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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비즈니스 공공 주도로
멀리서 보면 핑크빛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20년 넘게 유망하기만 했던 시니어비즈니스 이야기다.초고령사회가 목전이고 노인인구 1000만 시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시장에는 시니어비즈니스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가득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시니어비즈니스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정부정책, 규제, 공공복지와의 충돌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돈 쓸 사람이 없다. 당사자는 돈이 없어서 못 쓰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못 쓴다. 자식들도 자기 먹고 살기 빠듯해 부모 위해 돈 쓸 여유가 없다. 결국 공공재정에 의존적인 사업모델을 만들 수밖에 없다. 공공은 보수적이고 기득권 벽이 높다. 매우 뾰족하고 구체적인 사업으로 직접 가치도 증명하고 시장의 틈새를 열어야 한다. 이 정도 능력과 열정이면 시니어비즈니스보다는 다른 시장이 훨씬 매력적이다 보니 이 시장엔 돈도 사람도 없고 혁신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실속없던 시니어비즈니스 시장이 최근 ... -
응원의 외주화
겨우내 체중이 3㎏ 불었다. 처음엔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근육이 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얼굴이 동그래진 것을 보고는 단순히 살이 찐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에게도 절제의 기회는 있었다. 올 초 연속혈당측정기(CGM)를 착용하고 실험해볼 일이 있었다. 음식별로 달리 튀는 혈당 스파이크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게 맞는 음식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데이터는 데이터일 뿐이었다. 강력한 변수라 할 수 있는 우리집 냉동실은 맛집 그대로의 풍미를 재현한 떡볶이와 리소토, 해장국으로 차 있었고, 나는 이 재고의 양만큼 부지런히 포동포동해졌다. 20여년 축적된 다이어트 노하우를 총동원한 답은 이렇다. 저녁 8시 넘어서는 맥주도 입에 대지 않는다. 달고 짠 음식은 피한다. 버터가 들어간 빵, 특히 크루아상은 일주일에 한 개만 먹는다. 음식물 섭취 뒤에는 절대 소파에 드러누워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지 않는다. 이 정도로 나를 혹사시키지 않으면 체중 감량은 어림도 없다. 그리고 이대로는 최근 앓... -
용감한 자에게 행운이 깃든다
살인청부업자였던 존 윅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났지만 아내 헬렌은 이내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헬렌이 그에게 남긴 것은 비글 품종의 강아지 한 마리였습니다. 자신이 떠난 후 혼자 남게 될 남편에게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마지막 배려였습니다. 강아지와 주인공의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주유소에서 우연히 마주친 러시안 마피아 요제프는 존 윅의 자동차, 1969년식 머스탱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자신에게 팔기를 권했으나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밤사이 존 윅의 집을 습격합니다. 그렇게 자동차를 훔쳐내는 과정에서 어린 강아지인 데이지를 바닥에 내동댕이쳐 죽입니다. 2014년 개봉한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존 윅>의 도입부입니다. 세계 최강의 남자는 킬러로 복귀해 처절한 피의 복수를 시작하고, 홀로 거대 범죄조직을 무너뜨리며 영화는 끝납니다. 남자에게서 사랑하는 것들을 함부로 빼앗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 -
4·3 제주는 살아 있다
제주도는 울고 있었다. 제주 4·3 제76주기 전야제가 열리는 제주도엔 낮부터 제법 쌀쌀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제주도는 외치고 있었다. 그날의 상처와 슬픔을 넘어 ‘제주도는 살아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린 4·3 전야제 <디아스포라, 사삼을 말하다>는 4·3을 대표하는 미적 형식의 가능성을 예감하게 하는 무대였다. 상징이 없는 기억투쟁이란 오래 가지 못한다. <기억·서사>(2000)의 저자 오카 마리가 “말할 수 없는 것들은 사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그런 의미일 테다. 4·3이라는 ‘사건’의 기억을 타자와 나누어 갖기 위해서는 사건이 먼저 이야기되어야 한다. 제주 4·3은 현기영의 <제주도우다>,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의 <화산도>, 시인 김시종의 시집과 자서전 <조선과 일본에 살다> 등을 통해 문학적으로 재현되었다. 적다고 할 수는 없지만,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다. 대한민국... -
자녀 세대에 무엇을 상속할까
작년 말 ‘상속·증여세법’이 개정되었다. 올해부터 결혼하는 자녀에게 1억원의 추가 비과세 증여를 할 수 있는 법이다. 부부합산 최대 3억원까지 양가로부터 증여세 없이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제적 지원을 받아 혼인이 늘면 저출생 문제 해소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3600조원에 달하는 고령층의 막대한 자산이 젊은층으로 이동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억대의 ‘부모 찬스’를 쓸 수 있는 청년은 제한적일 터라 ‘부자감세’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몇몇 지인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마당발로 유명한 대학 동기의 한마디가 조금 충격이었다. “그동안 제도가 너무 비현실적이었지. 야, 우리가 평생 회사와 조직에 충성하며 얼마나 뼈빠지게 일했냐? 그렇게 모은 돈을 자식들에게 못 준다는 게 말이 되니? 사람들은 이미 예전부터 법의 선을 넘지 않는 방법으로 자식들한테 야금야금 돈을 물려주고 있다고. 이게 특별한 부자들만 그러는 게 아니야.” 그동안 소득과 자산 ... -
세상을 담는 방법
봄이 오고 있다. 이맘때면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봄날은 간다>의 ‘대나무 숲 소리 수집 신’이 떠오른다. 배우 유지태가 연기한 사운드 엔지니어는, TV와 라디오라는 디지털 매체 속에 꼭 맞는 음성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오프라인의 소리를 센서로 모아 저장장치에 담는다. 인간 세상을 학습하는 인공지능도 이렇게 오프라인의 세상이 디지털로 전환된 것을 학습한다. 사람들이 찍은 이미지와 영상에 담긴 사물들의 이름을 익히고, 그 이름들의 관계를 학습한다. 눈이 많이 쌓이면 눈사람이 있구나, 숟가락이 있으면 젓가락이 있구나, 횡단보도에 녹색불이 켜지면 사람들이 길을 건너는구나. 세상을 채우는 관계들을 토대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세상을 배운다. 그런데 세상일이 꼭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꽤 잘 알고 있다. 가령 차도에 갑자기 공이 굴러 들어와 아이가 차도로 뛰어나올 수도 있고, 공유자전거가 애먼 도로가에 뉘어져 있을 수도 있... -
해피 버스데이!
