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④ 서울 밖에도 청년이 있다]“지역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죄, 꿈의 가짓수부터 달라요”

김원진 기자

지역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은?…지역 청년 102명에게 묻다

민소은씨(24·가명)는 지난해 12월부터 고향 전남에서 서울 신림동으로 올라와 노무사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2평 남짓한 여성 전용 고시텔에서 지내며 월 27만원을 낸다. 식대·학원비까지 포함하면 월 100만원 정도 쓴다. 체류비가 만만치 않지만 시험 준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민씨는 “논술시험 첨삭이 중요해 서울로 올라왔다. 확실히 현강(현장 강의)을 듣고 수강생들과 정보 공유도 하니까 더 도움이 된다”며 “다니는 학원에는 제주도나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울산에서 만난 토박이 박용석씨(26)는 취업을 앞두고 ‘정보’에 목말라 있었다. 지역에서는 취업스터디 구하기도 쉽지 않다. 박씨는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해 있어도 ‘알짜 정보’는 결코 지역까지 오지 않는다. 수도권에 머물며 인맥을 통해 얻는 정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부들부들 청년’ 취재팀은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간 전국 11개 광역시·도에서 102명의 지역 청년을 만났다. 수도권 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의 고민은 수도권보다 더 깊고, 조금은 결이 달랐다. 지역에 기반시설과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답답해했고, 수도권에서 태어나지 않았기에 느낀 소외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역 청년들이 느끼는 결핍이 단순히 ‘일자리’ 문제만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청년도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는 것부터 출발선이 다르다”는 얘기였다.

■“백수도 직업으로 느껴질 정도로 일자리가 없다”

태어나서부터 강릉에서 살아온 홍순우씨(21)는 친구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눴다. 일자리를 찾아 다른 곳으로 떠났거나 강릉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홍씨는 “강원도에서는 백수도 직업으로 느껴질 정도”라며 “그만큼 강릉에는 청년들이 취업할 만한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했다. 강원도의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12.8%로 전국 광역시·도 중에서 가장 높았다.

대전 토박이인 이동민씨(32·가명)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학교 취업지원팀의 소개로 대전지역 강소기업에 입사해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그러나 “나는 기회를 잘 잡은 (운 좋은) 케이스”라고 했다. “대전에 벤처기업이 많지만, 규모가 작아 한 회사에서 고용하는 인원은 1년에 한두 명 정도에 불과한 곳이 대부분이고, ‘공채’(공개채용)가 없어 알음알음 뽑는 소규모 수시채용이 많다”고 말했다.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본사 중 86곳은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몰려 있다. 강원과 충북·충남, 전남·전북, 대구에는 100대 기업 본사가 한 개도 없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2014년 시·도별 청년 고용 현황’을 살펴보면, 전국 청년취업자(387만명) 중 53.9%(208만8000명)가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지역 일자리의 양뿐만 아니라 질도 문제다. 서울연구원에서 2014년 발간한 ‘서울시 괜찮은 일자리 실태분석과 정책방향’ 보고서를 보면 보수, 고용안정성, 적정 근로시간, 직업의 사회적 평판 등을 반영한 ‘다원적 괜찮은 일자리’ 분포에서 수도권이 60.2%를 차지했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도 수도권에 쏠려 있는 것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이시훈씨(30)는 “대구 하면 ‘섬유’는 이제 옛말이다. 대기업은 모두 수도권으로 빠져나갔고, 임금 수준이 낮은 2·3차 협력업체들만 남아 있다”면서 “심지어 대구에 있는 몇몇 공장은 정규직이었던 생산직 일자리를 알바 노동자에게 넘겼다”고 말했다.

[부들부들 청년][2부④ 서울 밖에도 청년이 있다]“지역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죄, 꿈의 가짓수부터 달라요”

■“부부가 공무원이면 걸어다니는 중소기업”

청년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좇아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 대다수 지역 청년들의 꿈도 ‘공무원’에 맞닿아 있었다. 지역 내 ‘괜찮은 일자리’ 부족은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

강원도에서 태어나고 대학까지 졸업한 토박이 김혜인씨(24)의 친구들 중 강원도에 남은 부류는 대부분 공무원이다. 김씨는 “지역에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지방직 공무원은 지역 출신에게 지원자격이 우선적으로 주어진다. 그래서 공무원을 하는 친구들은 강원도에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자란 우명진씨(30·가명)는 “대구에서는 부부가 공무원이면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했다. 대구에 그만큼 안정적인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의미에서다. 대구에서 20대를 보낸 김보현씨(23·경북대)도 우씨의 말에 동의했다. 김씨는 “인문계열 전공이라 그런지 주변에 열에 아홉꼴로 공무원시험 준비를 한다”면서 “지역 대학 출신 인문계열 전공자는 소위 ‘인서울’ 대학 출신보다 취업이 더 어렵다. 서울에서 취업을 해도 주거비 등을 감당하지 못할 바에 차라리 공무원시험을 택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공기업 지방 이전 효과 와닿지 않아”

일부 대기업과 공기업이 지역으로 이전하고 있지만 지역 일자리 질을 높이는 데는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주에 사는 대학생 김배원씨(26·가명)는 “다음과 넥슨 등 IT 기업이 제주로 내려왔지만 핵심 인력은 서울에서 내려왔고 전화상담 등 저임금 일자리만 생겼다”고 말했다. 공기업 일자리도 비슷하다. 한 정부출연 연구기관은 4년 전 지역으로 이전했지만 지역 출신 인재 채용 비율은 1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전라도의 한 연구원에서 일하는 이기형씨(32)는 “핵심인력은 모두 수도권에서 내려오고 지방대 출신을 뽑아도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주변적인 일만 시킨다”며 “이런 분위기 때문에 좌절하고 지역 소재 대학에서 지역 자체에 대한 연구를 하려다 포기하고 서울로 가 버리는 이들도 많이 봤다”고 했다.

