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의 할매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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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지아의 할매 열전]이토록 젊은 할매

    이토록 젊은 할매

    나의 할매들은 이제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아짐들도 그 뒤를 따랐다. 내가 언니라 부르던 이들이 어느 순간 동네 할매가 되었다. 하기야 내가 할매 나이다. 일찍 결혼한 친구 중에는 손주를 두어 진짜 할매가 된 사람도 있다. 세월은 이렇게나 빠르다.오늘의 할매는 젊다. 순전히 내 기준으로. 나보다 열 살쯤 위려나? 그런데 십오 년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그이가 할매인 줄 알았다. 구십 도로 굽은 허리 탓이었다. 그이는 동네에 새로 이사 온 내가 싹싹하게 인사를 해도 잘 받아주지 않았다. 어디선가 구한 유모차를 보행기 대신 밀고 집과 논밭만 부지런히 오갔다. 동네 마실도 다니지 않았다. 체구도 자그만 양반이 보릿고개 있던 시절의 소처럼 잠시도 쉴 틈 없이 일만 했다. 일하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었다. 하도 경이로워 언젠가 걸음을 멈추고 오래도록 지켜본 적이 있다. 고추밭의 풀을 매는 그이의 동작이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부드럽고 ...
  • [정지아의 할매 열전]아이를 품은 채 할매가 되었네

    아이를 품은 채 할매가 되었네

    서울 살 때의 얘기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출근길 지하철역,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플랫폼의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급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며 소리치는 이는 여든쯤 된 여성이었다. 그제야 그이가 목이 터져라 외쳐 부르는 게 내 이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까마득히 잊었던 기억 하나가 뇌세포를 뚫고 생생하게 떠올랐다.영자 언니-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식모살이하던-가 살금살금 우리 방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감옥에 간 뒤 농번기가 되면 엄마는 열 마지기 논농사를 짓기 위해 반내골로 들어갔다. 나는 열흘쯤 혼자 밥을 지어 먹고 학교에 다녔다. 아홉 살짜리가 혼자 해먹는 밥이 오죽했을까. 영자 언니는 안쓰러웠는지 종종 주인집 몰래 반찬을 가져다주곤 했다. 언니의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그러다 들키면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
  • [정지아의 할매 열전]이모는 화투점을 치며 무엇을 기다렸을까

    이모는 화투점을 치며 무엇을 기다렸을까

    나는 그이를 광주 이모라 불렀다. 이름도 정확한 나이도 모른다. 엄마가 친구라 했으니 비슷한 또래일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아버지는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그때만 해도 광주는 머나멀었다. 아버지 면회를 갈 때마다 엄마는 광주 이모 집에서 자고 먹었다. 이모 집은 넓은 정원이 딸린 멋진 한옥이었다. 전통 한옥은 아니었던지 마루 끝에 유리로 된 미닫이문이 달려 있었다. 이모는 고급스러운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피부가 서양인처럼 새하얗고 볼이 통통했다. 내가 태어나서 본 가장 하얀 사람이었다. 입고 있는 한복처럼 고급스러운 것도 같고, 어딘지 나른한 것도 같았다. 이모가 미닫이문을 열고 마루에 앉아 봄볕을 쬐며 자울자울 졸고 있는 모습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그 나른한 첫인상 때문이지 싶다.이모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다. 딸의 얼굴은 두어 번 봤다. 내 엄마라고 해도 될 만큼 나이가 많았고, 직장에 다니는 노처녀였다. 나보다 열...
  • [정지아의 할매 열전]이번에는 할배! 왜?

    이번에는 할배! 왜?

