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켜라, 지구를 돌 때도…지구를 사랑하는 여행자를 위한 팁

이윤정 기자
지구를 지켜라, 지구를 돌 때도…지구를 사랑하는 여행자를 위한 팁

여행자의 발자국은 지구에 생채기를 낸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가 관광업에서 나온다.

항공·기차·자동차 등 운송수단에서 발생하는 탄소는 세계 배출량의 3할이나 차지한다. 인간이 많이 움직일수록 지구의 병세는 깊어지는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멈췄던 여행자의 발길이 다시 분주해진 지금, 책임 있는 여행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해외 여행사 비르투오소 설문조사에서 여행자 10명 중 8명은 “팬데믹을 겪은 뒤 더 책임감 있는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고 답했다.

마침 오는 22일은 ‘지구의날’이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지구를 더 망치고 싶지 않은 여행자라면 알아야 할 것들을 정리해봤다.

비행기로 대서양 오가면 탄소 1.6t 배출
“여행 제한해야”…‘탄소여권’ 도입 주장도

공정여행사 트래블러스맵 여행자들이 캄보디아 반띠아이츠마 마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트래블러스맵 제공

공정여행사 트래블러스맵 여행자들이 캄보디아 반띠아이츠마 마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트래블러스맵 제공

여행은 얼마나 지구를 망가뜨릴까. 스웨덴 룬드대학교가 계산한 ‘탄소 발자국’ 보고서에 따르면 1년 동안 재활용을 하면 1인당 210㎏, 채식을 하면 800㎏씩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비행기로 장거리 여행을 한 번 하면 1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비행기로 대서양을 오가면 탄소 1.6t이 배출되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탄소여권’ 도입 주장까지 나왔다. 여행자가 매년 허용되는 수준 이상으로 탄소를 배출하지 못하게 여행을 제한하는 여권이다. 여행사 인트레피드와 컨설팅기업 더 퓨처 래버러토리는 지난해 10월 여행의 미래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관광산업이 살아남기를 희망한다면 ‘탄소여권’을 현실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유럽에서는 개인의 탄소 배출을 제한하는 것 대신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을 쓰도록 유도하고 있다. 유럽환경청은 승객 1명이 1㎞를 이동했을 때 배출되는 탄소량이 비행기 285g, 버스 68g, 기차 14g 정도라고 추산한다. 하지만 BBC는 비행기의 배기가스는 높은 고도에서 차고 습한 공기와 만나면서 추산량의 2배 이상 탄소를 더 배출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항공료에 환경세를 부과하는 국가도 있다. 영국은 1994년 항공 여객세를 도입했고, 프랑스는 2020년부터 항공 이용 승객에게 환경세를 부과하고 있다. 환경세는 친환경 교통수단 개발 투자에 쓰인다.

공정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행자들이 태국 치앙마이 코끼리 보호센터를 방문했다. 트래블러스맵 제공

공정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행자들이 태국 치앙마이 코끼리 보호센터를 방문했다. 트래블러스맵 제공

유럽연합(EU)은 비행기 대신 열차를 이용하도록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019년 기준 EU 내 철도 노선의 길이는 22만㎞를 넘었다. EU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고속철도 노선의 길이를 두 배로 늘리고, 2050년까지 여객 수송에서 철도가 차지하는 비중을 50%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항공업계에서도 기존 항공유 대비 탄소 배출을 80%까지 줄일 수 있는 ‘지속 가능 항공 연료’(SAF)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SAF는 일반 여객기가 사용하는 제트 연료 대신 수지(동물 지방조직에서 얻은 기름) 및 기타 폐지방을 사용한다. 그러나 SAF 상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비가 높고 재료 수급이 어려워 대량생산이 힘들다. 이 때문에 SAF 가격은 일반 제트 연료에 비해 3~5배 더 비싸다. SAF는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 중인 제트 연료의 0.1%에 불과하다.

‘과잉관광’ 몸살 앓던 세계…팬데믹 이후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책임 갖는 ‘지속 가능 여행’ 공감대

뒤늦은 노력은 이미 병들어 있는 지구를 회복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에 비해 1.45도가량 올라 역대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다.

여행업계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팬데믹 직전까지 관광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2019년 국제 항공편 승객은 14억명에 이르렀다. 5년 동안 항공산업과 관련한 탄소 배출량은 32% 늘었다. 전 세계 주요 관광지는 ‘과잉관광’으로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여행자의 발길이 끊기면서 관광지는 회복의 기회를 얻었고, 여행자의 시선은 더 성숙해졌다. ‘지속 가능한 여행’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다.

지속 가능한 여행은 1993년 영국 학자 빌 브람웰과 버나드 레인이 <지속 가능한 관광: 진화하는 글로벌 접근법> 연구를 내놓은 이후 학계와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했다. 유엔 산하 세계관광기구는 지속 가능한 여행을 ‘현재와 미래의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영향에 책임지며 여행자·산업·환경과 여행 지역 공동체의 요구를 해소하는 여행’이라고 말한다. 자연뿐 아니라 여행지의 문화를 지키고 현지의 경제적 순환을 돕는 여행이다.

