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봄 채소철, 지금 딱 좋은 ‘튀김’
제일 먼저 가졌던 나만의 부엌은 고시원의 공용 공간이었다. ‘공용’이지만 나만의 부엌으로 꼽는 것은 집에서 독립한 후 혼자 장을 보고 식단 구성을 생각하며 밥을 해 먹은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 쓰는 부엌이 갖고 싶기도 하고, 화구도 두 개 이상이면 좋겠고, 공간도 넓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먹을 음식을 직접 계획해서 만드는 것 자체는 즐거운 일이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은 3구 화구에 넉넉한 조리 공간과 냉장고, 우리 가족만 쓰는 부엌까지 그 모든 소원을 다 이뤘다. 물론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어서 그럼에도 바라는 바는 항상 생긴다. 오븐을 갖추니 이번에는 브로일러도 있으면 좋겠고, 환기도 더 잘되고 화력도 더 좋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거의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부엌이 생겼으니, 그것이 바로 캠핑이다.
캠핑에서 무언가를 요리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집에는 있지만 밖에는 없는 것’을 떠올리며 불편하고 부족한 환경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 캠핑 요리는 한없이 자유로운 공간이다. 밖에서 먹으면 뭐든 맛있게 느껴지는 수준이 아니다. 장작불을 활활 태우면서 요리하면 집에서는 불가능한 수준의 화력을 낼 수 있을 때도 있고, 생선 요리나 숯불구이처럼 실내에서는 냄새가 배고 공기가 나빠져서 만들기 힘든 음식을 걱정 없이 만들 수 있다. 내가 캠핑을 나가면서 훨씬 신나게 만들기 시작한 음식이 또 한 가지 있으니, 바로 튀김이다.
튀김은 자고로 캠핑장에서
뭐든 튀기면 일단 맛있다. 보글보글 가벼운 튀김옷이 꽃을 피우는 일식 튀김, 맥주와 거품 낸 흰자를 섞은 포근한 새우튀김, 찹쌀 반죽이 바삭바삭한 꿔바로우, 채 썬 채소를 잔뜩 섞어서 알록달록 달콤한 채소튀김, 고기 소를 채운 가지튀김. 지나가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튀김과 먹고 싶은 튀김을 말해보라고 하면 전 세계 국적의 다양한 튀김과 집에서 먹었던 갓 튀긴 무언가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만들기 귀찮은 음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직접 튀김을 만드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무엇보다 갓 튀긴 튀김만큼 맛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직접 만들면 내 취향에 딱 맞는 식재료만 튀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오징어 튀김을 사랑하지만 먹고 싶은 부분은 오로지 하얀 몸통뿐이다. 그러니 직접 오징어 튀김을 만든다면 몸통만 사용해서 불만의 요소를 없앨 수 있다. 뭘 골라도 몸통! 당첨 확률 100%!
이런 사소하지만 중요한 이유로 주기적으로 튀김을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집에서는 그렇게 자주 만들지 않는다. 심지어 소형 튀김기를 하나 사들였는데도 좀처럼 꺼내게 되지 않는다. 튀김 냄비는 물론이고 주변에 기름이 튀면 뒷정리를 하기가 번거롭고, 튀김 기름이 함지박만큼 남으면 그걸 처리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한번 튀김을 만들고 나면 기름 냄새만큼이나 그 뒤처리에 질려서 다시 엄두를 내기 힘들다. 그래서 에어프라이어나 프라이팬에서 굽듯이 튀기는 방식으로 대체하다 도저히 못 견딜 상태가 되면 다시 기름을 붓는 것이다.
냄새·뒷정리로 집에선 꺼려졌는데…
탁 트인 캠핑장은 튀김 요리 ‘명당’
남은 기름은 장작용으로 안성맞춤
이렇게 뒷정리 때문에 원하는 만큼 튀김을 해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캠핑에서 커다란 냄비에 튀김을 꼭 해보기를 추천한다. 일단 야외라서 집 전체에 기름 냄새가 밸 일이 없고, 개수대가 잘되어 있는 캠핑장이라면 설거지도 시원시원하게 해치울 수 있다. 그리고 남은 기름은 신문지에 잘 흡수시켜서 보관했다가 화로대에 장작이나 숯불을 피울 때 착화제로 활용할 수 있다. 따로 고체 연료를 구입하지 않아도 되고, 내내 토치를 들고 불씨를 살리며 붙어 앉아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 특히 숯에 불을 붙이는 보조도구인 침니스타터가 있다면 아래에 꼭꼭 뭉쳐서 튀김 기름을 흡수시킨 신문지 덩어리를 두세 개 깔고 숯을 올리자. 중간에 기름 밴 신문지를 같이 배치해가며 숯을 마저 올린 다음 토치나 주둥이가 긴 라이터로 신문지에 불을 붙이면 숯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흰색 재가 덮일 때까지 불이 잘 유지된다.
