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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려는 자, 잊으려는 자
“강제노동의 역사를 직시하는 유일한 장소이기에 남겨야만 한다.”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달 28일, 홋카이도(北海道) 북단의 조그마한 마을인 슈마리나이(朱掬內)에 강제노동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에 세워진 일본 최초의 박물관이다. 새롭게 문을 연 슈마리나이 강제노동박물관의 이야기는 약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이곳에는 고켄지(光顯寺)라는 사찰이 있었다. 신자가 줄어 문을 닫은 사찰의 본당 뒤편에서 이름, 사망 일자 등이 적혀 있는 위패 80여개가 발견된 것은 1976년의 일이다. 이 위패 중에는 조선인의 이름도 여러 개 있었다. 당시 슈마리나이에 건설 중이던 댐과 철도 공사에 3000명이 넘는 조선인이 강제동원되었다. 위패를 처음으로 발견한 도노히라 요시히코 주지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소라치민중사강좌 회원들)은 지역 주민의 증언을 토대로 위패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공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조선인 50여명의 시신이 공사 현장 근처에... -
가짜뉴스에 취약한 중장년층
지난 7월29일, 영국 소도시 사우스포트의 한 어린이 댄스 교실에서 벌어진 흉기난동 사건이 영국 전역에서 대규모 반이민, 반무슬림 폭력 시위로 번졌다. SNS를 통해 용의자가 무슬림 망명 신청자라는 가짜뉴스가 퍼지면서 극우 세력들이 자극을 받아 시위를 일으켰다. 알고 보니 용의자는 이민자가 아닌 영국 카디프 태생의 10대 청소년이었다. 그럼에도 시위대는 이슬람 사원과 난민신청자들이 머무는 호텔에 불을 지르고 경찰관을 공격하는 등 폭력적 행동을 벌였고, 일부는 상점 유리창을 깨는 등 약탈까지 감행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시위로 수많은 경찰관이 부상을 당했으며, 그중 일부는 골절과 뇌진탕 등 중상을 입었다. 극우 폭력 시위가 확산되자 이에 맞서 반인종주의 단체들이 여러 지역에서 맞불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다. 맨체스터, 리버풀, 노팅엄, 브라이턴 등 주요 도시에서는 반인종주의 시위대가 영국의 대표적 극우 인사인 “토미 로빈슨에 반대”, “인종주의와 파시즘을 멈추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 -
난민의 꿈, 올림픽 새 역사 쓰다
2024 파리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둔 팀은 메달 순위표 어디에도 없는 이들이다. 바로 37명의 선수로 구성된 사상 최대 규모의 난민 대표팀이다. 그들은 단순한 참가를 넘어 역사를 새로 썼다. 복싱의 신디 응감바가 올림픽 사상 난민팀 최초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카메룬 출신인 그녀는 영국에서 난민 신분으로 살아가며 훈련을 이어왔다. 그녀의 동메달은 단순한 스포츠 성과를 넘어 전 세계 1억2000만 난민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이 메달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난민들을 위한 것입니다.” 응감바의 눈빛은 결연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동화처럼 끝나지는 않았다. 태권도의 하디 티란발리푸르. 그는 여성 인권을 외쳐 조국 이란을 등져야 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난민으로 처음 10일을 숲에서 보냈고, 생계를 위해 남의 집 소파에서 3개월을 지냈다. 이란에서 8년 동안 국가대표 선수였던 그는 난민의 신분으로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 -
패전, 오키나와에서는 진행형
8월 중순이 되면 일본은 추석과 비슷한 오봉(お盆) 연휴를 맞이한다. 전국 각지는 귀성객과 여행객으로 붐빈다. 패전이라는 과거를 직시하는 연휴이기도 하다. 8월15일은 ‘종전의 날’이기 때문이다. 정부 주최로 추도식이 열리고 다시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어온다. 아쉽게도 가해국의 책임과 반성은 빠져 있다. 일본인들이 경험한 전쟁의 참상, 즉 피해자로서의 기억만이 전승된다. 하지만 전쟁이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인 곳도 있다. 오키나와가 바로 그곳이다. 지난 13일, 오키나와국제대학에서 집회가 열렸다. 올해는 이 대학에 미군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발언에 나선 한 대학생은 “미군에 의한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미군기지 문제에 주목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기지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부담을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고 미군기지로 고통받는 오키나와의 현실을 지적했다. 최근 오키나와가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군... -
파리 ‘친환경 올림픽’의 이유
선수들의 연이은 선전과 기록 경신, 팬들의 응원과 함께 2024 파리 올림픽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은 다른 의미에서 말 그대로 뜨거운 올림픽이기도 하다. 올림픽이 개막한 주는 역대 가장 더운 날을 기록했으며, 개최지 파리는 기후 변화 여파로 폭우와 숨 막히는 더위의 격렬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는 선수들 경기력과 올림픽을 관전하는 관중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사실 이번 파리 올림픽은 역사상 가장 친환경적인 올림픽이자 파리 기후 협약을 준수하는 최초의 올림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파리 올림픽 주최 측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자 선제적으로 노력해왔다. 이전 2012 런던 올림픽과 2016 리우 올림픽은 350만t 이상의 탄소를 배출한 가장 환경 친화적이지 않은 올림픽이었고, 2020 도쿄 올림픽은 200만t을 약간 밑돌았지만,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1년에 관중 없이 치러진 대회였다. 이번 파리 올림픽 주최 측은 158만t 배출을 목표로 ... -
변화 위해 달리는 이란 국민들
