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모닝? 캠모닝!
빵을 좋아한다. 솔직히 누가 안 그렇겠냐 싶지만, 아무튼 빵을 좋아한다. 먹는 것도 좋아하고 맛있는 빵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너무 좋아해서 직접 빵을 굽는 것도 좋아하고 빵 굽기를 준비하는 시간도 좋아한다. 바게트를 먹고 반해서 바게트를 찾아다니다 바게트를 구우려고 노력하는 책을 썼을 정도다. 운동을 시작하고 제일 좋은 점은 체력이 생겨서 기계 없이 끝까지 손으로 빵 반죽을 할 수 있다는 점이고, 근력이 생기고 칼로리를 소모한 만큼 빵을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언제나 어떤 빵이든 검색하고 있어서인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들어가면 알고리즘의 혜택으로 오븐에서 기적처럼 부풀어 오르는 빵 반죽을 찍어 올린 영상을 볼 수 있다. 갓 구운 빵이 탄생하는 순간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요만하던’ 반죽이 ‘이따만하게’ 부푸는 풍요 그 자체인 모습, 노릇하게 익은 크러스트의 향기와 촉촉하고 따끈한 속살. 본디 다시 실온으로 식을 때까지... -
귀찮음 넘어야 향긋한 ’쉼’
커피를 좋아한다. 마감을 하나 넘기면 또 새로운 마감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상 속에서 커피는 보통 각성제이자 동료다. 부족한 수면에 멍해지는 뒷머리를 탕탕 두들겨 깨우듯이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을 쥐고 들이켜면 실제 신체에 찾아오는 효과와는 상관없이 출근 준비가 끝난 듯한 기분이 든다. 지금부터 업무 시작!실제 효과와는 상관이 없는 이유는 딱히 커피를 마신다고 잠을 설치는 체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주변 사람들이 카페인 민감성을 호소하며 열두 시가 지나면 디카페인을 찾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어가는데도 커피를 마신다고 잠이 깨지는 않는다. 저녁을 먹고 나서 커피를 마셔도 수면의 질은 랜덤이다. 말하자면 커피를 마신다고 정신이 멀쩡해지지도 않고, 커피를 안 마셨다고 잘 자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사실 내가 일을 할 때 책상에 커피를 올려두는 것은 토템을 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컴퓨터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성황이다. 커피님, 끝내주는 원고를 쓸 ... -
침이 꼴깍 넘어가도 똑딱똑딱 조금만 더 기다려봐
새우·버섯·굴·문어·관자원하는 식재료 맘껏 골라 올리브유에 ‘보글보글’마늘향 잘 배게 하려면 최소 30분 따뜻하게 가열온도 천천히 오르내리는 두꺼운 무쇠팬 쓰면 좋아세상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완급 조절이다. 달려야 할 때 달리고, 걸어야 할 때 걷는 것이다. 젊을 때는 의욕이 넘치지만 요령은 없어서 지금 돌아보면 한없이 뛸 준비만 되어 있었다. 지금인가? 싶으면 전력으로 질주하고, 아닌가? 싶으면 급브레이크를 걸듯이 멈추고 고민하며 그 자리를 맴돌았다. 마치 섬세한 기어 조절이 되지 않는 폭주기관차와 같았다고나 할까.당시에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도 돌이켜보면 이것 때문이다. 신속하고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기다리고 여러 번 검토하면서 준비해야 하는 일이 있고, 내 생각에는 그냥 착착 진행하면 될 것 같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따져봐야 하는 절차가 많을 때도 있다.그때는 몰랐다. 무조건... -
식빵 + 떡 ≠뭐냐고? = 맛있다!
