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팥양갱 도넛 ~

정연주 푸드 에디터

(7) 캠핑 주방 ‘필수템’ 베이킹 재료

팥소가 있을 리 없는 캠핑장에서 팥도넛이 먹고 싶다면? 팥과 설탕, 한천 등을 넣어서 만든 요즘 인기 간식 ‘팥양갱’을 넣으면 된다.

팥소가 있을 리 없는 캠핑장에서 팥도넛이 먹고 싶다면? 팥과 설탕, 한천 등을 넣어서 만든 요즘 인기 간식 ‘팥양갱’을 넣으면 된다.

내가 진짜 손만 뻗으면 뭐든지 있는 세상에서 살아왔구나. 캠핑을 떠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전구 하나가 나가도 금방 대형마트에서 사 올 수 있고, 저녁 느지막이 다음날 학교 준비물을 알게 되어도 새벽배송으로 받을 수 있을 때도 있다. 집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도 배달을 받을 수 있는 시대다. 그 와중에 가끔 새벽배송 주문 타이밍을 놓쳐서 물건이 한두 개라도 품절되면 그게 얼마나 불편하게 느껴지는지.

그러다 캠핑을 처음 떠나면 ‘내가 가져오지 않은 물건은 없는 채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짐을 싸도 가면 없는 물건이 있고, 두고 온 것이 있고,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떨어지는 것이 있다. 저번 캠핑에는 달걀을 깜박해서 팬케이크를 부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10개씩 챙겼더니 정작 수건을 두고 오는 식이다. 이런 걸 여러 번 반복하면 캠핑장 매점에서 어디까지 조달할 수 있고 어떤 물건은 없으면 큰일 나는지 대충 알 수 있게 된다. 물과 얼음과 폭죽은 항상 팔지만 우유와 달걀은 없는 곳이다.

캠퍼의 만능 해결사 유전자

하지만 캠퍼는 기본적으로 등 따시고 포근한 집을 떠나 밖에서 자고 싶어 하는 시점에서 이런 불편함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당장 불편한 것보다도 이런 크고 작은 비상상황을 해결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다음부터는 만반의 준비를 하는 우리의 모습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낀다. 굳이 발생하지 않은 캠핑에서의 위기상황을 상정하고 비상용품이라는 명목의 쇼핑을 해놨다가 쓸 일이 생기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펙을 잃어버려서 스트레치 코드와 캠핑장 나무만으로 그늘막을 고정했을 때, 얼마나 맥가이버가 된 기분이었는지! 쓸 일이 없어 잠자고 있던 만능 해결사 유전자를 깨우는 느낌이다.

그래서 캠퍼의 짐은 그들이 어떤 비상상황을 겪었는가에 따라 구성이 달라진다. 또 수건을 깜박할 상황을 대비해서 캠핑카 수납함에 아예 비치타월을 넣어놓은 우리 집과 같다. 세수하고 수건을 찾았는데 세탁한 다음 가져오는 걸 깜박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휴지로는 무리겠지? 키친타월로 머리를 털 수 있을까? 선풍기 바람에 말릴까? 샤워를 포기할까? 다행히 그 캠핑장 근처에는 작은 마트가 하나 있었고, 때수건처럼 화려한 색에 종잇장처럼 얇은 싸구려 수건을 팔았다. 문명에 감사하고 물자의 귀함과 유통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이다.

캠핑 주방 짐도 마찬가지다. 나는 항상 다른 캠퍼의 주방이 궁금하다. 어떤 요리를 좋아하고 어떤 가열원을 좋아하는지에 따라 다들 다른 물건을 들고 다니니까. 절대 불을 때지 않고 부탄가스와 이소가스만 이고 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캠핑장 장작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르고 고른 참나무 숯으로만 고기를 굽는 사람도 있다. 시장 정육점에서 아롱사태를 받아 와 수육을 만드는 사람 옆에 주꾸미를 볶는 사람이 있고 놀랍게도 치킨 배달부가 그 옆을 지나며 주문한 사람을 찾아 전화를 건다. 이보다 더 백인백색일 수가.

팥양갱 도넛 비상사태

그렇다면 내 캠핑 주방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은 무엇일까? 바로 베이킹 재료다. 우리 주방의 위기상황은 주로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데, 갑자기 ‘도넛이 먹고 싶다’는 계시가 내려오기 때문이다. 배 속의 빵 비상사태다. 분명 점심과 저녁 메뉴를 다 정해놓고 장도 꼼꼼하게 봐 왔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갑자기 빵이 먹고 싶고 갓 튀긴 꽈배기가 그렇게 맛있을 것 같다. 그러면 이제 그나마 반죽할 시간이 있는 아침에 생각나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짐을 뒤지는 것이다. 어디 보자, 뭐가 있나.

[정연주의 캠핑카에서 아침을]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팥양갱 도넛 ~

다행히 뼛속까지 빵순이인 나 스스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 짐에는 항상 베이킹파우더와 베이킹소다, 인스턴트 이스트가 전부 들어 있다. 어떤 팽창제가 필요한 빵이 먹고 싶을지 그 순간이 되지 않으면 알지 못하니까! 시판 팬케이크믹스가 없는데 팬케이크가 먹고 싶으면 베이킹파우더를 꺼내야 하고 맥머핀을 만들려면 인스턴트 이스트가 필요하다. 심지어 전자저울과 적외선 온도계도 있다. 계량 없는 베이킹은 성립할 수 없는 단어고, 캠핑에는 온도를 맞출 수 있는 전기오븐이 없으니까.

