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묵은지와 옹골찬 바지락의 하모니…시원한 국물에 쓰린 속 ‘리셋’

김진영

태안 서부시장

태안에 갔다. 오래전부터 다니던 곳인지라 풍경이 정겹다. 2000년대 초 안면도 출장을 1년에 몇 차례 갔었다. 안면도에서 나는 색과 향이 좋은 유기농 태양초와 이맘때 수확하는 고구마가 목적이었다. 여름 끄트머리에 밤고구마가 난다. 가을 중반이면 전국 여기저기서 호박고구마가 난다. 안면도도 마찬가지로 맛있는 고구마가 난다. 송림과 물 좋은 해변에 밀려 덜 알려졌지만 말이다.

태안 사람들이 즐겨 먹는 바지락 김칫국의 시원한 국물에 여러 날 쌓인 숙취가 사라졌다.

태안 사람들이 즐겨 먹는 바지락 김칫국의 시원한 국물에 여러 날 쌓인 숙취가 사라졌다.

안면도 태양초 고춧가루를 사용해 김치를 담그는 곳 또한 태안에 있다. 생강, 마늘 등 태안의 농산물을 주로 사용한다. 안 되는 것은 외부에서 들여온다. 유기농 김치를 전문으로 생산하고 친환경 급식하는 곳에도 공급하고 있다. 태안의 김치는 처음 맛보면 심심하다. 시간을 두고 먹으면 진짜 맛있음을 알게 된다. 충청도 주인장의 성정과 김치 맛이 비슷하다.

삼치, 조기, 가자미, 놀래미… 국내산 생선구이 한 접시에 밥 한 공기가 뚝딱이다.

삼치, 조기, 가자미, 놀래미… 국내산 생선구이 한 접시에 밥 한 공기가 뚝딱이다.

몇 년 전부터 처가 김치 담글 때 절임 배추를 주문한다. 처음에는 작은 유기농 배추에 장모님이 황당해하셨다. 맛을 보시고는 두말 안 하셨다. 유기농 배추는 크기가 작다. 하지만 담고 있는 배추의 맛은 크기 이상이다. 그 맛을 알아채셨다. 때가 되면 필요한 수량만 알려주신다. 담채원 (070)4190-2594

출장 말고도 태안 구석구석 다녔다. 바다 루어 낚시에 빠져 태안 곳곳을 다녔다. 아래로는 영목항, 위로는 태안의 제일 끝 만대까지 말이다. 태안의 섬도 제법 다녔다. 특히 안흥항 앞 가의도가 아지트급이었다. 그 덕에 가의도 마늘을 알게 되었다. 가의도는 작은 섬이지만 태안 육쪽마늘의 씨 마늘을 공급하는 소중한 곳이다. 가의도 마늘은 일반 육쪽마늘에 비해 작지만 아린 맛은 적고 단맛이 좋다. 좋은 씨 마늘이 외부 오염 없이 섬에서 자라기에 육쪽마늘 품질이 좋을 수밖에 없다.

추석 지나 찾은 시장은 썰렁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다. 명절 대목장이 끝나고 활기를 찾으려면 보름은 지나야 했다. 오가는 이도 파는 이도 드문 장터는 서부시장 한편에 있다. 다들 작은 빨간 대야 몇 개를 앞에 두고 있다. 채소 몇 가지를 깔고 있는 이도 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강낭콩이나 팥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옷을 파는 곳이나 양말 파는 점포에서도 강낭콩이 보였다. 중국 양쯔강 이남에서 왔다고 해서 강남콩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양한 품종이 있기에 색깔이 각양각색이다. 밥에 넣으면 맛있다는 것은 같다. 긴 꼬투리 속 팥을 까는 이의 손놀림이 바쁘다. 벌써 팥이 나오기 시작하니 곧 대두가 나오겠다. 이내 서리 내리면 가을은 떠날 준비를 할 것이다.

태안의 김치는 처음 맛보면 심심…점차 충청도 성정 닮은 깊은 맛
로컬푸드 판매장에서 구입한 마른 ‘배 오징어’는 씹는 맛이 달라
반건조 생선에 새우젓으로 맛을 낸 젓국, 우럭·농어·대구 다 좋아
꽃게탕이 끓기도 전에 갈치젓과 망둥이 조림으로 밥 한 공기 비워
다양한 국내산 어종의 생선구이 하나만 파는 식당, 결코 실망 안 해

로컬푸드 매장에서 ‘풍원미’라는 이름의 고구마를 샀다. 고구마는 추워져야 단맛이 돈다.

