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쓰던 책상 위에는 지구본이 있었다. 그 작은 구체는 내게 세계를 한 손에 쥘 수 있는 사물로 만들어줬다. 지구는 작고 둥그니까 인간은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믿게 했다. 그 덕분이었을까. 성인이 된 나는 여행자가 됐다. 유럽의 국경을 마음껏 넘었고, 낯선 세계로 떠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게 세계는 지구본만큼 작았고, 딱 내 보폭만큼 넓어 보였다. 내가 밟은 모든 땅은 여행자에게 호의적이었고, 나는 불편하거나 위험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낯섦’을 즐겼다. 더 넓은 선택지, 더 먼 거리, 더 많은 나라.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은 곧 세계를 얼마나 많이 점유하느냐로 측정되는 듯했다. 각 나라의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고, 맛집을 찾아가고, 기념품을 사면서 내가 만나고 싶었던 ‘낯섦’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넓이를 좇던 내 여행에 물음표를 던진 것은 우연히 TV에서 본 난민들이었다. 전쟁을 피해 바다 건너 유럽의 땅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의 배를 누군가 밀어내는 장면. 여자와...
2025.12.10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