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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인권의 위기다
지난 4월9일, 유럽인권재판소는 스위스의 64세 이상 여성 2400여명으로 구성된 ‘기후보호를 위한 노인단체’(KlimaSeniorinnen Schweiz)와 스위스 정부의 기후소송에서 단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기후보호를 위한 노인단체는 기후변화가 여성 노인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있으며, 스위스 정부의 기후위기에 대한 미흡한 노력이 인권침해로 이어졌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고령 여성이 폭염으로 인해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건강이 악화되었고, 외출 시에도 질병 및 사망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인권재판소는 스위스 정부가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전략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밝히며, 이는 유럽인권협약 제8조(사생활과 가족생활을 존중받을 권리)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이번 판결은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른 지역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인권협약에 포함된 모든 국가는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 -
왜 알자지라 방송을 금지하는가
지난 4월1일 이스라엘 의회는 일명 ‘알자지라법’을 제정하여 가결했다. 이는 국가 안보에 해를 끼치는 외국 언론사의 취재, 보고를 정부가 강제로 금지할 수 있는 법으로, 외국 방송사의 방송을 중단시키고 웹사이트 접속 차단과 지국 폐쇄를 명령할 수 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알자지라 방송을 하마스의 대변인 방송이자, 테러범의 채널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알자지라 방송은 이와 같은 결정을 비난하며 성명을 통해 “대담하고 전문적인 보도”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알자지라에 대한 표적 법안이 이스라엘에서 가결되었는가? 카타르에 본사를 둔 알자지라 방송은 “하나의 의견, 또 다른 의견”이란 모토 아래, 상대적으로 언론의 통제가 엄격히 이뤄지는 중동에서 성역 없는 보도로 지각변동을 일으켜왔다. 서구와 이스라엘뿐 아니라 주변 아랍 정부에 대한 논쟁적인 견해를 가감 없이 전달해, 카타르 단교 사태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국가들이 외교 관... -
의사 과로사 제로를 목표로
일본에서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죽는 것을 ‘과로사’라고 부른다. 과로사를 뜻하는 일본어인 ‘카로시(karoshi)’가 세계적으로 통용될 정도로 불명예스러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1999년 여름 도쿄의 민간병원에서 일하던 한 소아과 의사가 세상을 떠났다. 나카하라 도시로, 당시 44세.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곧 21세기를 맞이한다. 경제대국 일본의 수도에서 행해지는 너무 빈약한 소아 의료. 불충분한 인원과 진부화된 설비. 이 폐색감(사방이 꽉 막힌 느낌) 속에서 의사라는 직업을 계속해나갈 기력도 체력도 없다.”도시로의 아내 노리코는 이 유서를 읽었을 때 확신했다. “의사의 과로사를 없애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그로부터 25년, 노리코는 계속 투쟁하고 있다.도시로는 살아 있을 당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목숨을 소진하며 당직근로를 하고 있다. 마차의 말처럼 일하고 있다. 병원에 살해당하겠다.” 노리코는 남편의 과중한 노동을 법정에서 증명했고, ... -
닮은 듯 다른 영국 수련의 파업
2023년 3월부터 시작된 영국 수련의들의 대정부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수련의는 의사면허 획득 후 10년 이내의 젊은 의사들로 우리나라의 전공의들과 비슷한 위치에 놓인 이들이다. 지난해 9월과 10월에는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전문의와 수련의가 함께하는 연대 파업을 펼치기도 했으며, 올해 1월에 있었던 6일간의 파업은 국가보건서비스(NHS) 75년 역사상 최장 기간 파업이었다. 영국 수련의들의 파업 여파는 컸다. 영국의사협회(BMA)에 따르면 파업으로 인해 취소 혹은 조정된 진료만 121만건에 달한다. 현재 영국 수련의들의 가장 큰 요구는 임금 인상이다. 이들은 2008년 이후 16년간 물가상승률 대비 임금인상률이 턱없이 낮아 실질임금은 30%가량 줄어들게 됐다며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수련의들은 35.3% 수준의 임금 인상을 주장하고 있으나 정부는 11.8% 인상안을 내놓았고, 수련의들은 지난 2월24일 다시 5일간의 파업에 나섰다.이들이 파업에 나서는 이... -
얽히고설킨 화약고, 홍해
이스라엘·하마스 사이의 분쟁이 해를 넘기며 계속되는 가운데, 홍해가 작년부터 또 다른 위기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홍해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라비아반도 사이의 좁고 긴 바다로, 지중해 수에즈 운하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해상 통행의 요충지이다. 전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30%, 상품 무역량의 12%가 홍해를 지나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홍해의 물동량은 더욱 늘어났으며, 러시아의 원유 교역량은 전쟁 전보다 14배 이상 늘어났다. 예멘 후티 반군은 2023년 11월 영국 회사 소유의 화물선을 나포한 것을 시작으로 이스라엘과 서방 선박을 겨냥한 위협을 최근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올해 2월 말까지 후티 반군은 이 지역에 주둔한 약 50척의 상선과 소수의 군함을 공격해 왔다.예멘 후티 반군은 누구이며, 왜 공격을 지속하는가? 후티 반군은 예멘 북부에 거주하는 시아파의 한 분파인 자이드파 민병대로서 남북 예멘 내전 과정에서 정부군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시작되었다. 수니파 ... -
