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의 기적이 정말 재현됐네요.”
비행기가 오르내리는 시끄러운 공항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선 감격을 넘어 물기까지 느껴졌다.
한국 축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하의 기적’을 직접 경험한 이가 같은 곳에서 이번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원정 16강 막차를 타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으니 그럴 법 했다.
29년 만에 카타르 도하를 방문해 후배들을 응원했던 고정운 김포FC 감독(53)은 지난 3일 “도하는 약속의 땅이었다”며 “내 바람대로 후배들이 기적을 이뤄졌다. 내 기억 속의 극적인 장면이 다시 살아난 기분”이라고 웃었다.
고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의 초청으로 도하를 방문해 현장에서 후배들을 직접 응원했다.
고 감독이 현지에서 직접 관전한 월드컵 5경기 가운데 2경기가 바로 지난달 28일 가나전과 3일 포르투갈전이었다.
포르투갈전이 끝나자마자 귀국길에 오른 그는 자신의 경험과 빗대 곱씹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날 한국은 종료 직전 포르투갈에 2-1로 승리한 뒤 우루과이가 가나를 2-0으로 꺾으면서 16강 티켓의 마지막 조건까지 채웠다.
“도하의 기적 2탄”이라고 탄식한 고 감독은 이날 경기 흐름이 29년 전 자신이 경험했던 기적과 너무 흡사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한국은 1993년 10월 도하에서 진행됐던 미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당시 자력 진출이 불가능했다. 한국은 최종전에서 북한에 3-0으로 승리했지만 마지막 본선 티켓 한 장을 다투던 일본도 승리하면 탈락이었다. 실망 속에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던 그는 일본이 이라크와 종료 직전 2-2로 비겼다는 소식에 환호성을 지른 바 있다.
다만 29년의 세월이 흘러 재현된 도하의 기적 사이에선 차이도 있었다. 과거 첫 조건이었던 최종전 승리라 손쉬웠던 반면 이번엔 0-1로 끌려가다 동점과 역전골이 잇달아 터지면서 뒤집기에 성공한 사례였다. 기적이 성사된 마지막 장면도 과정은 조금 달랐다. 1993년 기적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걸어갈 때 터져나왔다면, 2022년 기적은 8분에 가까운 긴 기다림 끝에 경기가 그대로 끝나면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고 감독은 “아마 후배들은 너무 오래된 옛날 일이라 기억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주장인 (손)흥민이조차 나와 성남 일화 입단 동기였던 (손)웅정형의 아들 아닌가”며 “후배들이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한국 축구를 위해 기적을 재현해주다니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