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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후에 묻는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란 이상 향한 아집 아냐 적절한 수준의 타협하는 일지난 2년간 정치 돌아보면‘대화’ 대신 ‘적대’만 가득 묻고 들을 준비는 돼 있나?22대 총선이 끝났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정치란 무엇인가?’돌아보면, 이 질문에 체계적으로 답한 최초의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에게 정치란 공동체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 종교, 전통을 지닌 다양한 집단들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행하는 인간적 활동이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서로 다름’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을 조정하는 일을 두고 ‘정의’(justice)라고 부르며, 정치란 이런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인간이 그 어떤 동물보다 정교한 언어를 가지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한다.돌아보면, 정치의 역사는 이 사실을 인간이 받아들여온 역동적 이야기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만든 정치적 질서는 언제나 ‘억압’과 ‘공포’를 동반했다.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보는 정치적... -
고르비와 메르켈 그리고 윤석열
메르켈처럼 하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주변의 관료주의 벽을 넘어 서민의 삶을 보아주었으면 한다 대통령이 ‘합리적 가격’ 반응 대신‘지속 가능’을 물었다면 어땠을까1985년 5월,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에서 군중들의 엄청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서슴없이 군중들을 마주했다.모여든 군중들은 몹시 놀란 얼굴로 고르바초프가 걷고 말하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한 군중이 고르바초프에게 말했다. “당신은 국민과 가까이해야 합니다.” 고르바초프가 웃으며 답했다. “어떻게 이보다 더 가까이하라는 말인가요?” 그를 둘러싼 군중들이 모두 활짝 웃었다.그렇다면 왜 소련 군중들은 그의 모습에 이토록 놀라고 신기해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고르바초프 이전 서기장들 중 누구도 준비된 대본 없이, 이렇게 비공식적으로 보통 사람들을 가까이서 만나고 연설하고 ... -
재난을 대하는 권력의 예의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권력은 시민 삶에 별 관심이 없고재난 앞에서 최소한 예의도 없다그렇게 고통받는 이들은 냉랭한 체감온도 속 뒤로 남겨진다우리나라에서 큰 ‘사회적’ 재난이 일어나면 반복되는 일이 있다. ‘진상을 규명하라’는 끊임없는 요구와 이에 대한 권력의 외면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런 요구는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이어진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이태원 참사 역시 마찬가지다.‘자연’이 일으키는 재난에 대해선 그 책임을 온전히 인간에게 지울 수 없다. 다만 좋은 국가일수록 이런 자연재난에 맞서는 인간이 자기 책임을 다하였는지를 면밀하게 따지고 책임을 묻는다.자연재난과 달리 ‘사회적’ 재난은 그 책임이 온전히 인간에게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이태원 참사에서 자연은 그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우리 인간이 평소에 혹은 특정한 시기에 필요한 대책을 소홀히 해서 생겨난 비극이다. 그렇기에 이런 재난에서 제대로 ... -
이 세상을 공유하지 않겠다는 마음
민주적인 정치란 세상을 공유하는 법을 찾는 일 그런데 상당수가 이를 잊고 있다‘악의 평범성’이 뿌리를 내리는 가장 비옥한 토양이 이런 곳이다2024년 새해 첫 주요 정치뉴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에서 체포된 피의자는 “이재명 대표를 죽이려 했다”고 진술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 원인은 여러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겠지만, 이런 정치인 피습은 대체로 정치적 적대 속에 혐오와 분열이 심해질 때 일어난다.2016년 6월16일, 찬반으로 팽팽하게 맞서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일주일 남겨둔 시점에 영국 국민은 충격적인 소식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유럽연합 탈퇴에 반대하던 노동당의 조 콕스 하원의원이 잔혹하게 암살당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에 찬성하던 50대 남성이 콕스 의원을 총으로 쏘고 그것도 모자라 흉기로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었다.이 무렵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이민자와 난민이었다. 브렉시트... -
류호정 의원의 ‘탈당’과 ‘제명’ 사이
‘폐쇄형’ 정당명부식 제도에서 유권자는 오로지 정당을 선택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례의원이 ‘날 제명해 달라’고 외칠 수 있는 우리 공직선거법은 바람직할까류호정 의원은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런 류 의원이 ‘새로운 선택’ 신당 창당 합류를 선언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 비전과 소속 정당의 비전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논란은 류호정 의원이 새로운 정당 합류를 선언하고도 정의당을 통해 얻은 의원직을 내려놓지 않으면서 생겨났다. 정의당은 지난 16일까지 의원직을 사퇴하고 당적을 정리해달라 요구했지만 류 의원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정의당이 류 의원의 당원 자격을 박탈하고 제명조치하면 되겠지만 그럴 수 없다. 그 이유는 공직선거법 때문이다.공직선거법 제192조 4항은 비례대표 의원이 “소속 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변경하거나 둘 이상... -
