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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자유민주주의 정권’의 자폭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로 온 국민이 경악한 12월3일 밤, 안위를 걱정하는 전화와 문자를 받았다. 하지만 막상 내 가슴을 크게 억누른 것은 다가올 시대착오적인 폭압에 대한 공포나 분노가 아니라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특히 경제에 대한 걱정이 컸다. 어렵게 쌓아온 민주주의의 퇴행도 참담했지만, 그것은 우리가 싸워서 되찾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는 한 번 무너지면 회복이 어렵다. 그래서인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국회의원들과 이를 막으려는 계엄군의 국회 난입을 TV 생중계를 통해 초조하게 지켜보면서 단톡방에 처음 올린 나의 문자는 “오늘 중으로 진압이 안 되면 나라 경제 거덜난다”였다. 나의 예를 들었지만, 그날 많은 국민이 2024년 문명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믿기 어려운 이 망동을 보며 이와 비슷한 걱정을 했을 것이다.우리나라는 무역으로 먹고사는 통상국가의 모습으로 선진국의 문턱을 넘었다. 지금은 전통적인 산업을 넘어서 K팝을 ... -
트럼프의 취임과 남북관계의 진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많은 이들이 그가 한국에 내밀 과도한 계산서를 우려하지만, 한편으론 그가 전운이 감도는 한반도를 안정시키는 데 절실히 필요한 대화를 공언했기에 어느 정도 기대도 있다. 물론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북·미관계는 트럼프가 비핵화 협상을 벌였던 1기 재임 시절과 많이 달라졌다. 그사이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이 더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비핵화 협상 중단을 선언하고 2022년 9월 핵무기 보유를 법제화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의 핵을 놓고 더는 흥정할 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어놓은 여기에 핵 무력정책의 법화가 갖는 중대한 의의가 있다”고 천명하였다. 이로써 북한은 사회주의 몰락 이후 30년간 추구해온 ‘워싱턴을 통한 활로 모색’이란 생존전략을 포기하였다. 대신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재래식 군수물자 부족에 허덕이던 러시아에 대량의 재래식 무기 제공 기회를 포착하면서 어렵지 않게 ‘북방과의 국제협력을 통한 활로 모색’으로 생존전략의 ... -
미 대선 결과와 한반도
미국의 대통령 선거전이 예측불허의 박빙으로 흐르고 있다. 흔히 공화, 민주 양당의 대외정책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세계 최강 대통령을 뽑는 자리다 보니 세계인의 촉각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비극적인 소모전 늪에 빠졌고 중동 정세마저 전운이 짙어지자, 평화를 갈구하는 많은 이들이 미 대선을 더 주시하는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극단적인 갈등의 악순환에 빠진 남북관계 속에서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도 미국의 대선에 큰 관심을 둔다. 그리고 이처럼 관심이 커진 것은 기존 워싱턴의 문법을 거부하는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때문이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종식을 공언하고 대통령 재임 시 김정은과 ‘우호적 관계’였음을 과시하며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자신감을 보인다. 워싱턴의 주류세력과 트럼프의 일탈적 언행에 질린 이들은 코웃음 칠지 모르나, 꽤 많은 이들이 트럼프가 적어도 현직 부통령인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보다 국제... -
국경에서 본 2024년 여름 북한 풍경
북한을 연구하면서 될 수 있으면 매년 북·중 국경 일대를 답사하려 했다. 올해도 늦은 8월에 국경답사를 다녀왔다. 북한을 직접 방문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고 신뢰할 만한 북한 관련 통계자료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국경답사는 북한의 실상을 파악할 차선의 대안이다. 물론 북·중 국경에서 한두 차례 북한을 바라본다고 해서 이 사회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 주민들의 말과 생각을 읽을 수 없기에 국경에서 보는 북한은 마치 풍경화나 풍속도를 보는 느낌이다. 따라서 이 풍경화를 뚫고 들어가 북한 사회의 내면을 읽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방법의 하나가 시계열 분석이다. 매년 혹은 2~3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북·중 국경의 풍경을 시계열로 비교 관찰하면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지속하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되고 이를 통해 북한을 객관적으로 해석할 힘을 얻게 된다. 1996년부터 30년 가까이 북·중 국경에서 바라본 북한의 국경 도시와 농촌, 그리고 산야는 대체로 2010년대... -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 가능한가?
