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산미의 화려하고 세련된 막걸리··· 전통주 편견 깨는 ‘독학파’ 양조장 남양주 ‘봇뜰’

글·사진 김형규 기자
남양주의 작은 양조장 봇뜰에서 만드는 술은 화려한 산미로 애주가들의 입맛을 돋운다.

남양주의 작은 양조장 봇뜰에서 만드는 술은 화려한 산미로 애주가들의 입맛을 돋운다.

술에는 여러 가지 맛이 섞여 있다. 한 잔으로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떫은맛까지 두루 느낄 수 있다. 어느 한 가지 맛이 지나치게 튀면 좋은 술이라 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너무 달기만 한 술은 많이 마시기가 힘들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특히 신맛은 술을 조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적당한 산미는 술의 음용성도 높인다. 거푸 마실 수 있으니 주당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봇뜰은 커다란 보와 넓은 들이 있어 생긴 남양주 별내면의 마을 이름을 딴 것이다.

봇뜰은 커다란 보와 넓은 들이 있어 생긴 남양주 별내면의 마을 이름을 딴 것이다.

경기도 남양주의 작은 양조장 ‘봇뜰’에서는 산미가 도드라진 막걸리를 만든다. 감미료를 일절 넣지 않고 삼양주로 만드는 ‘봇뜰 막걸리’(10도)다. 잔을 들면 가벼운 열대과일 향이 코끝을 스친다. 입에 머금으면 아래턱이 뻑뻑한 느낌이 들 정도로 신맛이 꽉 찬다. 침샘이 폭발하면서 금세 입안이 흥건해진다.

가벼운 보디감에 부드럽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술을 마시고 나면 ‘막걸리가 이렇게 화려할 수가 있나’ 놀라게 된다. 시중에서 흔히 맛보는 막걸리와는 완전히 다른, 강렬하면서도 균형 잡힌 신맛은 실온에 오래 방치되거나 과발효되어 나는 시금한 맛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신맛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을 위해 만든 ‘봇뜰 탁주’(10도)도 있다. 산미를 줄였다고는 해도 청량감 있고 상큼한 맛의 특징은 여전히 뚜렷하다. 역시 감미료 없이 삼양주 기법으로 만든 ‘십칠주’는 진득한 질감에 과일 향도 더 진하고 주스 같은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보통 막걸리는 완성된 술에 정제수를 타 도수를 6~8도 정도로 맞추는데 십칠주는 물을 더하지 않은 원주 그대로다. 십칠주라는 이름은 발효·숙성 기간(17주)과 알코올 도수(17도)에서 딴 것이다.

양조장 한쪽 작은 연구실에서 완성된 술의 알코올 도수를 측정하는 권옥련 대표

양조장 한쪽 작은 연구실에서 완성된 술의 알코올 도수를 측정하는 권옥련 대표

개성 넘치는 술을 만든 주인공은 권옥련 봇뜰 대표(60)다. 권 대표는 “산미가 좋은 술은 마시고 나서 여운이 남고 자꾸 생각이 난다”면서 “강한 인상을 주는 술을 만들기 위해 발효 온도는 높이고 기간은 줄이는 방식으로 독특한 신맛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술 만드는 걸 보며 자랐다. 대구 안동 권씨 집안의 며느리로 대소사 때마다 술을 빚었던 어머니는 솜씨가 좋기로 주변에 유명했다. 권 대표의 딸이 백일과 돌을 맞았을 때도 어머니가 직접 담근 술로 손님을 대접했다.

봇뜰 양조장 숙성실. 봇뜰에서 만드는 대부분의 술은 최소 석 달 이상의 저온 숙성을 거쳐 만들어진다.

봇뜰 양조장 숙성실. 봇뜰에서 만드는 대부분의 술은 최소 석 달 이상의 저온 숙성을 거쳐 만들어진다.

권 대표는 본격적으로 술을 만들기 위해 1999년 서울에서 남양주로 이사했다. 교육기관에 다니는 대신 혼자 자료를 파고 실전에 대입하며 독학했다. 어머니 비법을 응용한 순화주(솔잎과 국화꽃을 넣은 술)로 2008년 술빚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한국가양주협회 회장도 지냈다. 권 대표에게 강의를 들은 제자들이 전통주 전문점을 내면서 “선생님이 만든 술을 팔고 싶다”고 한 게 계기가 돼 2010년 양조장을 열었다. 큰 보와 넓은 들이 있어 봇뜰마을이라 불렸던 동네 이름을 따 양조장 이름을 지었다.

쌀을 넣어 만든 누룩 백곡. 누룩으로만 만든 조곡과 달리 빛깔이 하얗다.

쌀을 넣어 만든 누룩 백곡. 누룩으로만 만든 조곡과 달리 빛깔이 하얗다.

권 대표는 술맛을 결정하는 핵심 재료인 누룩을 전부 직접 만들어 쓴다. 고문헌을 참고해 술마다 걸맞은 누룩을 각각 달리 넣는다. 봇뜰 막걸리와 십칠주는 밀누룩(조곡)을 쓴다. 멥쌀로 쌀범벅을 만들어 밑술과 첫 덧술을 하고 두 번째 덧술은 찹쌀 고두밥으로 한다. 한 달가량 저온 장기 발효를 거친 뒤 다시 석 달을 숙성해 완성한다.

봇뜰 탁주는 쌀과 밀가루를 반씩 섞은 누룩(백곡)을 쓴다. 쌀과 녹두로 만든 백수환동곡으로 빚은 백수환동주도 있다. 머리가 허연 노인이 마시면 아이가 된 것처럼 젊어진다는 뜻의 백수환동주는 직접 농사지은 찹쌀로 만드는 이양주인데, 은은한 산미와 구수한 녹두 향이 특징이다. 떠먹는 술 이화주와 십칠주를 증류한 홍주까지 봇뜰이 만드는 술은 총 6가지다.

750㎖ 용량의 봇뜰 막걸리와 탁주 가격은 각각 5000원, 6000원이다. 십칠주(500㎖)는 8000원, 백수환동주(375㎖)는 1만5000원을 받는다.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 주문(031-528-3150)으로 구입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술을 빚는 양조장이 2000곳이 넘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통주인 막걸리와 청주·소주, 그리고 와인에 맥주까지 우리땅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특색 있는 술을 만드는 양조장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전국 방방곡곡 흩어져 있는 매력적인 양조장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맛좋은 술은 물론 그 술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 술과 어울리는 지역 특산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맛난 술을 나누기 위한 제보와 조언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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