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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를]나의 죽음을 가족에게 알려라
    나의 죽음을 가족에게 알려라

    죽음 준비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관계는 의외로 가족이다. 우리는 노년의 부모를 걱정하고 여러모로 챙기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하지 못한다.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이다. 죽음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괜히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고, 부모에게는 불효처럼 느껴질까봐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족은 이 대화를 끝까지 미룬다. 웰다잉을 이야기하는 사회 분위기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가족 간에는 침묵이 이어진다.웰다잉은 교양이 아니라 삶의 실천이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비로소 현실이 된다. 그 ‘누군가’가 바로 가족(또는 임종 시 내 곁을 지켜줄 사람)이다. 특히 부모와 자식 사이의 대화는 웰다잉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많은 사람이 죽음 준비라고 하면 장례 방식이나 유언 같은 것을 떠올리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 시기의 삶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일이다.예를 들어 이런 질문이다. ...

    2026.04.15 19:52

  • [겨를]리듬을 맞춰요
    리듬을 맞춰요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이 왔다. 세상 일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돌아간다지만, 집 밖을 나서는 발걸음까지 막기에는 날이 너무 좋다.그러다보니 길목마다 차량이 가득하다. 드나드는 구간마다 차들은 각각의 박자로 내 앞에 들어오기도 하고, 내게 앞길을 내주기도 한다. 우리는 그 순간마다 깜빡이를 반짝이며 상대에게 신호를 한다. 이제는 내가 들어갈 차례라고, 혹은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경쾌하게 노란빛을 발산한다. 그렇게 한발 들이대 볼 수 있는 틈새를 파고들기 위해, 우리는 뒤에서 오는 차의 속도를 감지하고, 빈틈에 들어갈 수 있는 나의 속도를 예측한다. 우리는 그 도로의 리듬을 따르며 움직인다. 홀로 다른 박자를 타면, 사고가 나거나 크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일상 속에서 치밀하게, 그리고 본능적으로 호흡을 맞추며 살아가는 데 익숙하다.인공지능(AI) 기술을 경험하는 사례가 늘면서, 기술 발전의 속도가 너무 빨라 시장의 요구 변화를 따라잡기 어렵...

    2026.04.08 19:56

  • [겨를]기차가 오지 않는 간이역에서
    기차가 오지 않는 간이역에서

    ‘아탕드르(Attendre)’는 ‘기다리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다. 이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아드-텐데레(ad-tendere)’로, ‘~을 향해 몸을 뻗다’라는 역동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우리말의 ‘기다림’이 정적이고 수동적인 인내를 연상시킨다면, 아탕드르는 무언가를 향해 몸과 마음을 뻗는 능동적인 움직임을 전제한다. 즉 기다림은 멈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 자신을 확장하는 유연한 운동인 셈이다.인구 소멸 지역인 우리 동네에서 쓸쓸함이 차오를 때면, 나는 춘포역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늘 두셋 모여 사진을 찍거나 간이역의 정취를 살피는 사람들이 있다. 나들이객의 화사한 옷차림과 들뜬 목소리는 정체된 마을에 작은 생기를 불어넣고, 그 활기는 이내 내게도 전해진다. 이제 이곳에서 즐겁게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1914년 일제가 쌀 수탈을 위해 세운 이 목조 역사는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기다림을 목격해왔다. 1970~1980년대만 해도 통학하는 학...

    2026.04.01 20:00

  • [겨를]인공지능이라는 인조노동자
    인공지능이라는 인조노동자

    인공지능(AI)이 열풍이다. 미래 예측에서 비판 담론까지 관련 책이 쏟아지고 있다. 다른 업종 사람들은 ‘딸깍 출판’ 앞에서 출판사는 괜찮으냐고 물어온다.글쎄, 재미없고 의미도 없는 AI 양산형 책은 독자들이 걸러나갈 것이다. 출판에서 생산의 자동화는 요원하다. 저자가 글을 쓰고 편집자가 마감을 하는 기존 업무 흐름에 AI를 들여오는 과정은 자동화와는 다른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올 들어 나도 편집 업무에 AI를 쓰기 시작했다. 신기술에 열린 마음을 가지라는 조직의 압박에 굴복하고 근속연수가 비슷한 동료들과 경험을 나눈다. 요즘은 A사보다 B사가 대답을 훨씬 잘하지 않아? 초기 세팅을 잘해두면 신입에게 이것저것 시키면서 일하는 것과 비슷해. 한참 이야기하다가 인간 신입사원을 맞아본 지 오래인 우리는 침울해진다.2025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종합 독서율은 38.5%가 나왔다. ‘최근 1년 내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중 1개 매체 이상 읽은 비율’이 그 전해에는 ...

    2026.03.25 19:56

  • [겨를]가장자리에 서다
    가장자리에 서다

    나이 50이 넘어 뒤늦게 시작한 활동가 생활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겼다. 전업 생활자와 다르게 여러 곳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 매년 2~3월은 총회 시즌이다. 올해는 주거 영역에서의 역할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웰다잉과 돌봄 영역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60대 중반에 접어드는 내 나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제는 티 나지 않는 가장자리에서 노년을 준비하며 시민의 삶을 이어가려 한다.우리 사회에서 ‘시민’과 ‘노인’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어쩐지 어색하게 들린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시민과 65세 이상의 생애주기를 살아가는 노인은 겉도는 느낌이다. 이러한 괴리는 노인을 노인이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에서도 드러난다. ‘어르신’ ‘시니어’ ‘실버’ 같은 호칭도 부족해 ‘선배시민’ ‘60+’ ‘신중년’ 등 새로운 호칭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는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노년에 대한 부정적 담론과 나이듦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

    2026.03.18 20:01

  • [겨를]환대가 사라진 세계
    환대가 사라진 세계

    종종 내가 이 사회 안에서 어떤 몫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연간 12t(2024년 한국인 평균)의 탄소를 배출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럼에도 이웃과 사회에 조금은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사회적 자아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한 발씩 나아가 보는 거다. 글을 쓰고, 사람을 모으고, 생각을 키우고, 주장을 하고.이런 움직임이 가능해진 것은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그 믿음은 홀로 오롯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격려하고 인정해 준 사람들이 있었고, 지난한 성장의 시간을 함께 버텨준 선후배와 동료, 조직과 공동체가 있었다. 그런 지지가 있었기에 스스로를 믿고 한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발을 내딛다 보면,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 서는 법을 배운다.‘일의 미래’를 이야기하며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고 연구하다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다. ...