여행기업 비르투오소가 지난해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0% 이상이 팬데믹 이후 더 책임감 있는 여행을 하고 싶어졌다고 답했다. 영국 환경인증기관인 그린투어리즘의 안드레아 니콜라스 최고경영자는 “팬데믹은 지속 가능한 여행의 개념을 5년에서 10년 앞당겼다”면서 “과거 ‘추가’ 사항 정도였던 기업들의 친환경 정책이 이제 ‘필수 사항’이 됐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플로깅(조깅 또는 산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

플로깅(조깅 또는 산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

실제로 롯데호텔을 비롯해 국내 주요 호텔들은 친환경 정책을 내걸고 있다. 플로깅(조깅 또는 산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 상품과 숙박 기간 침구를 바꾸지 않는 패키지, 태양광 신재생에너지 시설 등을 도입했다. 현지에서 나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주민들과 상생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등 지역 경제를 돕는 데도 나서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을 위한 비용이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객실 50개 이상인 숙박업소에서 일회용품 사용이 제한되는 ‘개정 자원절약재활용촉진법’이 시행되자 호텔에선 칫솔, 치약, 샴푸, 린스, 면도기 등 5가지 용품이 자취를 감췄다. 샴푸와 린스는 대용량 용기로 비치됐고 칫솔·치약·면도기는 호텔 카운터나 자판기 등을 통해 유료로 판매된다. 하지만 무료로 주던 일회용품을 판매해 소비자 부담만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 같은 기업들의 행보를 두고 ‘그린워싱’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마야나 베린은 ‘세계 최초의 탄소중립 항공사’라고 주장하는 델타항공의 광고가 허위라며 항공사를 고소했다. 델타항공이 참여한 탄소 상쇄 프로젝트가 실효성이 없는데도 승객에게 프리미엄 비용을 받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동선은 짧게, 많이 걸으며 현지에 스며들어라

어떻게 지구를 조금이라도 덜 해치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2009년부터 공정여행사 트래블러스맵을 운영해온 변형석 대표에 도움말을 들었다. 트래블러스맵은 팬데믹 이전까지 국내 걷기길을 중심으로 지역 마을과 연계한 여행상품을 운용해왔다. 여행객의 발길이 마을에 머물며 지역 살림살이에도 도움이 됐다.

트래블러스맵은 네팔, 캄보디아, 라오스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공정여행으로 여행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변 대표는 “네팔에는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고국으로 돌아가 한국어가 유창한 사람들이 많았다”며 “이들이 현지에서 가이드 역할을 해주고, 트레킹 코스에 있는 마을들에서 민박과 체험을 하며 상생하는 여행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변 대표는 여행자가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몇가지 팁도 소개했다. 첫 번째 팁은 ‘여행 동선을 최소화하라’다. 탄소 배출을 그나마 피할 수 있는 건 한 지역에 오래 머무는 것이다. 그는 “일주일 5개국 같은 여행 계획은 빠른 시간에 다양한 곳을 가야 하므로 결국 비행기를 더 많이 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팁은 숙박시설의 ‘친환경 정책’을 유심히 살펴보기다. 현재 대다수 호텔이 내건 친환경 정책은 침구 세탁 빈도 최소화, 일회용품 미지급, LED 조명 사용 정도다. 변 대표는 여행지에서 어떤 숙박시설이 친환경적인가를 알아보려면 호텔 홈페이지의 ‘지속 가능성’ 안내를 찾아볼 것을 권했다. 물과 전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친환경 인증을 받았는지 등을 살펴보면 좋다.

알릴라 빌라 울루와뚜

알릴라 빌라 울루와뚜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알릴라 빌라 울루와뚜’는 대표적인 환경 친화 호텔로 꼽힌다. 하얏트그룹이 운영하는 알릴라 빌라 울루와뚜는 ‘지속 가능성이 새로운 럭셔리’라는 콘셉트를 내걸고 있다. 호텔은 발리에서 조달한 대나무, 석회석, 용암 바위 등 현지 건축자재를 사용했다. 건물 옥상에 식물을 재배해 열기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고 공기 흐름을 최대화하는 환기 시스템으로 에어컨 사용을 최소화한다. 햇살이 건물 안까지 스밀 수 있도록 창을 설계해 조명 사용 또한 줄였다. 쓰레기는 최대한 재활용하거나 퇴비로 활용한다.

마지막 여행팁으로 현지에 녹아들 것을 조언했다. 단체 패키지 상품을 피하고, 현지 로컬 여행사나 민박 등을 이용하는 방식을 추천했다. 이외에도 가볍게 짐을 싸고, 음식물을 남기지 않으며, 걷기 여행을 최대한 많이 하는 것 등도 지구를 생각하는 소소한 여행팁으로 꼽았다. 그는 “소규모 인원으로 여행할수록 여행지의 숨은 매력을 찾기 좋다”면서 “기업들의 그린워싱에 속지 않으려면 여행자가 더욱 용감해지고 부지런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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