로컬푸드 매장에서 ‘풍원미’라는 이름의 고구마를 샀다. 고구마는 추워져야 단맛이 돈다.

시장이 썰렁해도 태안은 괜찮다. 긴 해안선을 지닌 태안이기에 규모 있는 항구마다 싱싱한 해산물을 살 수 있는 어시장이 있다. 읍내에서 20분 거리에 어시장이 서너 개 있다. 서쪽으로 가면 안흥항이 나온다. 여름이면 오징어잡이 배로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다. 지금은 오징어 대신 꽃게 작업이 한창이었다. 배에서 내린 꽃게는 빠르게 분류 작업하고는 톱밥에 담겨 전국으로 나간다. 시월이지만 살은 아직 덜 여물었다. 육지는 가을로 들어서지만, 바다는 이제 가을 초입이다. 꽃게가 살이 차려면 보름은 더 있어야 할 듯싶었다. 안흥을 나와 위쪽으로 가면 모항이 있다. 아래로 내려가면 몽산포, 안면도 초입의 백사장항이 나온다. 두 곳 모두 어시장이 있다. 백사장 초입에는 태안군 로컬푸드 판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전국을 다니며 로컬푸드 매장을 봤다. 운영을 잘하는 김포와 완주는 농축은 괜찮아도 수산물은 부족하다. 태안 로컬푸드 매장은 수산물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전국에서 봤던 매장 중 아직은 여기가 최고다. 태안 오일장에서 열리지 않았던 내 지갑이 여기서는 열렸다. 딸아이 간식용 고구마, 태안 자염, 반건 삼식이와 마른 오징어를 샀다. 마른 오징어는 냉동, 선어, 배 오징어 세 가지가 있다. 셋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배 오징어다. 배에서 잡자마자 말렸기에 이름이 그렇다. 씹는 맛이 다르다. 고구마는 포장 중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 골랐다. ‘풍원미’라는 이름의 호박고구마다. 작은 포장을 고른 이유는 지금 것은 맛이 없기 때문이다. 호박고구마는 저장할수록 당도가 올라간다. 처음에는 밤고구마 비슷한 식감이다. 특유의 단맛 가득한 말랑함을 기대했다가는 실망이 크다. 역시나 집에 와서 구운 고구마는 밤고구마 맛이었다. 가을이 끝나고 파카 꺼내 입을 때까지 고구마는 사지 않을 생각이다. 추위가 단단해질수록 고구마는 단맛이 든다.

명절 대목장이 끝나고 썰렁한 태안 서부시장에서는 각양각색의 콩과 팥이 곳곳에서 손님을 맞았다.

명절 대목장이 끝나고 썰렁한 태안 서부시장에서는 각양각색의 콩과 팥이 곳곳에서 손님을 맞았다.

이른 시각 장터 구경하기에 앞서 아침 해결이 먼저였다. 태안 사람들이 즐겨찾는 음식 중에 바지락 김칫국이라는 메뉴가 있다. 태안에서 나는 바지락을 해감하고는 작년 가을에 담근 김장김치와 함께 끓인 음식이다. 김치와 바지락이 내는 하모니가 상상 이상이다. 바지락이 작다. 깊은 바다에서 나는 것이라면 알이 클 것이지만 펄에서 나는 것은 계절을 탄다. 가을, 겨울 지나 봄 즈음이어야 펄에서 알 굵은 바지락이 난다. 펄에서 나는 것이라 작아도 옹골찬 맛이 있다. 그런 바지락으로 국물 내니 일단 끝내준다. 첫술에 바로 반한다. 밥을 말고 나면 다른 반찬에 손이 잘 안 간다. 갈 일이 없다. 국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아침 9시에 들어갔다. 7시30분부터 문 연 식당에 밥이 떨어져 새로 지은 밥을 뜸 들이고 있기에 잠시 기다렸다. 기다리는 사이 다 먹은 이들이 떠나고 자리에 다른 이들로 금세 채워졌다. 시원한 국물에 며칠 전부터 계속 쌓인 숙취가 사라졌다. 리셋이다. 태안 동부시장 근처다. 한 그릇 하고 나서 동부시장과 길 건너 서부시장은 산책 삼아 다니기 딱 좋다. 광장식당 (041)675-5435