올해 처음으로 최고기온이 15도를 넘어가던 지난 캠핑 날은 원래 점심 간식으로 튀김을 먹을 예정이었다. 봄채소를 손질하고 탄산수를 부어 튀김옷을 만든 다음 바삭바삭 튀겨내 레몬과 다진 마늘을 뿌려 먹는 그 맛, 봄의 맛. 그런데 아침을 먹고 앉아서 냉이를 튀기는 과정을 머릿속으로 복기하고 있자니 같은 튀김 기름에 동동 떠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도넛이 생각나는 것이다.

갓 튀긴 도넛! 달걀과 설탕과 버터를 넣어서 진하고 달콤한 반죽! 시나몬 설탕을 솔솔 뿌려서 ‘겉바속촉’으로 한 입! 엄마가 다 됐다고 부르기도 전에 식탁에 앉아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추억! 필요한 재료가 다 있나? 이스트도 있고 달걀도 있고, 설탕은 항상 있고, 구석에 박혀 있는 이 시나몬은 언제 썼던 거지? 버터는 왜 있지? 일단 만들어보자. 그런데 나는 팥도넛이 좋은데. 아무리 나라도 비상용 팥소를 들고 다니지는 않잖아. 그런데 놀랍게도 마트에서 요즘 인기인 연양갱을 사 왔던 것이다. 이것이 오늘 나의 비상용 팥소다.

캠핑에서 하는 빵 반죽은 조금 다르다. 덧가루를 뿌리고 힘차게 밀어가며 반죽을 하기에는 테이블이 넓지 않거나 튼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떠올려야 하는 것이 바로 스탠드 믹서다. 갈고리를 무심하게 돌리면서 반죽을 대신해주는 스탠드 믹서는 볼 하나를 올려두는 공간만 있으면 제 몫을 해낸다. 하지만 노지에 나가면 스탠드 믹서가 없고, 있더라도 쓸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내가 비상용 스탠드 믹서가 되는 것이다. 볼에 반죽 재료를 넣고(그렇다, 베이킹용 법랑 볼 세트도 우리 집에서는 비상용 캠핑 아이템이다) 마치 내 팔이 스탠드 믹서의 갈고리가 된 것처럼 볼을 돌려가며 반죽을 치댄다.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다. 스탠드 믹서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게 된달까, 이 단순한 움직임을 통해서 진짜 반죽이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달까, 나와 달리 기계는 지치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생각하게 된달까.

반죽한 뒤 3시간 정도 발효시키고 나면 딱 간식이 생각날 시간이 된다. 반죽을 적당량씩 뜯어서 깍둑 썬 연양갱을 넣고 동글동글 빚은 다음 2차 발효를 시키면서 튀김 기름을 불에 올린다. 이왕 튀김을 할 생각이라면 기름을 쓰는 김에 도넛이나 꽈배기도 꼭 만들어보자. 튀김은 오븐이 없는 공간에서 아주 쉽고 간단하게 달콤한 베이킹을 할 수 있는 고마운 기술이다. 온도만 맞추면 순식간에 속까지 보송보송하게 익힐 수 있다. 봄바람을 맞으면서 갓 튀긴 달콤한 도넛을 먹는 즐거운 추억을 남기는 것은 덤이다. 순식간에 완성된 도넛을 건져 기름을 빼고, 시나몬 설탕을 앞뒤로 넉넉히 묻혀서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이걸 먹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캠핑 도넛 비상사태가 아닐까?

◎캠핑 팥양갱 도넛

재료 드라이 이스트 6g, 우유 120㎖, 설탕 25g, 중력분 250g, 소금 2g, 무염버터 40g, 달걀 1개, 양갱, 튀김 기름, 여분의 설탕과 시나몬 파우더

만드는 법

1 우유를 데워 이스트를 넣고 5분 정도 둔다. 중력 분, 설탕, 소금, 녹인 버터에 우유 이스트 혼합물 을 붓고 매끄러운 상태가 될 때까지 반죽한다.

2 3시간 동안 발효시킨 후 2배로 부풀면 적당량씩 떼어서 깍둑 썬 양갱을 하나씩 넣고 동글게 빚는 다. 꽈배기를 만든다면 길게 꽈배기 모양으로 빚 는다. 2차 발효를 20분 정도 시킨다.

3 튀김 기름을 175도로 가열한다. 도넛이나 꽈배 기를 넣고 한 번 뒤집어가면서 노릇노릇해질 때 까지 한 면당 45초~1분 정도 튀긴다.

4 건져서 철망에 얹어 기름기를 제거한 다음 설탕 과 시나몬 파우더를 섞은 시나몬 설탕을 앞뒤로 묻혀서 먹는다.


■정연주

[정연주의 캠핑카에서 아침을]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팥양갱 도넛 ~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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