절차에 대한 무시, 국민에 대한 무시
정해진 절차를 잘 준수하는지는 권력이 얼마나 국민을 의식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다 우리가 존재감 없는 국민이 된 걸 증명할 단적인 사례는 KBS 사태다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행위와 결정의 공정성을 만드는 핵심은 뭘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절차다. 적합한 절차가 무엇보다 결정의 투명성을 담보하고, 더 나아가 공정성까지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론>(1971)에서 어떻게 적합한 절차가 공정성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지 간단한 사례를 보여준다.합리적 이익을 추구하는 여러 사람이 하나의 파이를 나누려고 한다. 이 파이를 나누는 사람 가운데 누구도 내 몫이 남의 몫보다 적기를 바라지 않으며 자신의 몫을 극대화하려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파이를 나눠야 이런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롤스는 이 파이를 나누는 사람이 맨 나중에 자기 몫을 선택하게 하는 ... -
이태원 참사 고통 곁에 서기
정부 외면 속에 이태원 유가족은 사실상 국가 없는 사람들이 돼 이젠 동료 시민으로서 내 차례다‘세상 떠난 이들 위해 진실 규명’ 다짐이 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기사 제목이 눈길을 끈다. “이태원 참사 해외 다큐멘터리 나왔다…한국에선 시청불가 상태.” 정말 볼 수가 없나 싶어 다큐멘터리 제작사의 자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찾아가 클릭해 본다. ‘404 오류’ 메시지가 뜨고 영상은 재생되지 않는다. 404 오류는 사용자가 사이트에서 존재하지 않는 URL(인터넷상의 파일 주소)을 탐색했을 때 표시된다. 부질없이 다시 한번 클릭해 본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같은 오류 메시지만 반복된다.우리 정치도 그랬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아직 제대로 사과한 이조차 없다. 모두가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기 바쁘다. 아무리 ‘책임’이라는 버튼을 클릭해도 제대로 이 참사에 응답하는 이들은 없다. 그저 제대로 막을 수 없었던 ‘사고’라 둘러대기 바쁘다. 담당 행정안전... -
이데올로기의 낙인찍기
미국서 오펜하이머가 낙인찍혔다마치 홍범도 장군처럼 말이다홍 장군 통해 우리 정부는 말한다누구라도 반대 목소리 높이면 그 낙인을 찍겠다고 말이다‘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돌아왔다. “제일 중요한 게 이념입니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이 나라를 제대로 끌고갈 수 있는 그런 철학이 이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다. 그러면서 타도의 대상으로 내세운 이념이 ‘공산전체주의’다.21세기도 중반을 향해가는 이 무렵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의외로 그 해답은 ‘이념’이라는 말 자체에 있을지도 모른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모든 사유에는 세 가지 고유한 전체주의적 요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첫째, 이데올로기 사유에 빠진 이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자신이 내세우는 이념 하나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렌트는 이런 경향을 ‘총체적 설명’이라 부르는데, 이에 빠져든 이들은 이념으로... -
‘공통 감각 없는 사회’라도 이동관은 안 된다
사회 ‘공통의 것’을 만드는 데 과연 이동관 후보자가 적합할까공통 감각이 남아있는 사회라면 대다수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흔히들 말한다. 세상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정치는 더 그렇다고. 정치란 편가르기가 핵심인데 이런 구분에서 ‘합리적인 것’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고. 더군다나 인간이란 감정적인 동물이라 정치를 두고 합리적이니 그렇지 않으니 따지는 일 자체가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라고. 결국 인간은 다 자기 이익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그냥 보통 사람들이 하는 말 같지만, 이런 관점에 세워진 정치이론도 있다. 아니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정치이론에서 가장 강력한 모델이기도 하다. 정치적인 것의 핵심은 결국 ‘적과 친구의 구별’이고, 민주주의도 이런 편가르기를 피해갈 수 없다는 칼 슈미트의 이론이 그렇다. 심지어 20세기 민주주의 모델 중 가장 먼저 생겨났고, 아직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그런데 한편으로 ... -
진짜 ‘이권 카르텔’은 어디에 있을까
윤 대통령이 정의하는 카르텔이 뭔지 명확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특정 집단이 특정 분야 독과점을 만약 카르텔이라고 이른다면 이 정부야말로 ‘검찰 카르텔’이다요즘 ‘카르텔’(cartel)이란 표현이 유행이다. 이 용어는 ‘파피루스 한 겹’을 의미하던 그리스어인 카르테스에서 유래되었는데, 17세기 말부터 정치적 분쟁을 문서로 해결하는 관행이 유럽에서 온전히 자리 잡으며 쓰이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유럽의 국가들은 휴전, 전쟁의 종결, 이에 따른 포로 교환 등의 문제를 문서로 명확히 해결하였는데, 이렇듯 ‘전쟁 중인 국가 간의 문서화된 합의’를 뜻하는 말이 ‘카르텔’이었다. 이렇게 정치적 기원을 지닌 ‘카르텔’이란 용어는 20세기가 가까워질 무렵엔 국가 정부 간의 국제적 합의를 지칭하는 말로 의미가 확대됐다. 카르텔이 국제합의를 뜻하는 정치적 의미와 달리 경제적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곳은 19세기 중엽 독일이었다. 이 당시 독일은 프로이센을 비롯해 올덴부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