윤석열 정권이 이렇게 빨리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줄 몰랐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도 한반도 평화가 무너지는 속도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윤 정권 출범 후 남북 간에는 갈등이 깊어지면서 상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할 시스템마저 붕괴하였으며, 한반도 안보정세의 주요 변수인 중국,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이처럼 한반도가 급작스럽게 위기로 치달은 한가운데에는 윤 정권이 한반도 평화증진을 위해 국방력 강화와 협상을 병행했던 전통적인 정책 기조 대신에 내세운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 정책이 있다. 윤 대통령은 “진정한 평화”는 “오직 압도적 힘에 의해서만 지켜진다”며 북한에 대한 ‘압도적 힘’을 줄곧 주창해왔다. 그가 이 ‘압도적 힘’을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않아서 그 힘이 단순히 국방력을 지칭한 것인지, 아니면 경제, 외교 등 총체적인 국가 능력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의 평소 언행으로 보아 ‘압도적 힘... -
북한의 생존전략 변화와 북·러 조약
지난달 19일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에서 양국은 오래전 폐기했던 군사동맹 부분을 복원했으며, 최초로 포괄적이며 구체적인 경제협력에 합의하였다. 그런데 이 조약에 대한 세간의 분석은 군사적 위협을 집중 조명할 뿐, 북한의 미래와 관련해서 지니는 의미나 안보 면에서 역설적으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여지 등은 제대로 다루지 않은 느낌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살펴보려 한다.북·러 조약은 북한이 그간 추구해온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한 생존과 발전 전략’을 포기한 상황에서, 북한에 ‘러시아, 중국 등 비서방권과의 협력을 통한 생존과 발전’이란 새로운 기회 공간을 제공하였다. 사회주의진영이 몰락한 1990년 전후부터 북한은 외교적 고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미국의 승인을 통한 국가생존’ 전략을 추구하였다. 북핵 문제 발생과 그에 대한 미국의 강력 대응 앞에서 이 전략은 더욱 굳어졌다.... -
대북전단과 오물 풍선, 우리가 잊고 있는 것들
북한의 오물 풍선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남북 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열흘간 북한 오물 풍선 경보를 알리는 휴대전화의 재난 안전문자가 세 번이나 울렸다. 탈북민 단체가 북한으로 전단을 날려 보내자 북한이 오물 풍선으로 맞섰고, 정부는 다시 이에 맞서 ‘9·19 군사합의서’의 효력을 정지한 데 이어 대북 확성기 방송을 가동했다. 그러자 북한은 “의심할 바 없이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강도를 높인 추가 대응을 경고하고 나섰다. 남북이 상대에 대한 위협수단을 높여가며 출구가 보이지 않는 위험한 치킨게임 양상이다.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는 문명 시대를 조롱하는 비상식적이며 개탄스러운 일로서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북한에 중단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남한이 해야 할 몫도 있다. 오늘의 사태를 초래한 원인을 냉철하게 짚어보면, 위기는 남북이 상대방 지역에 대한 전단 살포를 금지한 ‘남북합의의 위반’에서 출... -
통일담론이 아니라 평화담론이 절실하다
얼마 전 통일 관련 토론회에 참가했다가 한 패널로부터 “역대 진보정부에서는 왜 통일담론을 얘기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요즈음 윤석열 정부가 ‘새로운 통일담론’을 만든다고 분주한데, 이와 맥을 같이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아주 상식적이고 뻔한 답을 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는 통일을 지향했지만, 남북 간 적대와 대결 상태 속에서 당장 시급한 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는 일이라고 보고 평화정책에 집중했다. 우리가 평화라는 강을 건너지 않고 통일로 나아갈 수 없기에 역대 진보정부는 통일이 아니라 평화담론 개발에 매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자유로운 통일 한반도”를 주창하면서 “북한 정권의 폭정과 인권유린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통일을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통일부는 이 언명을 지침으로 하여 “자유와 인권의 보편가치”를 핵심 내용으로 담은 ‘새 통일담론’을 형성하겠다고 나섰다. 한참... -
북·중·러 관계와 북한 상황 바로 읽기
역사적으로 북방정책은 대한민국의 안보 증진과 경제발전에 크게 공헌한 대표적인 외교정책이다. 북방정책은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과 중국,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추구를 천명한 ‘7·7선언’에서 시작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1990년 9월에는 소련, 1992년 8월에는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북한의 군사동맹인 중·소와의 수교로 인해 우리의 안보환경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으며 북방교역의 증대는 한국 경제발전의 견인차가 되었다. 수교 후 30년간 대중무역 흑자 총액이 같은 기간 우리나라 무역 흑자 총규모와 맞먹을 정도로 북방협력은 한국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전통의 북방정책은 지금 윤석열 정부의 천둥벌거숭이 가치외교에 짓눌려 존재마저 희미해가고 있다. 한국 정부가 북방의 손을 놓아버린 사이에 북한과 중·러의 관계도 변화했다. 1990년대 초반 북한은 한국과 수교하려는 중·소에 자신이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할 때까지 수교를 미루어... -
젊은 비대위원장의 ‘종북타령’과 ‘북풍’의 유혹
선거 판세가 어려워지고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드디어 여당이 ‘종북타령’을 시작했다. 지난 19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번 선거에서 지면 “종북세력이 이 나라의 진정한 주류를 장악하게 될 것”이라며 해묵은 색깔론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보수 집권 세력이 야당을 향해 ‘양치기 소년’처럼 선거 때마다 ‘종북타령’을 하다 보니 이제는 국민 대다수가 그 말을 믿지 않는다.여권의 ‘종북타령’이 안보에 민감한 국민 정서를 이용한 혹세무민의 선거 전술이라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과거 보수세력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의 개선을 주장하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후보에 ‘친북’ ‘빨갱이’ ‘용공’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매도하였다. 그들은 이들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안보가 위험해지고 사회가 혼란에 빠진다고 선동하며, 마치 나라를 북한 김정일에 바치기라도 할 것처럼 위기의식을 조장했다.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김대중, 노무현 시대는 전혀 달랐다.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힘 정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