큰딸 민지의 생일입니다. 2006년 3월21일은 제 평생 가장 기쁜 날이었습니다. 태어나 준 것이 고마웠고, 이제껏 곁에 있어 주는 것이 고맙습니다. 훌쩍 커버린 요즘에야 데면데면하지만 그 기쁜 마음을 전하려고 매년 생일을 축하합니다. 우리 나비의 생일은 1월9일입니다. 농장에서 어미와 형제들이 함께 구조된 탓에 태어난 날을 정확히는 알 수 없어서 집에 처음 온 날을 생일로 정했습니다. 누나들은 용돈을 모아 장난감을 사주기도 하고, 알아듣지는 못할망정 생일 축하 노래도 열심히 불러줍니다. 나비가 잘난 명견이어서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것도 아니고, 큰일을 해냈기에 축하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세상에 와준 것이 감사하고, 우리 식구가 되어 준 것이 기쁘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생일을 축하하는 일은 그저 존재함을 감사하는 마음이라 더욱 소중하다 생각합니다.“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 -
아버지의 디지털 일상
아침을 깨우는 전화벨 소리. “뭘 잘못 눌렀는지 TV가 안 나온다. 오늘 올 수 있니?” 다급한 아버지 목소리다. 온종일 TV를 끼고 사는 아버지를 위해 좋아하시는 바둑을 볼 수 있게 유튜브를 세팅한 후, 나름 철저히 반복 학습을 시켜드리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오늘은 못 간다고 하니 전화를 툭 끊으신다. 두 시간쯤 후 “관리사무소 직원이 와서 해결해주고 갔다”는 아버지 문자를 받고, 괜한 민폐를 끼친 것 같아 찜찜했다. 이번엔 TV가 문제였지만, 디지털 기계와 관련한 이런 일은 아버지와 자식들에게 이제 일상이 되었다.고령화와 디지털 격차는 이미 전 국가적 이슈다. 당연히 관련 대응책은 쏟아지고 있고, 지역에서 무료로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도 많다. 아버지도 경로당에서 배웠다며 뜬금없이 사진과 문자를 툭 보내는가 하면, 이상한 문자는 절대 누르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계신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문제는 노인과 디지털 일상이 종종 예측불허일 만큼 광범위하다는 거다... -
향노의 자화상
“ㄱ ㄴ ㄷ/ ㅏ ㅑ ㅓ ㅕ/ 처음 보는 글자/ 가 갸 거 겨/ 가지/ 고구마/ 글자 겨우 아니/ 하하 호호/ 로 료 브 비/ 글자가 비료지.” 19세에 충북 괴산 산골에 시집와서 평생 농사일을 해온 78세의 안대순 할머니가 쓴 글이다. 추영자 할머니는 괴산에 시집오던 날의 감회를 “앞에도 산 뒤에도 산/ 산만 보여/ 도망도 못 가네”라고 적었다. 진달래반 정희 할머니는 “엄마 산소에 있는 열매를 먹으면/ 젖맛이 났다”고 회상한다. 한때 빛나는 이팔청춘이었던 할머니들은 이제 괴산두레학교에서 벗들과 함께 한글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시화집 <얘들아 걱정 마라, 내 인생 내가 산다>(삼인)는 2009년부터 성인문해교육을 해온 괴산두레학교(대표 김언수)가 2014년부터 10년 동안 어르신들이 쓰고 그린 시화를 엮은 책이다. 해마다 할머니들의 시화를 모아 달력을 만들어 보급했다. 60대 후반에서 90세가 넘은 일흔아홉 분의 할머니들, 네 분의 할아버... -
각자의 쓰임
150명 정도의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연수 과정에 일주일째 참석하고 있다. 인적 자본을 쌓는 네트워킹이 퍽 중요한 행사인데, 그래서 각자가 스스로를 부각하는 포인트도 다채롭다. “저는 좋은 데 많이 투자했어요” “저는 경력이 빵빵하답니다” “최신 트렌드는 다 저에게 물어보세요” “제가 사람들 모아볼게요” 등등 강점도 다양하다. 비즈니스 인맥을 강화하는 자리인 만큼, 필요에 따라 혹은 공통의 관심사에 따라 그룹별로 뭉쳐지기도 한다. 정확히 1년 전, 이 행사 참가자 수만큼의 글로벌 생성형 AI 스타트업들을 분석해 보고서를 냈었다.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기술을 가지고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는 스타트업들이 대체 사용자들의 어떤 필요를 공략하려 들었는지를 촘촘하게 조사해 분류한 내용이었다. 한바탕 매출을 끌어올린 가상 프로필사진 생성 서비스도 있고, 마케팅 문구를 1초 만에 뽑아주는 회사도 있으며, 동영상을 맥락별로 잘라 자막을 자동으로 넣어주는 회사도 있었다. 각자가 포지셔닝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