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균 기자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멀티 포지션의 시대

USA투데이는 크리스 브라이언트와 크리스 테일러를 두고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이타적 선수’라고 적었다.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리그 전체가 주목하는 유망주 스타였다. 시카고 컵스에 1라운드 지명됐고, 2015년 데뷔하자마자 신인왕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내셔널리그 MVP를 차지했다. 시카고 컵스의 108년 된 ‘염소의 저주’를 끊는 우승 확정 때 3루수로 땅볼을 잡아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장식했다. 리그를 대표하는 3루수로 성장이 기대됐지만 브라이언트는 엄밀히 따지면 ‘3루수’가 아니다. 메이저리그 7시즌을 뛰는 동안 3루수로 678경기, 외야수로 265경기에 나섰다. 1루수로 32경기를 출전했고, 잠깐이지만 유격수로도 2경기를 뛰었다.

브라이언트는 “야구 코치 아들의 운명”이라며 웃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팀에서 뛰면서 필요할 때마다 모든 포지션을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브라이언트는 “꼭 3루수일 필요도, 3번타자일 필요도 없다. 야구선수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브라이언트는 2021시즌 중반 샌프란시스코로 트레이드됐고, 리그 최다승(107승)에 힘을 보탰다. 새 팀에서는 3루수(26경기)보다 외야수(30경기)로 더 많이 뛰었다.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라이벌 샌프란시스코의 강점에 대해 “변화무쌍한 라인업”이라고 설명한 것은 내·외야를 오가는 브라이언트의 역할 덕분이었다.

다저스의 크리스 테일러는 브라이언트보다 더 변화무쌍한 선수다. 테일러는 1루수와 포수를 빼고는 전 포지션을 소화한다. 이번 시즌 2루수로 46경기, 유격수로 23경기, 3루수로 11경기, 외야수로 89경기를 나섰다. 시애틀 시절 어중간한 유격수였던 테일러는 다저스에서 ‘슈퍼 유틸리티맨’이 되면서 확실한 주전이 됐다.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는 테일러에 대해 “우리 팀에 매일매일 꼭 필요한 선수”라고 말했다.

여러 수비 포지션을 맡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테일러는 “타석에서 여러 구종에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타구에 반응해, 따라가서 잡으면 된다. 테일러는 “누군가의 뒤를 받치는 백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서든 매일매일 뛸 수 있는 준비된 선수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전공이 부족한 선수’라고 평가됐지만, 야구가 바뀌었다. 메이저리그는 쏟아지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일매일 최적의 라인업을 구성한다.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함은 라인업 최적화에 반드시 필요한 전력 요소다. 선수에 대한 가치도 바뀌었다. FA 자격을 얻은 테일러는 1억달러 이상 계약이 예상됐으나 다저스에 남고 싶어 4년 6000만달러에 도장을 찍었다. 아직 FA로 남아 있는 브라이언트 역시 총액 1억달러 이상 계약이 예상된다.

한 가지를 잘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쪽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의 투타겸업은 ‘젊은 선수의 패기’로 치부됐지만, 아메리칸리그 MVP를 수상함으로써 어마어마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한 우물의 시대에서 바야흐로, 멀티 포지션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