    할매 얘기나 할 때가 아니다(젠장. 머릿속으로 다 써놨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오래(오래는 아니다. 고작 12월3일 밤 10시59분부터 현재까지. 그런데 무지막지하게 길게 느껴졌다. 한 45년쯤으로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고민했으나 할 말이 없었다. 우리 동네에서는 이런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하도 얼척이 없응게 헐 말이 없네이.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우리 집 손님을 태우러 오신 기사님께서 한마디 보탰다. 먼 일이대요? 취했응게 그랬겄지라? 순간 생각했다. 이번에는 할배 이야기나 해야겠다.어떤 할배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소학교도 마치지 못한. 그래서 낫 놓고 기역 자도 몰랐던.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늘 친절하게 인사를 받아주었고 때로는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으며, 코 찔찔 흘리는 동네 아이들을 불러세워 따신 갱엿을 손에 쥐여주기도 했다. 집안에서는, 폭군이었다. 할배는 타고나기를 청결한 사람이었다. 옷에 붙은 작은 티끌 하...
  • [정지아의 할매 열전]할매가 되지 못한 할매

    할매가 되지 못한 할매

    순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한 남자가 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잘생기진 않았던 모양이다. 학교가 발칵 뒤집히지 않았던 걸 보니. 처음 보는 남자가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여학생들 앞에서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교문 옆에 서 있었다. 내 운동화가 시야에 들어오자 그는 번쩍 고개를 들고는 환하게 웃었다. 처음 보는 남자의 속절없이 환한 미소가 기이해서 그 장면이 각인되었을 것이다.“못 알아보겄냐? 나는 단박에 알겄는디. 외삼촌을 쏙 빼닮았다이.”아버지를 외삼촌이라고 부른다면 필시 고모의 아들일 터였다. 내가 아는 고모는 셋, 그 자손들 중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문득 할머니가 말끝마다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던 죽은 고모가 기억났다. 나는 그 고모를 아주 어려서 딱 한 번 보았다. 대여섯 무렵, 여느 때처럼 할머니 모시고 살던 작은집에 놀러 갔다.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틈만 나면 작은집으로 달려갔다. 몇살 터울 나지 않는 애들이 셋이나 있어 작은...
  • [정지아의 할매 열전]넘의 묏등(묘)이라도

    넘의 묏등(묘)이라도

    시인 류근은 잘생겼다. 잘생긴 주제에 심지어 동안이다. 뱃살도 없다. 뿐인가. 돈도 많다. 그런 주제에 시인답게 외로움을 탄다. 전화만 하면 외롭단다. 질투에 눈먼 나는 매번 냉정하게 쏘아붙인다.“우리 치타(나의 사랑스러운 똥개)도 외로워. 꺼져!”시인만 외로운 게 아니다. 나의 서울 친구들은 전화만 하면 하소연이다. 서울 것들은 늘 외롭고 뭔가가 부족하고 뭔가가 억울하다. 이상도 하지. 가진 것 없는 시골 할매들은 하소연을 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보릿고개를 지난 세대인데도 그렇다.구례 한 할매는 1936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말을 걸자 할매는 아이고, 나 까짓거이 먼 할 말이 있가니요, 부끄럼을 타며 고개를 돌렸다. 슬며시 두유 한 팩에 빨대를 꽂아 건넸다. 다 마신 두유에서 뽁뽁 소리가 날 무렵 할매는 물었다.“월매나 들을라요?”고향살이 십여년, 나도 이제 눈치가 늘었다. 얼마나 들으려냐는 할매의 말은 그러니까...
  • [정지아의 할매 열전]날쌘돌이 큰어매

    날쌘돌이 큰어매

    어느 봄날의 풍경 하나. 아마 어린 날의 기억인 것 같은데 내가 어디에서 이 풍경을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큰집의 넓은 뜰 안쪽에만 봄볕이 가득하다. 아마 이른 아침인 모양이다. 반내골은 앞뒤 산이 가팔라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전형적인 산골이었다. 암탉 한 마리가 샛노란 새끼 10여마리를 거느린 채 종종걸음으로 어둔 그늘을 벗어나 봄볕 쪽으로 이동한다. 신기하기도 하지. 닭은 부리며 발이며 참으로 못생겼는데 병아리들은 몇달 뒤의 역변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어여쁘다. 암탉은 햇볕 좋은 자리에 자리를 잡고, 이제 조금 자라 엄마 품을 벗어난 병아리들은 엄마 몸에 기댄 채 자울자울 잠을 청한다. 거기서 머지않은 펌프 옆, 큰엄마가 볏짚 몇 가닥에 양잿물을 묻혀 타구(唾具)를 닦고 있다. 여느 때처럼 큰엄마는 눈·코·입이 오종종한 작은 얼굴을 찌푸린 채 속사포처럼 혼잣말을 내뱉는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들리지 않는데 중간중간 썩어빠질, 염병 같은 욕설이 들린다. 큰엄마...
  • [정지아의 할매 열전]우리 동네 미친 할매