두 장의 식빵 사이에 인절미를 채운 뒤 포개어 노릇하게 굽는다.여기에 콩가루, 꿀, 아몬드 플레이크를 뿌리면 카페 못지않은 ‘인절미 토스트’를 만들 수 있다.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에게 마감을 앞두고 마주하는 텅 빈 워드 파일은 아찔함과 막막함을 느끼게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나만의 필드이기도 하다. 내 머릿속에서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생각을 글자와 문단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 지금이야 모든 글을 거의 키보드로 쓰기 때문에 워드라는 프로그램명을 쓰지만, 원래 흔히 쓰이는 관용어구는 ‘○○의 캔버스’다.다재다능한 범용성을 지니고 있어 어떤 창의성이든 불어넣을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를 누군가를 위한 캔버스라고 부른다. 요리사의 영역에서 예시로 들 수 있는 요소는 닭고기다. 염지해서 튀기면 프라이드 치킨, 대파와 함께 푹 고면 닭곰탕, 토막 내 간장 양념에 졸이면 찜닭. 중국에는 간장과 술, 참기름을 한 컵씩 넣어 만든다... -
취향을 꽂다, 행복을 굽다
입맛 잘 알지 못하는 지인들과 함께 캠핑할 때 제격원하는 재료 한입 크기로 툭툭 썰어 직화불에 ‘자글자글’쌈장·마요네즈·소금…소스도 취향껏 곁들이면 입안이 행복자잘한 선택지가 많은 식당을 좋아한다. 뱃구레가 함지박만 한 사람도, 사과 한 알만 한 사람도 적당히 즐겁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좋아한다. 물론 다채로운 음식의 향연이 펼쳐지는 뷔페를 둘러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러한 자유로움과는 다르다.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것 이상의 포만감을 채워야 할 것 같은 과장된 풍요로움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맛있게, 나에게 알맞은 만큼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다.그래서 나에게 메뉴 선택권이 있지 않은 시절에는 차라리 회전초밥집에 가는 것이 좋았다. 앞서 말하자면 나는 날생선을 잘 먹지 못한다. 르 꼬르동 블루에 들어가면서 이제 못 먹는 음식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다양한 불호 음식을 열심히 먹어보았지만, 고수와 연어회에 대한 불호... -
겨울 아침, 얼어붙은 내 위장을 녹이는 ‘달콤한 구원자’
토마토는 과일일까, 채소일까? 해묵은 논란이라지만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주제다. 단것을 심하게 좋아해서 나이가 들수록 건강 관리가 골치일 정도인 사람에게 토마토는 재고의 여지 없이 채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빨갛고 동글동글한 모양을 핑계로 과일생크림케이크 위에 토마토를 올리는 만행을 저지르는 동네 빵집들이 없었다면 어릴 적에 토마토를 더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디저트로 받아들일 수 있는 토마토는 숭덩숭덩 썰어서 설탕을 잔뜩 뿌려서 다 먹은 후 그릇에 고인 즙까지 마시고 싶어지는, 정작 건강에는 그리 좋지 않다는 식으로 내준 것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 정도의 ‘쌩설탕’을 뿌리기만 해도 어울린다는 점이 토마토가 달콤한 채소로서 가진 저력일 것이다.피자나 파스타 소스가 된 토마토만 먹다가 ‘이것이 내 인생 요리구나!’ 하고 깨달은 것이 이태원 더베이커스테이블의 토마토 수프를 먹었을 때였다. 그날도 추운 겨울날이라 따뜻한 샌드위치 이상으... -
단단한 팥 달달 끓이며 기다리는 시간마저 달달