지난 7월6일에 있었던 이란의 대선 결과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의 당선은 많은 이들에게 변화의 희망의 가능성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한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선거 초기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은 낮았다. 1차 투표에서 4명의 보수 성향 후보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고, 2차 투표에는 그간 선거를 보이콧해왔던 국민들의 참여를 10% 가까이 올렸다. 페제시키안은 대통령직 당선 이후 첫 연설에서 혁명 이후 정부가 약속을 내걸었지만, 그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점이 가장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그의 당선은 이란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경제 제재로 인한 어려움, 국제 사회와의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 그리고 내부 개혁에 대한 요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하지만 이란의 정치 구조상 대통령의 권한은 제한적이며, 최고지도자와 보수 성향의 헌법수호위원회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페제시... -
민족차별, 일본의 ‘두 얼굴’
“콜럼버스, 나폴레옹, 베토벤이 함께 여행을 떠난다. 이들은 우연히 원숭이(유인원) 가족을 만난다. 원숭이에게 피아노와 말 타는 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자신들이 탄 인력거를 끌게 한다.”일본의 인기 밴드 미세스 그린 애플(Mrs. GREEN APPLE)이 발표한 신곡 ‘콜럼버스’의 뮤직비디오 줄거리다.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판에 뮤직비디오는 발표 다음날 공개가 중지됐다. 콜럼버스는 항해자가 아닌 식민주의자로 재평가받고 있다. 미세스 그린 애플은 “비참한 역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의도는 없었다”라고 사죄했고, 소속 음반사도 “역사와 문화적인 배경에 대한 이해가 모자란 표현”이었다고 사과했다. 각 방송사는 이들의 출연을 취소하고, 신문사는 사설과 기사를 통해 일제히 문제를 제기하는 등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처럼 일본 사회는 차별에 때로는 매우 민감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를 사전에 막지 못한 이유는 인종차별적 표현에 대한 일본 사회의 둔감함이라고 할 수 ... -
‘제3의 길’ 귀환하는 영국
7월4일 열릴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의 압도적 승리가 예상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은 40%대, 보수당은 20%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큰 이변이 없을 시 1997년 제3의 길을 내세웠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압승을 재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보수당의 몰락에는 브렉시트,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경기침체 등이 이유로 꼽힌다. 브렉시트는 2016년 보수당의 지지층 결집을 위한 수단으로 등장해, 정확한 손익계산을 따져보지도 못한 채 시작되었고, 결국 영국의 무역과 투자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최근엔 브렉시트를 후회한다는 여론이 다수가 될 만큼 국민들의 입장도 달라졌다. 브렉시트 결정에서도 알 수 있듯, 보수당은 인기에 영합한 정책을 고수하다가 장기 경제성장 전략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영국 경제의 저성장은 금융·법률 등 서비스 산업 위주의 산업구조와 보수당 정부의 긴축재정으로 인해 줄어든 연구·개발 지원, 교육과 훈련 투자 감소 등 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해... -
이란 권력 구도 어떻게 될까
오는 6월28일 이란에서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이란의 대통령 임기는 4년이며, 차기 14대 대통령 선거는 원래 2025년 6월에 치러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 5월 갑작스러운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1년 앞당겨 대선이 치러지게 되었다. 이란은 중동에 몇 없는, 국민들의 손으로 뽑는 직접선거 제도를 따르고 있으며, 그중 대통령은 직접선거로 선출되는 최고위직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12명으로 구성된 헌법수호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만 최종 후보로 결정된다. 이번 대선에도 여성을 비롯한 80명이 후보로 출마했으며, 헌법수호위원회가 승인한 6명의 최종 후보 명단이 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과 온건개혁파로 구분되는 알리 라리자니 전 국회의장, 에스하그 자항기리 전 부통령이 후보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란은 원칙적으로 직선제를 따르고 있지만, 헌법수호위원회라는 이슬람 혁명 수호를 위한 핵심 통치기관을 통해 기존 정치 구도를 뒤흔들 수 있는 급... -
되씹을, 국립대학 존재의 이유
“국립대학의 등록금을 150만엔(약 1300만원)으로 인상해야 한다.” 일본 문부과학성 중앙교육심의회 위원이자 사립대학인 게이오대학 이토 고헤이 총장의 제안이다. 150만엔은 국립대학 등록금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토 총장은 국립대학의 경쟁력 향상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학생이 부담해야 하므로 국립대학의 등록금을 150만엔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연 등록금 인상이 해결책일까?2004년 일본 정부는 개혁이라는 명목하에 국립대학을 독립행정법인으로 전환하고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이마저도 매년 1% 정도 삭감하고 있다. 국립대학은 경영합리화의 압박에 연구와 교육 환경에 투자할 여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의 경쟁력 약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대학 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5일 발표한 세계대학평가에서 100위 안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