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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서울 밖에도 청년이 있다
“교수님도 볼 때마다 공무원시험 준비하라고 하세요. 여긴 그냥 기회 자체가 없어요.”호남 지역에서 나고 자란 이희은씨(30·가명)는 한 지방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그는 “과 친구 가운데 최소 60% 이상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기업체와 공공기관 계약직 등에 여러 차례 원서를 넣었지만 된 적이 없다. 결국 한 대학 연구센터에서 비정규직으로 3년간 일했다. 실수령 급여는 저축을 할 수 없는 120만원이었다. 경향신문 ‘부들부들 청년’ 취재팀이 지난해 12월부터 수도권 밖에서 만나본 청년들은 막막함과 좌절감이 깊었다. 처한 현실을 “서울공화국·지방식민지”로 묘사했고, “서울 밖에도 청년들이 있다”고 말했다. 지역인재가 지역에서 대학을 나와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과거 서울 명문사립대와 경쟁하던 지역 국립대까지 위상이 약화됐다. 청년들은 지난해 경북에서 7177명이, 전북에선 6735명이 지역을 떠났다. ‘먹고살려... -
[2부④ 서울 밖에도 청년이 있다]“지역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죄, 꿈의 가짓수부터 달라요”
민소은씨(24·가명)는 지난해 12월부터 고향 전남에서 서울 신림동으로 올라와 노무사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2평 남짓한 여성 전용 고시텔에서 지내며 월 27만원을 낸다. 식대·학원비까지 포함하면 월 100만원 정도 쓴다. 체류비가 만만치 않지만 시험 준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민씨는 “논술시험 첨삭이 중요해 서울로 올라왔다. 확실히 현강(현장 강의)을 듣고 수강생들과 정보 공유도 하니까 더 도움이 된다”며 “다니는 학원에는 제주도나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지난 11일 울산에서 만난 토박이 박용석씨(26)는 취업을 앞두고 ‘정보’에 목말라 있었다. 지역에서는 취업스터디 구하기도 쉽지 않다. 박씨는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해 있어도 ‘알짜 정보’는 결코 지역까지 오지 않는다. 수도권에 머물며 인맥을 통해 얻는 정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경향신문 ‘부들부들 청년’ 취재팀은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간... -
][2부④ 서울 밖에도 청년이 있다]청년들 ‘인서울 러시’…지방 국립대 죽고 지역경제 황폐화 악순환
서울은 한국 사회의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는 도시다. 인구의 20%가 서울에 산다. 경기도·인천을 합한 수도권에는 남한 인구의 49%가 모여 있다. 수도권의 힘은 사회진출을 앞둔 청년층에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20~34세 청년의 53%가 수도권에 있다. 전입신고를 하지 않고 머무는 젊은이들까지 감안하면 규모는 더 커질 것이다.거꾸로 말하면, 국토의 88%를 차지하는 비수도권에 전체의 절반이 안되는 청년들이 살고 있다. 부산에 사는 박모씨(25)가 지역 청년 다수의 호소와 갈증일 거라며 전한 말은 “서울에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 남겨졌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인구가 줄어드니 안 그래도 낙후했던 지역경제는 더 침체되고, 그럴수록 더 많은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떠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지역 공동화’와 청년문제는 맞물려 있다. 특히 대학입시와 취업은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주요 고리다. 떠난 청년도, 남은 청년도 괴로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
“지방에서 태어나 사는 것이 죄입니다”
“교수님도 볼 때마다 공무원시험 준비하라고 하세요. 여긴 그냥 기회 자체가 없어요.” 호남 지역에서 나고 자란 이희은씨(30·가명)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그의 체감도로는 “과 친구 가운데 최소 60% 이상”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다. 그는 공공기관 계약직에 여러 차례 원서를 넣었지만 된 적이 없다. 결국 한 대학 연구센터에서 비정규직으로 3년간 일했다. 실수령 급여는 저축을 할 수 없는 120만원이었다. 경향신문 ‘부들부들 청년’ 취재팀이 지난해 12월부터 수도권 밖에서 만나본 청년들은 막막함과 좌절감이 깊었다. 처한 현실을 “서울공화국·지방식민지”로 묘사했고, “서울 밖에도 청년들이 있다”고 말했다. 지역 인재가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과거 서울 명문사립대와 경쟁하던 지방 국립대까지 위상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지난해 경북에서 7177명이, 전북에선 6735명이 지방을 떠났다. ‘먹고살려면 수도권으... -
[2부③‘월 300’이 가른다] 삶을 가르는 ‘월 300만원’
“한달에 한 300만원은 벌어야 하지 않을까.”김혜선씨(25·가명)의 세전 월급은 130만원이다. 그는 정부 출연 연구소에서 인턴으로 일한다. 월급으로 보험료와 통신비를 내고, 학자금 대출 2000만원을 갚기 위해 돈을 모으면 생활비가 없다.돈벌이는 하지만 부모님 생신에 인사치레도 못한다. 자동차를 사거나 집을 장만하는 것, 결혼 역시 꿈같은 일이다. 김씨가 이 꿈을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월급은 300만원. 절반도 못 미치는 지금은 갈 길이 너무 멀다. 2013년 한국노동패널자료를 보면 20~29세 남녀의 월평균 임금은 162만8000원, 30~39세도 243만원에 그친다. 100인 이하 사업체의 노동자는 평균 300만원이 안되는 월급을 받는다. 대한민국 직장인 3명 중 2명은 100인 이하 사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300인 이상 사업체에서도 정규직만 월평균 408만원을 받고 비정규직은 208만원에 머물고 있다. 5인 이하 사업체... -