손끝 발끝 녹이는 화목난로 열기에통팥 한 냄비 가득 천천히 삶아내전통 팥죽·팥칼국수로 속 데우고달달하게 조려 토핑 곁들인 단팥죽다음날 아침 ‘앙버터 토스트’까지세상에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많은 통조림이 존재했고 또 생겨나고 있다. 이것 하나만 있으면 점심밥도 뚝딱이던 참치 통조림, 가끔 어머니가 구워 주면 마치 특식 같았던 햄 통조림, 잡지 기자 시절에 유행했던 연어 통조림, 간단하게 영양 가득한 식사를 차릴 수 있는 콩 통조림, 올해 발매하며 파스타 종주국 이탈리아의 큰 비난을 받은 하인즈사의 카르보나라 통조림까지. 그중에서 내가 가장 반색했던 제품은 다름 아닌 단팥 통조림이다. 딱 참치 통조림만 한 크기에 원터치 뚜껑을 따면 자그마하게 간식 한 끼 정도 먹기 좋은 단팥이 들어 있다.밥알과 새알심이 푹 퍼져서 그야말로 흐릿한 ‘팥죽색’을 띠는 슴슴한 팥죽이 아니라 설탕을 넣어서 또렷한 팥색이 남아 있는 단팥죽, 팥빙수의 꽃인 알... -
강황 질릴 때쯤 향신료 ‘톡톡’ 재료도 요리법도 ‘무한 변주’
생각해보면 기억에 남은 첫 캠핑은 초등학교 시절 걸스카우트 등에서 추진한 야영 이벤트였다. 부모님을 따라서 바닷가 옆 텐트에서 큰 대(大)자로 뻗어 자는 그보다 어린 시절 사진도 있지만 역시 초등학생 시절의 기억이 가장 생생한 것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나름 우리 손으로 야영을 해보는 경험이 뇌리에 박힌 모양이다.익숙한 대낮의 학교가 아닌, 텅 비어서 낯선 느낌의 학교에 우리끼리 마치 그저 놀러 온 것처럼 들어가는 비일상적인 경험. 학교 운동장 옆을 빙 둘러 여기는 걸스카우트, 저기는 보이스카우트, 그 옆은 아람단과 우주소년단이 차례로 구역을 정해 놓고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텐트까지 전부 우리 손으로 쳤는지는 요만큼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초등학생인데 우리 힘만으로 텐트를 쳤을 것 같지는 않기도 한데,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카레 만들기 팀이었던 것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각자 나누어서 당근과 양파, 감자와 쌀을 가져오고, 누군가는 개수대에... -
죽은 빵도 다시 살린 찍먹술사
‘타닥타닥’ 따뜻한 화목난로, 둘러앉아 마음의 온기 나누며 한결같은 열기로 요리까지 하루 지난 바게트도 마늘버터 발라 바삭하게 구워, 녹인 치즈 찍어먹으면 ‘맛 부활’고등학교 시절, 겨울이면 우리 학급은 일주일마다 한 분단씩 옆으로 돌아가며 책상 자리를 바꿨다. 온기 접근권을 공평하게 나눠야 했기 때문이다. 시스템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고 교실 한가운데에는 나름 개량된 난로가 있었지만 모두가 학습하기 쾌적한 환경을 누릴 만큼 틀어주지는 않던 시절이라 항상 난롯가 근처, 교실 한가운데만 교복을 입고 추위를 버틸 만큼의 온도를 유지했다.난로가 있다고 말하면 부모님이 들려주던, 난로 위에 올려서 누룽지를 만드는 양철 도시락이나 선생님이 귤껍질을 모아오게 해서 주전자에 귤차를 끓였다는 식의 추억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난로를 기준으로 동그랗게 ‘꿀잠 영역’이 형성되었다는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교실 가장자리에서 책상에 엎드려 잠들면 ‘동사 직전이 아니냐’... -
뱅쇼, 손은 ‘따뜻’ 속은 ‘뜨끈’… 얼죽아는 잠시 안녕!
와인에 과일·향신료 넣고 끓인 음료약불에 데워 머그잔에 마시면 손난로면역력 향상 ‘감기·오한’ 예방 효과무슨 일이 있어도, 곧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정체성은 버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한 어떤 계절에도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드립 커피를 기본으로 주문한다. 받자마자 한 모금 쭉 들이켜면 느껴지는 시원한 해갈, 바로 흡수되는 듯한 카페인의 짜릿함, 직전까지 무엇을 먹었든 ‘싹 내려간다’는 기분은 아이스 커피가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조합이다. 가끔 음료는 따뜻하게 마셔야 몸에 좋다는 잔소리가 들어오면 서로에게 느슨한 연대감을 느끼는 인터넷 ‘얼죽아’협회의 존재를 아느냐며 농담처럼 받아치는 것도 재미다.하지만 이제는 특정한 어떤 순간에는 따뜻한 음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최소한 목 관리를 위해서는 차가운 음료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