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마을 욕쟁이 할매는 남원 양반가 출신이었다. 그런 집안에서 왜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보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가난보다 양반 족보가 더 중요했겠지.남원떡이라 불린 할매는 시집온 뒤로 죽자고 고생만 했다. 재산이라고는 지픈(깊은) 논 - 지픈 논은 비가 조금만 와도 잠기기 일쑤였다 - 두 마지기에 산기슭의 밭뿐이었다. 자식은 줄줄이 일곱이나 낳았는데 어쩌자고 남편은 빨갱이가 되어 산으로 갔다. 여순사건 뒤 집에서 쫓겨난 할매는 좀 큰 자식들은 친정으로 보내고 막둥이만 들쳐업은 채 산에서 일 년을 보냈다. 다람쥐가 숨겨놓은 밤을 훔쳐먹으며 겨울을 났다던가.다행히 친정 오빠가 경찰이라 남편은 몸 성히 집으로 돌아왔다. 옆에 있달 뿐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남편은 허구헌날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 어느 가을, 남원떡이 밭에서 김을 매는데 소나기가 퍼부었다. 퍼뜩 그놈이 치울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한걸음에 달려왔으나 고추는 이미 물에 잠겨 있었다....
2025.11.06 2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