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체 된 벤투호
열흘간 운동 쉬었지만, 문제없다
1%보다 낮은 가능성이라도 도전
소설로, 영화로, 또는 애니메이션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조로(Zorro)는 1800년대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스페인 지배하에 있을 때 스페인 영주의 폭정에 맞서 싸운 영웅이었다. 검은 가면을 쓰고 망토를 두른 채 자신의 상징인 알파벳 ‘Z’를 남겨놓는 그는 ‘쾌걸 조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앞둔 한국 축구대표팀에도 영웅 ‘조로’가 나타났다. 검은 망토는 아니지만, 대표팀을 상징하는 붉은색 유니폼에 검은색 마스크를 썼다. 부상을 견뎌내기 위한 투혼의 상징인 이 마스크를 쓴 주인공은 대표팀의 주장 손흥민(30·토트넘)이다. 이번 대회에서 손흥민은 쾌걸 조로가 아닌, 한국 축구를 이끄는 투혼의 ‘캡틴 조로’가 된다.
손흥민은 16일 베이스캠프인 카타르 도하의 알 에글라 훈련장에서 진행된 훈련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여기 오기 전부터 구단에서 계속 훈련을 따로 진행했었다. 오늘 대표팀에서 첫 훈련을 했는데 구단에서 한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며 “구단, 대표팀과 소통을 해왔다. 오늘도 다른 느낌 없이 잘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제작한 카본 재질의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훈련에 임했다. 안와골절 수술을 받은 후 보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다 낫지 않은 안면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손흥민은 마치 조로를 연상케 했다. 마스크 측면에는 흰색으로 손흥민의 등번호인 7번이 적혀 있었다. 손흥민은 훈련 도중 불편한지 자주 마스크를 매만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손흥민은 “생각보다 편안했다. 여기 날씨가 더워 땀이 많이 흐르는 거 빼고는 불편한 게 없었다”며 “마스크를 만진 것은 어떤 날은 부기가 빠져 있고, 또 어떤 날은 부어 있기에 상황에 맞게 형태를 조정하려다 보니 그렇게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마스크를 착용한 것 빼고는, 손흥민은 평소 대표팀에서 보이던 모습 그대로였다. 동료들과 몸풀기에 이어 가벼운 러닝을 마친 뒤 정우영(프라이부르크)과 짝을 이루어 패스를 주고받는 훈련을 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 훈련을 모두 마친 뒤에는 김진수(전북), 황희찬(울버햄프턴)과 함께 따로 빠져 회복 훈련을 진행했다.
손흥민은 “부상으로 열흘 정도 운동을 쉬었다. 컨디션적인 부분에서 조금 더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며 “수술이라는 게 몸을 많이 망치는 일이라고는 하는데, 그래도 수술이 잘됐다고 해서 걱정은 없다. 아직 공을 헤딩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카타르 오기 이틀 전까지 훈련했는데 스프린트는 문제없이 잘 진행됐다. 지금 내 몸 상태는 문제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많은 팬들이 손흥민의 출전 여부를 궁금해한다. 일부에서는 손흥민이 경기에 나서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한다. 손흥민도 이 사실을 잘 알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손흥민은 “내가 의사는 아니다. 언제 출전할 수 있는지 알았다면 가장 먼저 얘기했을 것이다. 일단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라며 “팬들은 내가 경기에 나서는 것이 무리라고 볼 수 있지만, 축구 선수는 항상 리스크를 안고 뛴다. 팬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드릴 수 있다면, 그 리스크를 충분히 가져가겠다”고 강조했다.
손흥민은 수술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1%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뛰겠다고 했다. 카타르에 입성해서도 마찬가지다. 손흥민은 “나는 만약이라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그래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설령 1%보다 낮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분명히 그것만 보고 달려갈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 속 조로는 불가능한 상황을 온갖 역경을 겪은 끝에 가능으로 바꿔놨다. 손흥민도 역경에 정면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