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청부업자였던 존 윅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났지만 아내 헬렌은 이내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헬렌이 그에게 남긴 것은 비글 품종의 강아지 한 마리였습니다. 자신이 떠난 후 혼자 남게 될 남편에게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마지막 배려였습니다. 강아지와 주인공의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주유소에서 우연히 마주친 러시안 마피아 요제프는 존 윅의 자동차, 1969년식 머스탱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자신에게 팔기를 권했으나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밤사이 존 윅의 집을 습격합니다. 그렇게 자동차를 훔쳐내는 과정에서 어린 강아지인 데이지를 바닥에 내동댕이쳐 죽입니다.
2014년 개봉한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존 윅>의 도입부입니다. 세계 최강의 남자는 킬러로 복귀해 처절한 피의 복수를 시작하고, 홀로 거대 범죄조직을 무너뜨리며 영화는 끝납니다. 남자에게서 사랑하는 것들을 함부로 빼앗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려는 영화입니다. 하필 강아지와 자동차는 이 세상 어떤 남자에게도 가장 소중한 것들이기에, 그의 아픔에 공감한 사람이 많았고, 그의 복수에 전 세계가 열광해 현재 시리즈는 4편에 이릅니다.
지난 4월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진영이 대승을 거뒀습니다.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집권당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표심이 유독 많은 우리의 선거 지형에서 야당의 승리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역대 선거 결과를 살펴보아도 그러합니다. 민주진보진영이 야당으로서 과반 의석을 달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조국혁신당’의 약진입니다. 비례대표로만 12석을 차지했습니다. 단박에 원내 3당 지위에 올라섰고, 이제는 교섭단체 구성에도 열심입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사랑하는 것들을 빼앗긴 남자입니다. 검찰은 사모펀드 의혹과 입시비리, 가족이 운영한 웅동학원의 교사 채용비리 등으로 조 전 장관은 물론 아내와 두 자녀, 동생에 이르는 온 가족을 샅샅이 털었습니다. 그 결과 아내 정경심 교수는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해 9월 가석방으로 풀려났습니다. 딸 조민씨는 고려대와 부산대 의전원 입학 취소로 고졸 학력이 되었습니다.
임경빈 작가는 “공동체의 기억이란 그 구성원인 시민들이 어떤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논의하고 숙고한 합의의 총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말하자면 제주 4·3이나 광주 5·18과 같은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규정해 무엇으로 기억할 것인가 하는 의미인데, 저는 이번 총선을 사랑하는 것을 빼앗긴 남자의 복귀, 그와 그의 가족에겐 혹독한 올가미를 씌웠으면서도, 정작 자기 식구, 자기 편에게는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대통령과 정치검찰을 향한 그의 처절한 응징의 시작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조국혁신당에 표를 준 유권자들은 그의 복수를 응원하고 힘을 보태준 겁니다. 영화 <존 윅>의 한 장면, 주인공의 등에는 “FORTIS FORTUNA ADIUVAT”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한글자막으로 “용감한 자에게 행운이 깃든다”라고 번역되었는데, 멋들어진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