[2부③‘월 300’이 가른다] 기업에도 청년에게도 매력 없는 ‘청년취업인턴제’
정부는 청년을 중소기업 일자리로 유도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정보가 부족해 중소기업을 기피한다고 해석한 결과다. 하지만 대기업보다 열악한 중소기업의 임금·노동 환경과의 격차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정부의 대표적인 청년 일자리 정책 중 하나가 ‘중소기업 청년취업인턴제’다. 청년을 인턴으로 채용한 중소기업은 인턴에게 지불하는 급여의 일부를 최대 3개월간 월 60만원 한도 내에서 지원받는다. 이후 이 인턴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6개월간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인턴 기간 종료 후 정규직으로 1년 이상 근속한 청년 역시 취업지원금을 받는다.그러나 이 제도는 숫자에만 집착했지 중소기업을 ‘매력적인 일자리’로 만드는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2013년 4월부터 1년간 중소기업에서 청년 인턴으로 일했던 김모씨(25)는 정규직 전환을 마다하고 직장을 그만뒀다. 그는 “근로계약서도 없이 월 실수령액 135만원을 받으며 정규직과 똑같이 일했다”며 “근무 체계... -
[2부③‘월 300’이 가른다] 멀고 먼 ‘월 300만원’…지금은 저축도 결혼도 꿈일 뿐
일반적인 기준으로 먹고살고, 저축하고, 명절 때 부모님 용돈 드리고, 학자금도 갚아가며, 연애하고 결혼하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청년들은 ‘월 300만원’을 말했다. 300만원을 도출해낸 계산식은 저마다 달랐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있다. ‘그 이하로는 연애든 저축이든 뭔가 하나 이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이 말하는 ‘월 300’은 하나의 이상향인 동시에 기준이었다. 이 기준을 저버릴 수 없는 청년들은 ‘눈이 높아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시간을 늦추더라도 대기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청년들은 왜 ‘월 300’을 말하나취준생 김수진씨(25·가명)는 지난해 한 중소기업 입사를 포기했다. 입사하면 당초 원했던 해외영업 분야에서 일할 수 있었지만, 연봉이 마음에 걸렸다. 회사는 세후 2000만원(약 월 167만원)을 연봉으로 제시했다. 그간의 공부에 대한 보상과 생활을 꾸려나가기에 불충분하다고 느꼈다. 김씨는 고민 끝에 취업을 늦췄다.... -
[2부③‘월 300’이 가른다] 중소기업의 항변 “우리도 벼랑 끝에 서 있다”
중소기업 대표들은 “우리도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말했다. 수익률은 줄고, 업황은 불가측하고, 대기업 입맛에 맞춰야 하는 생산·서비스 비용은 늘고 있다고 했다. 얇은 월급봉투를 주고 싶지 않아도 답이 없다는 뜻이다.중소 납품업체들의 수익률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현대차는 10.61%, 기아차는 6.4%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이 기간 납품업체 영업이익률은 5.8%에 그쳤다. 현대·기아차 계열이 아닌 납품업체는 2.8%로 더 떨어진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박지원씨(가명)는 “월별, 분기별로 보면 간신히 운영할 정도의 수익만 난다”며 “한 사람 월급으로 세전 150만원 이상의 인건비를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상후하박’식 수익 생태계는 전자업계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10.62%를 기록하고, 1차 협력업체는 3.35%였다.영업이익이 나더라도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업황의 족쇄 때문이다. 중소 식... -
[2부②건물주의 물주가 되다]‘지·옥·비’에 우는 청춘
직장인 박모씨(31)의 첫 ‘서울 방’은 4평이었다. 9년 전 대학입시를 위해 상경해 얻은 보증금 100만원, 월세 28만원짜리 옥탑방이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손빨래도 찬물로 해야 하는 추운 방이었다. 박씨는 2년 뒤 ‘차라리 지하가 낫겠다’ 싶어 보증금 2배에 월세가 10만원 비싼 지하로 내려갔다. 벽과 옷에 ‘곰팡이 꽃’이 피었다. 그때부터 중이염도 달고 산다. 소득의 30~50%를 월세로 지출해온 그는 은행 계좌에 임대업자의 ‘빨대’만 꽂혀 있다고 생각한다. 박씨는 “나도 지옥비의 끝이 보이지 않는 청춘”이라고 말했다. ‘지옥비’는 지하방·옥탑방·비주택(비닐하우스 등)을 전전하는 청년들이 꽉 막힌 현실을 자조하는 말이다.2014년 국세청 통계를 보면 연간 임대료 수익은 주택임대업자가 1조8896억원, 상가임대업자는 56조2383억원이다. 하지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연간 주택임대료만 23.5배 많은 44조5000억원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
[2부②건물주의 물주가 되다]자영업자에 빨대 꽂은 건물주…알바생 등골까지 빨아들여
직장인들의 ‘노후 진로 선호도’ 조사에서 1위(23.1%)에 오른 직종, 언젠가부터 초·중·고교생이 적어낸 장래희망, 노동 없이 이익(임대료)만 가져간다고 해서 ‘현대판 지주’라고도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 일컫는 임대업자다. 국세청에 등록된 상업용 부동산(상가·빌딩) 임대사업자 수는 2014년 기준 134만456명, 이들이 신고한 상가 임대소득은 56조2383억원이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은 “상가 임대사업자들이 국세청에 소득액수를 정확히 제출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받은 임대료는 더 많을 수 있다는 뜻이다.‘현대판 지주’가 있다면 ‘현대판 소작농’도 있다. 특히 소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청년들은 가장 위태로운 처지에 있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수익을 창출해도 ‘부르는 게 값’인 임대료로 토해내야만 한다. 그리고 건물주(임대업자)는 영세 자영업자들이나 고용된 청년들의 끊임없는 노동으로 만들어진 임대료를 ‘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