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육고기·바다생선 없어도 허리띠 풀게 만드는 ‘내륙의 맛’

김진영|식품 MD

충주 오일장

충주를 직접 지나는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 안성 혹은 음성 나들목에서 나와 국도로 충주호를 갔었다. 그 길은 설렘이 가득했었다. 일 때문에? 아니다. 여름이면 밤낚시 하러 갔었다. 충주 하면 월척 붕어부터 떠오른다. 충주호 좌대에 올라 있다 보면 별과 나만 있던 시간이 좋았다. 그 덕에 충주는 나에게는 물의 도시다. 충주댐에서 잠시 쉼을 가진 남한강과 속리산에서 시작한 달천이 충주에서 만난다. 춘천이 북한강의 도시라면 충주는 남한강의 도시다.

채소는 수확 직후가 가장 맛있다. 수확한 채소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는 유기농 채식 뷔페식당에서 밥 두 공기가 금세 자취를 감췄다.

채소는 수확 직후가 가장 맛있다. 수확한 채소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는 유기농 채식 뷔페식당에서 밥 두 공기가 금세 자취를 감췄다.

하늘과 들이 가을가을 하는 10월5일(충주는 5, 0이 낀 날에 장이 선다) 충주 오일장 구경을 떠났다.

충주 오일장은 시내 무학시장과 자유시장에서 열리기에 규모가 제법 크다. 무학시장 근처에 차를 대고 구경에 나섰다. 초입은 약간 썰렁했다. 썰렁함에 비해 상품은 제법 있었다. 어느 정도 사람이 평소에도 오간다는 의미다. 조금 걸어가니 무학시장과 자유시장이 만나는 지점이 나왔다.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좌판이 어디까지 있나 갔더니만 큰 시장 한 바퀴를 다 돈다.

시내 무학·자유시장의 제법 큰 장
들깨농사 많이 짓는 내륙 답게
생깻잎과 밑반찬 깻잎지가 인기
좌판에는 아삭한 밤도 넘쳐난다

신니면의 유기농 채식 뷔페 식당
갓 수확한 채소가 바로 밥상 위로
향·식감에 ‘밥도둑’이 따로 없다

바다 생선과 다른 민물고기 참매자
설탕과는 차원이 다른 은은한 단맛
조림·매운탕엔 딴 반찬이 필요없다

시장을 돌면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가끔 있다. 깻잎지 파는 곳이 인기다. 그냥 깻잎 파는 곳도 사람이 많다. 궁금해서 충주 출신 지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내륙 지방인 충주는 참깨보다는 들깨 농사가 많았다고 한다. 어느 조건이든 잘 자라는 들깨는 여름에는 쌈채로, 가을에는 절임을 만들어 늘 먹었다고 한다. 참깨는 우리나라 기후조건하고 맞지 않는다. 참깨는 고온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 참깨 농사에 대농이 없는 이유다. 다른 곳에서는 참기름 쓰는 요리에 충주는 지금도 들기름을 사용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판매하려고 하는 들깻잎이 누렇다. 저걸 먹나 싶어 물어보니 소금에 절이는 것은 저래야 한다는 것이다. 퍼런 것으로 하면 맛이 없다고 한다. 누런 깻잎을 소금에 하루 절인다. 절인 것을 양념해서 먹는 방식이다. 지금처럼 물류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김치와 더불어 소중한 밑반찬이었을 것이다. 시장을 돌면서 맛을 봐야지 했다가 깜빡하고 사지 못했다. 지금도 그 맛이 궁금하다.

잔가시가 없고 은은한 단맛이 나는 참매자는 감자와 시래기를 깔고 조려 먹는다.

잔가시가 없고 은은한 단맛이 나는 참매자는 감자와 시래기를 깔고 조려 먹는다.

시장에 깻잎지 다음으로 많은 것이 밤이다. 가을은 밤을 수확하는 계절이다. 먹는 것은 수확 후 보름이 지나야 한다. 무슨 이야기이고 하니 밤을 수확했을 때는 전분과 수분이 많다. 전분이라는 것은 익히고 씹었을 때 비로소 단맛이 난다. 하지만 보름을 숙성한 밤은 단맛이 가득 차 있다. 숙성하는 동안 전분이 단맛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분은 증발해 단맛이 더 올라간다. 이는 고구마도 마찬가지다. 막 수확했을 때가 가장 맛없다. 작년에 충주 주덕읍에 있는 밤 농원에 간 적이 있다. 밤도 이름이 있다. 농원에서 재배하는 밤은 단택, 이평, 석추 밤이다. 석추는 날것으로 먹기 좋다. 아삭한 맛이 일품이다. 단택은 굽기 좋은 품종이다. 이평은 겉껍질을 벗겨내면 나는 속껍질인 보니가 쓰지 않다. 타닌 성분이 적어 보니밤 만들기에 딱 맞다. 보니밤은 삶은 밤의 겉껍질만 까고는 보니 상태의 밤을 설탕물에 재서 먹는 음식이다. 보니에서 씁쓸한 맛이 나 여러 번 삶은 물을 버려야 하는 수고를 해야 만들 수 있다. 밤의 품종을 이평으로 하면 바로 만들 수 있다. 작년 9월에 농장에 갔다가 10월에 밤을 받았다. 숙성의 시간을 거친 밤은 기다림의 크기만큼이나 달았다. 지구네 농장 010-8820-7059