마침 지금은 딱 튀겨 먹으면 매력적인 향과 질감을 자랑하는 봄나물이 시장에 등장하는 시기. 두릅이나 아스파라거스, 냉이 등 씹는 맛이 두드러지고 향이 강한 봄 채소는 튀김과 잘 어울린다. 바삭한 튀김옷 아래로 촉촉한 아스파라거스와 향긋한 냉이가 아작, 하고 씹히면서 즙이 배어 나온다. 여기에 봄바람이 불어오면 맥주 안주로 이만한 것이 없다.
향기로운 봄 튀김 만드는 법
바삭바삭한 튀김옷을 만드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령이 필요하다. 물 대신 탄산수나 맥주를 사용하면 더 가벼운 질감을 낼 수 있다. 밀가루의 글루텐이 최소한으로 발생해야 질기지 않고 바삭함을 유지하기 때문에 튀김가루에 수분을 첨가하고 나면 많이 휘젓지 않는 것이 좋다. 중간중간 가루가 뭉친 멍울이 남아 있어도 상관없다. 튀김가루나 밀가루는 서늘한 곳에 보관하고 찬물을 쓰거나 얼음을 넣는 등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맛있는 튀김옷이 된다.
반죽 농도는 되직할수록 튀김옷이 두꺼워지고, 묽을수록 얇고 가벼워진다. 튀길 재료와 반죽 옷이 분리되지 않게 하려면 먼저 밀가루를 가볍게 묻혀서 잘 털어낸 다음 반죽 옷을 입히는 것이 좋다. 볼이나 비닐봉지에 가루와 함께 넣고 잘 흔들어서 고루 묻히도록 한다.
만일 조금 더 향기로운 튀김을 만들고 싶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튀김에 가장 마지막에 입히는 옷, 그러니까 축축한 반죽이나 바삭한 빵가루에 원하는 향신료를 가미하는 것이다. 치즈가루나 허브도 잘 어울리고, 가람 마살라처럼 이국적인 향신료를 넣는 것도 좋다. 수분이 너무 많아서 기름이 닿으면 터질 우려가 없는 재료만 아니면 된다.
그리고 양념간장을 만드는 대신 다 튀긴 튀김 자체에 간을 하는 것도 좋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아스파라거스를 송송 썰어서 밀가루를 살짝 묻힌 다음 반죽 옷을 입혀서 노릇노릇하게 튀긴다. 건져서 철망에 얹어 기름기를 제거한다. 그리고 아직 따뜻할 때 볼에 넣는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넉넉히 하고 다진 마늘과 레몬 제스트, 파르메산 치즈, 다진 파슬리를 넣어서 버무려 내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 소스도 곁들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맛있는 튀김 한 그릇이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착화제로 쓸 수 있다 하더라도 넉넉히 부은 튀김 기름이 남으면 아깝다. 이왕 신문지에, 튀김 냄비에, 반죽 옷을 펼쳐 놓은 김에 이것저것 튀기고 싶어질 것이다. 아이스박스를 뒤져서 ‘튀기면 정말 뭐든 맛있어지는지’ 확인하고 싶은 식재료를 꺼내자. 잘 손질한 두릅에 심플하고 가벼운 튀김옷을 살짝 입혀서 튀겨내는 것도 좋지만, 당근과 양파 등을 섞은 평범한 채소튀김에 냉이나 달래처럼 봄 내음이 가득한 봄나물을 섞어 넣어 튀기는 것도 좋다. 다진 새우살에 세발나물을 섞어서 완자처럼 튀기면 스위트 칠리소스가 잘 어울리는 간식이 된다. 김에 찹쌀풀을 묻혀서 튀긴 김 튀각에 참깨와 고춧가루를 솔솔 뿌리면 ‘불멍용’ 술안주가 따로 없다. 갓 튀긴 무언가를 먹어보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고소한 캠핑 날의 추억이 함께 완성될 것이다.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 정연주 필자의 뉴스레터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에서 자세한 레시피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