아낼 어떤 빛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초래된 우리 사회와 국가의 상황이 바로 그렇다. 우리는 지금 ‘위기 중의...

    2025.02.04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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