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이별을 돌보는 일’ 국가가 나서야 한다
‘윤영호의 웰다잉 이야기’를 희망으로 시작했지만 자괴감이 든다. 이 글을 시작한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변화가 없다.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의한 의사결정은 드물고, 호스피스기관은 기대만큼 늘지 않았다. 광의의 웰다잉은 법제화조차 되지 못했다. 매일 500명의 국민들이 죽어가고 가족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그들의 삶과 죽음에 의미와 희망을 줄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 괴롭다.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는다.■ 갈 길이 먼 연명의료결정법2019년, 대한민국은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아졌다. 29만명이 출생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사망자는 30만명이 넘을 것이다. 탄생을 기뻐하는 사람들보다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2023년까지 5년간 국민 166만명이 죽음에 직면할 것이며 830만명의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슬픔을 겪는다. 국민 5명 중 1명은 5... -
(11)너무 늦기 전, 더 미루지 말고…‘자신만의 전설’을 만들어가자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작별의 시간’…외로이 죽음의 고통을 견디는 건 오로지 떠날 자의 몫이다피할 수 없는 죽음은 슬픔이지만 미래의 생명을 위한 자리 내줌이며 또 다른 희망. 기쁨을 찾은 순간과 기쁨을 준 기억을 기록하자 그것은 삶의 참회록이고 후손들과 이웃들이 당신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보게 될 ‘지혜의 나무’‘그날’을 맞이할 연습을 시작하자…시인이 고백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소풍’을 위해승진의 기쁨에 들뜬 이반 일리치에게 뜻밖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고통이 찾아왔다. 부인은 그가 떠난 다음이 걱정되고 딸은 결혼 문제로 바빴다. 동료들은 벌써 그가 떠난 자리를 누가 차지할지에 관심이 많다. 슬픈 일리치를 멀리한 채 남은 자들은 살아가야 할 시간과 해야 할 일들이 걱정이다. 그의 고통을 그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리치는 삶을 돌아보니 잘못된 삶을 산 것 ... -
(10)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꼭 말해야 하는 ‘끝’
|죽음에 대해서 대화를 하면…죽으면 소멸한다는 생각서 벗어나가족 등 함께한 사람들의 삶에내 삶이 이어지도록 할 수 있어유산 정리 등 현실적 준비 기회도|어떻게 말을 꺼낼까…갑자기 ‘죽음’을 말하기 힘들다면가족 사진첩을 꺼내보면서행복했던 추억 떠올리며자연스럽게 시작하는 건 어떨까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르신들은 “빨리 죽어야지”라고 말하곤 했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기 싫고 험한 꼴을 보이기 싫어서다. 복지국가에서는 빨리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가 없다. 국가와 병원이 끝까지 연명시키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죽느냐다. 그래서 지금은 “잘 죽어야지”라고 말한다.웰다잉이 대세다. 하지만 나이에 따라 다른 조짐을 보인다. 70대까지는 웰다잉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80대로 들어서면서 죽음에 대해 말하기를 꺼린다고 한다. 죽음이 직접적 문제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죽음은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이 자연스럽다. 오죽하면 똥... -
(9)“웰다잉의 핵심은 내 삶의 마무리를 내가 결정하는 것”
내 마지막을 결정할 권리나이가 들면 누구나 웰빙을 넘어 웰다잉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스스로 웰다잉을 준비하고 결정하고자 하는 국민적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간병살인, 동반자살 등 불행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 스위스 의사조력자살 지원단체에 한국인 107명이 등록돼 있으며, 안락사에 국민 80%가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민감한 문제이긴 하지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조력자살 제도화 가능성도 중요한 이슈다.‘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2017년 8월부터 호스피스가, 2018년 2월부터는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작됐다. 지난달까지 20세 성인의 0.8%만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고 연명의료중단 등의 결정을 이행해 사망한 사람들의 1.2%에 해당하는 725명만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따랐다. 호스피스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호스피스와 연명의료의 ‘협의의 웰다잉’을 넘어... -
(8)간병살인 등 극단 선택 막으려면…‘존엄한 죽음’ 공론화 서둘러야
환자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간병하는 가족들의 힘든 나날을 우리가 방관하고 있는 건 아닐까“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살아야” 종교계 등의 반대 예상되지만 이해관계자 모여 출구 찾을 때 완화의료 윤리지침 등 의료현장 점검·개선하고 사회보장제도 정비도 병행해야 연명의료결정법에서 나아가 안락사·의사조력자살 선택을 합리적으로 보장할 법률 필요지난 7월29일 부산에서 79세 남자가 담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심장판막증을 앓은 아내를 20년 동안 간병해 오다 3개월 전 말기 판정을 받았다. 대학병원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며 퇴원시켰다. 요양병원으로 옮겼지만 아내가 요양병원에 있기를 거부해 자택으로 돌아왔다. 말기 판정 이후 아내의 건강상태가 극도로 악화되면서 입퇴원을 수차례 반복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와 간병하는 자식들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신체적·정신적으로 극도로 지친 남편이 ‘간병살인’을 저... -