태안에 가면 게국지, 우럭젓국 판매하는 곳이 많다. 처음에는 이러지 않았다. 게국지나 우럭젓국 파는 곳은 물어물어 가야 할 정도였다.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 두 메뉴가 처음 소개된 후로 여러 매체에서 다뤘다. 그 이후로 꼭 먹어야 할 메뉴가 되었다. 우럭젓국은 필자도 좋아한다. 우럭젓국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젓국’을 좋아한다. 반건조 생선에 새우젓으로 맛내기를 한 음식이 젓국이다. 꼭 우럭만으로 끓이는 음식이 아니다. 농어 말린 것이나, 쥐노래미(놀래미) 말린 것을 넣어도 맛있다. 겨울에 대구 말린 것으로 끓여도 좋다. 게국지는 먹어 본 적이 없다. 일단은 가격이 6만~10만원. 김치와 게를 넣고 끓인 찌개를 그 가격에 먹을 생각이 없다. 그 가격이라면 오롯이 꽃게탕을 먹는 것이 낫다. 게국지만큼이나 많은 것이 게장. 양념이나 간장이나 둘 다 별로다. 갑각류나 조개류는 날 것보다는 열을 받았을 때 내는 향에 더 끌린다. 익히지 않은 날 것에는 그런 향이 없다. 짭조름한 양념 맛만 있다. 가격도 게국지만큼이나 ‘허걱’ 소리가 난다. 꽃게 메뉴 중에서 탕이나 찜을 좋아한다. 안면도 농협 사람들하고 오래전에 밥을 먹으러 갔다가 주요리보다 반찬에 더 매료된 곳이다. 메인요리가 끓기 전에 시원한 총각김치와 같이 나온 갈치젓에 밥 한 공기를 비웠다. 구운 김 위에 밥, 나물 그리고 갈치젓을 올리면 끝장이다. 마무리로 총각김치. 그런 기억이 있어 오랜만에 찾았다. 갈치젓은 여전했다. 총각김치는 없었지만 말린 망둥이 조림이 대신했다. 꽃게탕은 시원했다. 꽃게탕이 주연이지만 잘 되는 드라마처럼 조연들이 주연급이었다. 여기서는 밥 추가는 필수다. 솔밭가든 (041)673-2034

한 가지 음식만 하는 곳치고 맛없는 곳을 본 적이 없다. 맛없다면 진작 망했을 것이기에 내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태안 동부시장 근처에 한 가지, 생선구이만 파는 식당이 있다. 생선구이라면 원양산도 있을 법한데 국내산으로만 낸다. 계절에 따라 생선 구성은 바뀐다고 한다. 반찬이 차려지고 구이가 나왔다. 생선이 무엇인가 물어보려고 하다가 말았다. 바쁜 사람 붙자고 묻기보다는 계산하면서 궁금한 것만 물어봐도 될 듯싶었다. 나온 생선을 봤다. 삼치, 조기, 가자미에 약간 긴 녀석이 있다. 대가리를 살펴보니 놀래미 같았다. 몇 가지 반찬이 나왔어도 손이 가지 않았다. 다양한 생선만 먹어도 밥 한 공기 뚝딱이다. 같이 나온 된장국에 꽃게가 들어 있어 단맛이 가득했다. 두 가지만 먹어도 충분할 정도였다. 예약하고 가면 기다리지 않는다. 미식가 (041)674-1677

3년 3만㎞, 예순 곳이 넘는 장터를 다녔습니다. 그 기록을 담은 책, <오는 날이 장날입니다>가 나왔습니다. 두어 군데 빼고는 맛이 가장 빛날 때 다녔습니다. 여행 다닐 때 참고하기 딱 좋습니다.



[지극히 味적인 시장](65)묵은지와 옹골찬 바지락의 하모니…시원한 국물에 쓰린 속 ‘리셋’

김진영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6년차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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