    2026.03.11 20:04

  • [겨를]3월의 숨
    3월의 숨

    겨우내 언 땅에 시큰둥했던 강아지가 온종일 마당에 나가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번씩 얼굴과 발을 씻겨야 한다. 무른 흙을 밟고 다니며 곳곳에 코를 파묻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따라 나도 흙을 한 줌 쥐고 코를 가까이 대본다. 미지근해진 흙에서 약간의 단내와 옅은 시큼함이 올라온다. 살아 있는 것의 냄새다. 땅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강아지가 귀를 쫑긋 세운다. 뿌리들이 내뱉는 숨소리가 들리는 걸까.아직 삭막한 3월의 땅이지만 그 아래에서는 미생물이 깨어나고 공기가 토양의 틈을 부지런히 오간다. 어느덧 시골 생활 3년째. 마당을 가꾸고 흙을 만지는 일에 여전히 서투르지만, 흙이 숨 쉰다는 말이 문학적 은유가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토양은 숨을 쉰다. 흙의 허파는 흙 속의 생명체들이다. 박테리아, 연체동물, 절지동물, 식물의 뿌리들이 산소를 쓰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 이 기체 교환은 육체를 가진 모든 것과 다르지 않다. 몸을 가...

    2026.03.04 19:59

  • [겨를]2월은 총회의 달
    2월은 총회의 달

    세 가지 시민단체에 가입해 있다. 상근직이나 임원은 아니지만 보통 소식지로 동향을 파악하고 관심 있는 행사가 있으면 참여한다. 월말에 회비가 차례로 빠져나갈 때 소속감을 느낀다.2월은 총회가 많은 달이다. 지난해 활동을 점검하고 예산안을 심사한다. 2월에 주로 하는 이유는 전년도 회계를 마치고 새해 계획을 발표하기 알맞은 시점이라 그런 것 같다. 시민단체에 총회는 설 명절 같다.회원들은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총회에서 단체의 방향을 결정한다. 무릇 행사란 늘 모객이 걱정이지만, 총회야말로 의결정족수가 있으므로 메일과 메시지에서 전화까지 여러 통로로 참여를 독려한다. 시민단체의 분위기는 총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와서 활발하게 소통하는지에서 보인다.2년마다 돌아오는 대표 선거 결과가 발표되는 한 단체의 총회에 다녀왔다. 이번 선거에는 두 후보가 출마해서 경선이 되었는데 나는 2번 후보의 선거운동을 했다.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유세한 것은 아니고, 선거송을 녹음해서...

    2026.02.25 19:57

  • [겨를]요양사업 규제의 방향전환
    요양사업 규제의 방향전환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요양사업 민간 참여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논쟁이 다시 거세다. 시설이 부족하니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과, 규제를 풀면 돌봄의 질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맞선다. 이 논쟁에서 자주 소환되는 비교 대상이 일본이다. 일본은 민간이 활발하게 참여하는데도 시스템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국과 일본은 똑같이 민간 참여를 강조했지만, 그 설계 방식은 달랐다.우리나라의 요양사업은 장기요양보험 도입 초기부터 ‘진입 규제’ 중심으로 설계됐다. 대표적인 것이 요양시설 설립 시 토지와 건물의 직접 소유 요건이다. 제도 초창기, 부실 운영과 잦은 폐업, 부정 수급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되면서 정부는 자본과 책임성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강화해 왔다. 그 결과 현재의 요양 시장에서는 운영 철학이나 전문성 못지않게 부동산 확보 능력이 진입에 중요한 변수로 작동한다. 민간 참여는 확대되었지만, 참여 주체는 오히려 자본력...

    2026.02.18 19:30

  • [겨를]우리, 자부심을 가져요
    우리, 자부심을 가져요

    “출근하는 것도 힘든데, 주식까지 공부해야 하나요”라는 문구를 보았다. 출근길의 바로 옆 차로 버스에 붙은 광고였다. 주가가 크게 오르는 사이 주식 계좌 하나 없는 나만 벼락을 맞은 기분, 인공지능(AI) 시대 생산성이 이삼백 프로씩 오른다는데 나만 별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기분. 그러니 뭐라도 시작은 해야겠어서 유튜브와 교육 플랫폼과 책을 접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하루 종일 너무 열심히 일했다. 에너지가 부족해 머릿속에 무얼 넣을 틈이 없다.우리는 언제까지 공부해야 할까. “이제 겨우 사십 몇년 살았는데, 주산부터 AI까지 배워야 하는 인생은 너무 버겁다”는 누군가의 자조처럼,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느라, 뒤처지면 안 된다는 공포에 맞서느라 애쓰고 있다. 그렇게 겨우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해 일자리를 찾았지만, 이후 연봉의 인상 폭은 턱없이 작다. 일하며 기르는 능력에 대해선 제대로 보상받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공부의 방향과 효용을 둘러싸고 다...

    2026.02.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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