    우리 동네 미친 할매

    내 고향 마을엔 미친년이 있었다. 우리 동네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그 시절엔 동네마다 미친년이 한 명씩 있었다. 신기하게 미친놈은 잘 없었다. 여성이 몇 곱절은 더 힘들었던 시절이라 그랬을 테지 짐작한다. 미친년이라 표현하는 것을 부디 양해하시길. 야만의 시대를 옹호하려 함이 아니니까.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 폭로하기 위함이니까.우리 동네 미친 할매에게는 택호가 없었다. 첩이었던 복이 어매처럼 자식의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했다. 자식이 셋이나 있었는데도. 이름이든 뭐든 아는 사람이 있을까 하여 몇 군데 전화를 해봤다. 딸 둘, 아들 하나가 있었다는 것 외에 자식의 이름조차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고향에 내내 살지도 않았던 내가 그이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신기해했다. 어찌 기억하지 못할까. 첩보다도 종보다도 더 낮은 존재였는데. 아니, 사람이었으나 사람이 아닌 존재였는데.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머리가 새하얗게 세었던 할매는 지금 생각해보니 내 부모 또래였지 싶...
  • [정지아의 할매 열전]복이와 복이 어매

    복이와 복이 어매

    어느 여름밤이었다. 등나무 덩굴 우거진 교정에 우뚝 버티고 선 복이의 얼굴은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두어 해 전만 해도 덩치가 비슷했는데 복이는 그새 훌쩍 자라 소년이 되어 있었다. 어두웠지만 나를 노려보는 날 선 눈빛의 기운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깡패들하고나 어울리고, 자알하는 짓이다!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네가 그러면 안 되지!”복이 엄마는 삐뚤이 할매가 녹동을 떠도는 사이 할매의 자리를 차지한 첩이었다. 첩이라 그랬는지 복이 엄마는 택호도 없어 복이 어매라 불렸다. 본처 자식들처럼 복이라는 돌림자로 이름을 지었지만 복이 첩의 자식이라는 것을 온 동네가 다 알았다. 복이는 제 엄마를 닮아 순하고 얌전한 아이였다. 짓궂은 남자애들이 여자애들의 고무줄을 끊고 도망갈 때도 복이는 우는 여자애를 다독이던 순하고 다정한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깡패들과 어울린다는 소문을 듣고 방학 때 고향에 다니러 온 내가 오지랖 넓게 복이를 불러낸 것이었다...
  • [정지아의 할매 열전]삐뚤이 할매

    삐뚤이 할매

    작년 가을, 여행기 청탁 때문에 고흥에 갔다. 늦가을인데도 들풀은 새파랬고, 햇볕이 따가웠다. 녹동이란 표지판을 보고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삐뚤이 할매. 입이 홱 돌아갔다고 삐뚤이 할매였다. 젊어서는 구례서 내로라하는 미인이었다는데 내가 태어났을 때 할매는 이미 삐뚤이인 데다 늙어 미(美)를 떠올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입 돌아간 할매였을 뿐.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는데 내가 삐뚤이 할매를 잊지 못한 것은 언젠가 누구에겐가 들은 이야기 때문이다. 할매는 꿈에도 기다리던 아들을 낳고 입이 돌아갔다. 입만 돌아간 게 아니다. 눈썹과 머리가 다 빠지고 살이 짓물렀단다. 다들 문둥병이라고 했다. 문둥이가 흔하던 시절이었다. 남편은 야멸차게 갓난아이를 떼내고 할매를 쫓아냈다. 할매가 갈 곳은, 아니 할매를 받아줄 곳은 소록도뿐이었다. 고속도로도 없고 버스도 흔치 않던 시절, 할매는 병든 몸으로 걷고 또 걸어 소록도로 갔다. 문둥병인 줄 알았으니 사람의 눈을 피해 걸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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