지방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홀대받는 현실에 한 청년은 취재진에게 “왜 우리에게는 등급이 매겨져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문화 기반도, 청년들의 안전판도 없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간한 ‘2015 문예연감’을 보면 2014년 전국에서 이뤄진 예술활동 3만6803건의 68.1%(2만5097건)가 수도권에서 진행됐다. 울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장동현씨(25)는 “주말이면 서울에 올라가 각종 문화활동을 즐긴다”면서 “지역에는 문화 인프라도 부족하고 지역 사회와 청년을 문화로 묶어줄 접점이 현재는 없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알바노조 등을 중심으로 편의점, 커피전문점의 사업주들에게 최저임금 준수를 압박하는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지방 청년들에겐 남의 이야기다. 제주에서 직장을 다니는 이경준씨(30·가명)는 “후배가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최저임금도 못되는 6000원을 받고 있는데 문제제기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인구규모가 작은 지역에서는 업주와 알바생이 “몇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이다. ‘신고’를 하려 해도 눈치가 보인다. 그럴수록 청년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단체의 활동이 필요하지만, 그런 단체도 별로 없거니와 참여율도 저조하다.

전북에서 자란 김주혜씨(30·가명)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정치적인 힘으로 모을 단체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각 지방의 고용노동청에 신고를 해도 건건이 처리만 될 뿐 사업주들에게는 압박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벌어지는 ‘서울 공화국’과 ‘지방 식민지’

구가연씨(22·가명)는 지난달 고향인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문화콘텐츠 기업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 월 60만원을 받고 30만원은 방세로 낸다. 구씨는 “서울에는 그래도 부산보다 기회가 있다”고 했다. 구씨는 “부산에는 인턴으로 경험을 쌓을 곳도 마땅치 않다”며 “서울의 집세 부담이 만만치는 않다”고 했다. 지역을 떠나 서울로 ‘이주 난민’이 되면서 치러야 할 비용이 점점 늘고 있다는 의미다.

‘부들부들 청년’ 취재팀이 만난 지역 청년들은 ‘지방 식민지’ ‘서울 공화국’ 현상을 몸소 겪었다. 지역 청년들은 “제주도에는 대기업이 취업설명회도 거의 오지 않는다”거나 “서울에서 면접만 50번을 봤다. 고속철도(KTX) 대신 버스를 탔는데도 교통비만 200만원이 넘었다”고 푸념했다. “인턴에 합격한 뒤 집 구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출근하라고 했다”거나 “대외활동을 해도 지원자격이 수도권으로 한정된 경우가 많았다”는 하소연도 있었다.

부산에서 지역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계간지 ‘지잡’을 만드는 김영준씨(25·부산대)는 “수도권 밖에서 산다는 이유만으로 꿈의 가짓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인구 비중 점점 낮아지는 청년…지역 정치에서도 뒷전

청년 문제는 경향 각지의 화두가 됐다. 각 지방자치단체도 움직이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2016년을 “청년대구 건설 원년”으로 선언했고, ‘청년도시 광주’를 표방하고 나선 윤장현 광주시장은 올 초 청년일자리 창출이 시정의 최우선이라고 밝혔다. 두 도시에서는 자문기구인 청년위원회 2기가 곧 출범한다.

하지만 지역 청년들은 정치와 정책에서의 소외감이 깊었다. 청년 숫자가 줄고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는 지역에선 청년 이슈가 더 ‘뒷방’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정치인들을 보는 청년들의 신뢰감〃도 바닥이었다.

다음달 경남지역의 청년 소식을 다룬 잡지 ‘월간경청’을 펴내는 창원 토박이 류설아씨(26)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역 정치인들을 찾아다니며 지역 청년 문제의 해결책을 묻고 있다. 그는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도 없고 수도 적어 청년정책에 신경을 안 쓴다고 대놓고 말하는 지역 정치인이 있다”고 전했다.

청년들의 인구 비중이 낮아지면서 지역 정치에서 청년 배제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노인 인구가 많아질수록 정치인들은 노인정책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강원 강릉에서만 살아온 김슬기씨(23)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 또래 친구들은 강릉을 떠난다. 청년 인구가 계속 줄어들자 정치인들도 청년층에 무관심하다”며 “청년을 위한 정책을 펼친다는 얘기를 강원지역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강원도 인구의 17.2%가 65세 이상이다. 전국 평균치(12.7%)보다 크게 높은 수치다. 고령화로 인해 ‘청년’의 연령 기준도 높아져 각종 청년단체에 참가하는 구성원의 연령이 40대를 훌쩍 넘는 것도 흔한 일이다.

지역 청년들은 청년정책이 여야 모두에 없다고 느끼고 있다. ‘부들부들 청년’ 취재팀은 지역 청년들에게 “지역 정치인의 정치적 성향이 청년정책과 상관관계가 있을까”라고 공통으로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대부분 “아니다”였다.


■특별취재팀

박재현 송윤경 이혜리 이효상 정대연 김서영 김원진 기자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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