(7)곡절 끝 통과된 연명의료결정법, 정책 뒷받침 없인 ‘미완성’
김명자 전 장관·원혜영 의원 등웰다잉·호스피스 활성화를 위한시민단체·국회의원 모임에 앞장호스피스법안 논의 과정에서의료·종교계 등 관점 달랐지만수차례 이견 조율 끝 합의안 마련그 뒤로도 우여곡절 있었지만국회 논의 시작한 지 10개월 만에압도적 지지 받으며 본회의 통과하지만 정부 연명의료 종합계획정책수혜자 위한 고민 안 보여열악한 호스피스 인프라 확대에실질적 정책과 예산 보완해야‘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 통과는 기적이다. 4890개의 수많은 법 중에 하나인 연명의료결정법 통과가 왜 기적이라 하는지, 혹자는 과장이 지나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때 통과되지 않았다면 지금도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은 여전히 시행되지 못했을 것이고, 수많은 임종 환자들이 인공호흡기에 고통스럽게 매달려 있거나 무의미한 심폐소생술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비참하게 맞이해야만 했... -
(6)내가 살아 있을 때 아름답게 이별하고 싶다…생전 장례식에서
허례허식 장례·장묘문화 바꿔야 조화 대신에 ‘이웃돕기 쌀’ 기부 고인의 인생을 담은 ‘조문보’도 전국 장례식장 1114개 ‘성업 중’ 집 근처에 호스피스 병동 있다면 웰다잉 설문조사 “긍정적” 81.7% 톨스토이 무덤은 마음을 울린다얼마 전 지인을 만나러 모스크바를 방문한 적이 있다. 모스크바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이 톨스토이박물관이다. 그가 모스크바에서 살던 집과 정원을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에는 저작권을 비롯한 모든 소유권을 전부 내려놓고 무소유와 청빈의 삶을 실천했다. 그는 기차여행 중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370㎞가량 떨어진 조그만 시골 역사에서 사망했다. 그가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하이데거가 말하는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 죽음을 향한 여행이었다. 지인은 문득 이왕 왔으니 톨스토이의 무덤을 방문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의미 있는 삶,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강의를 할 때마다 톨스토... -
(5)“죽음도 삶의 과정…금기시 말고 터놓고 얘기하며 준비해야죠”
웰다잉 문제에 관한 한 연극인 손숙 선생(예술의전당 이사장)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분이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손숙 선생은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전 환경부 장관)과 함께 호스피스국민본부를 만들어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될 때까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필자는 당시 실무총괄을 맡았던 인연으로 손숙 선생을 알게 됐다. 손숙 선생은 194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 사학과를 중퇴했다. 1964년 연극 <상복을 입은 엘렉트라>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했다. 최근 영화 <귀향>에 출연했으며,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차가운 현실을 온몸으로 버티는 거친 여자인 이지안(아이유)의 청각장애를 가진 할머니 봉애 역할을 맡아 죽음을 맞이하는 연기를 했다. 임종을 앞둔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연명의료결정법, 이른바 ‘... -
(4)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거짓된 ‘희망’보다 남은 삶에 대한 ‘진실’
말기암 가족의 임종 예상될 때진실을 알려야 하나 고민되지만말기라는 사실을 알든 모르든환자의 생존기간에는 차이 없어무방비로 죽음을 직면하는 것은중요한 시간 낭비하게 할 수 있어환자에게 인생 정리할 기회 주고소중한 사람들과 작별하도록 해야말기 진단 후 남은 수명을 아는 건연명의료 계획을 세우는 데 중요만성질환 인한 임종 예측 어렵지만빅데이터 등 더 절실한 연구 필요지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80대 부친이 그동안 암 치료를 받아왔으나 주치의로부터 최근 더 이상 치료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부친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필자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듣고 싶어 했다. 부친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고, 괜히 말했다가 충격으로 치료를 포기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다. 최종 결과가 나와 봐야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검사 결과에서도 마찬가지라면 ... -
(3)봄날의 꽃처럼, 몸속 세포처럼…우리도 피고 지며 부활합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겨울은 따뜻했었다.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어주고 마른 구근으로 작은 생명을 먹여살려 주었다.194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T S 엘리엇의 ‘황무지’에 나오는 시구다. 매번 오르던 집 근처 산에 무심코 지나가는 내 시선을 끌어 새봄이 왔음을 실감나게 하는 것이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갈색 가지에서 개나리가 노랗게 물든 꽃을 활짝 피웠다. 굳이 라일락이 아니더라도 우리들의 죽은 땅에서 새로운 꽃들이 핀다. 엘리엇이 활동했던 미국과 영국에서는 개나리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개나리가 비록 강한 향은 없지만, 엘리엇이 노란 저고리를 입고 춤을 추듯 피어난 개나리를 보았다면 새로운 시구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매번 지나가는 등산길 같은 자리에서 작년에도 그 작년에도 피었을 꽃이겠지만 같은 꽃이 아니다. 새 꽃이 피었다. 같은 땅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