‘권력 폭주’에 맞선 교수의 저항
일본 집권 자민당은 지금 정치와 돈 문제로 흔들리고 있다.자민당 내 파벌들은 각자 정치자금 ‘파티’(모금 행사)를 개최해 기업이나 정치단체가 파티권을 매입하게 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수입의 일부를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고 뒷돈으로 만들어 계파 소속 의원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이것이 발각돼 관방장관 등 4명의 각료가 교체되고, 현역 국회의원들이 검찰에 체포되는 사태로 확대됐다.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크게 하락했다. 이번 비자금 문제가 드러나게 한 일등공신은 고베가쿠인대학의 헌법학자 가미와키 히로시 교수(65)다. 머리에 감은 반다나가 트레이드 마크다. 가미와키 교수는 2022년 가을 신문기자에게 파벌의 파티권 수입 기재 누락에 대해 듣고, 인터넷상에서 파벌이나 정치단체의 수지 보고서를 확인해 파티권의 구매자와 판매자의 보고 금액이 엇갈리는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 그는 사실관계를 정리해 검찰에 형사고발했다.가미와키 교수가 ... -
테슬라 대 스웨덴 노조
최근 테슬라가 스웨덴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거부하면서 만들어낸 갈등이 스웨덴을 넘어 북유럽,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건은 지난 10월27일 스웨덴의 테슬라 정비소 10곳에서 일하는 정비사 130명이 테슬라 측의 임금 단체협약 체결 거부에 맞서 파업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정비사들이 소속된 스웨덴 금속노조가 먼저 파업에 나섰고, 이 ‘130명의 파업’은 스웨덴 내 9개 산별 노조가 연대, 동조 파업에 동참하며 급격히 확산됐다. 운송 노조, 항만 노조는 스웨덴 항구에 도착하는 테슬라 차량의 취급을 중단했고, 전기 기사 노조는 테슬라 충전소 설치와 서비스를 중단했으며 페인트공 노조 역시 테슬라 차량 도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테슬라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활동은 우편 노조의 신차 번호판 전달 거부였다. 스웨덴 교통국이 발급한 신차 번호판을 우편 취급 업체들이 테슬라에 전달하지 않자 테슬라는 신차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반테슬라 움직임은 북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 -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7개 토후국 중 가장 큰 지역이자 수도인 아부다비에는 그랜드 모스크라 불리는 셰이크 자이드 그랜드 모스크를 비롯해 루브르 아부다비 등 세계 최대의 문화자산들이 모여 있다. 2023년 3월 이곳 아부다비 문화지구에 새로운 문화복합단지가 완공되었다. 바로 ‘아브라함 가족의 집’이다. 아브라함 가족의 집은 아브라함 종교라는 같은 뿌리를 가진 이슬람, 가톨릭, 유대교의 예배당인 모스크, 성당, 시너고그가 디자인은 다르지만, 같은 면적에 동일한 재질의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다. 평화적 공존과 종교 간 이해를 상징하는 아브라함 가족의 집 프로젝트는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UAE 방문 당시 아부다비 왕세제, 두바이 통치자, 그랜드 이맘이 함께 주춧돌에 서명하면서 시작되었다. 2020년에는 UAE, 이스라엘 양 국가 간의 아브라함 협정 체결을 이끌어내었다. 아브라함 가족의 집은 웰컴센터 위에 이 세 예배당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공동의 정원이 있으며, 한 공간... -
일본은 원전을 버려라
1월1일 일본 이시카와현의 노토반도에서 진도 7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사망자는 230여명, 피난민은 1만7000명을 넘어섰다.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피난소 등에서 건강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가뜩이나 자연재해 피해가 심각한데 우리는 한 가지를 더 걱정해야 한다. ‘원자력발전소는 괜찮은가’라는 점이다. 노토반도에는 호쿠리쿠전력의 시카 원전 1·2호기가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가동을 중단한 상태지만, 사용 후 핵연료는 원전 내 수조에 그대로 보관돼 있다. 원전 부지 내는 진도 5강이라 주변에 비해 흔들림이 적었을 텐데도 말썽이 잇따랐다. 지진 당시 수조에서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물이 420ℓ가량 넘치고, 변압기에서 새어나온 기름 일부가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가장 큰 문제는 강진 직후 외부에서 들어오는 전원 5개 회선 가운데 2개가 끊어진 것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후쿠시마 제1원전의 전원이 모두 끊기는 바람에 원자로를 냉각시킬 수 없... -
난민과 이민에 장벽 쌓는 유럽
지난해 12월20일 유럽연합 이사회와 의회는 난민 심사와 회원국별 난민 배분 방법을 정한 ‘이민·난민 협약’을 타결했다. 이번 협약엔 사전 심사 규정 강화를 비롯해 신속한 자격 심사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유연함을 갖춘 의무적 연대’로 불리는 ‘이주·난민 관리 규정’이 가장 눈에 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회원국 중 일부에 난민 유입 부담이 발생할 때 다른 회원국이 일정 수의 난민을 나눠 받아들일 수 있다. 난민을 안 받을 경우, 이들을 송환하는 대신 거부한 난민 수에 따라 유럽연합 기금에 비용을 내야 한다. 유럽연합 이사회는 이 규정을 통해 아프리카, 중동과 가까운 회원국인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의 난민 유입 부담을 덜고 다른 회원국으로 이를 분배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이번 협약을 통해 난민 심사 속도를 높이고, 공정하며 지속 가능한 이주·난민 정책을 펼치겠다는 의도를 보여줬지만 난민 승인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고, 회원국 각자가 재정적인 책임을 지고 난민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