오일장을 다니다 보면 순대, 오뎅, 치킨, 족발, 호떡 등이 없는 시장은 없었다. 아무리 작아도 있었다. 충주는 하나 더 추가다. 시장에 만두 골목이 있다. 꽤 많은 집이 만두만 혹은 만두와 순대를 같이 팔고 있었다. 시장을 몇 바퀴 돌고 나니 출출했다. 한 집을 골라 들어갔다. 김치 반, 고기 반 찐만두를 주문했다. 예약한 사람, 지나가다 사가는 사람 등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다. 놀고 있는 집이 없었다. 김치만두를 맛봤다. 김치 맛은 없고 절인 채소에 매운맛만 있었다. 김치만두는 김치가 맛있어야 하는데 점점 매운맛만 도드라진다. 적당히 익히면 좋은데 폭 익은 김치로 하면 속이 쉬었다는 클레임 때문에 절인 채소로 속을 한다. 고기만두는 두부의 고소한 맛이 살아 있었다. 먹다 보니 김치만두는 남았다.

들깨 농사가 많은 충주에 흔히 보는 깻잎 절임 반찬, 보니밤 만들기에 제격인 이평밤, ‘만두골목’이 따로 있을 정도로 만두 사랑이 각별한 충주 시장(왼쪽 사진부터).

들깨 농사가 많은 충주에 흔히 보는 깻잎 절임 반찬, 보니밤 만들기에 제격인 이평밤, ‘만두골목’이 따로 있을 정도로 만두 사랑이 각별한 충주 시장(왼쪽 사진부터).

충주 시내를 빠져나와 신니면으로 갔다. 일단 여기를 가려면 한 끼 정도 굶으면 좋다. 아니면 혁대 풀 생각을 하고 가야 한다. ‘열 명의 농부’라는 유기농 채식 뷔페식당이다. 채식 뷔페 가면서 무슨 호들갑이냐 할 수 있다. 지면을 통해서 몇 번 설명했듯이 채소는 수확 직후가 가장 맛있다. 텃밭 채소가 맛있는 이유다. 수확해도 채소는 호흡을 지속해서 한다. 호흡에 필요한 에너지는 포도당이나 과당으로 한다. 호흡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단맛이 빠진다. 열 명의 농부는 그런 점에 있어서 국내 최단 거리다. 흔히들 ‘farm to table’이란 말을 많이 한다.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과정과 거리를 최단·최소화하는 데에 공을 들인다. 열 명의 농부는 농장 입구에 식당이 있다. 수확한 채소가 식탁에 오르는 시간이 불과 몇 분이다. 여러 가지 반찬이 있지만 가장 맛있는 것이 쌈이다. 유기농 채소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은 일반 관행 채소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영양상으로 비슷하다. 음식은 영양으로만 가치를 따질 수가 없다. 향과 식감의 영양 외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 겉보기만 좋은, 스마트를 앞에 단 수경 채소는 향이 여리다. 채소를 씹는다는 느낌이 없다. 향과 맛을 더하는 소스에 더 의존한다. 유기농 채소는 겉보기는 별로다. 입에 넣고 씹었을 때 비로소 가치가 빛나기 시작한다. 일단 향이 다르다. 이단은 단맛 또한 다르다는 것이다. 향이 우선 좋다. 각각 고유의 향이 가득하다. 향이 지나고 난 다음 느끼는 단맛은 덤이다. 고른 채소 중에 루콜라가 있었다. 루콜라에 이런 향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좋았다. 각각의 다른 향을 지닌 채소를 먹다 보니 다른 것은 거의 손을 안 댔다. 이번에 이거, 다음에는 저거로 먹다 보니 밥 두 공기가 사라졌다. 뷔페이기에 고기 메뉴도 있지만, 콩고기만 있다. 진짜 고기가 없다고 서운할 필요가 없다. 맛있는 채소를 맛보면 고기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 여름과 겨울은 다른 곳에서도 일부 품목이 들어온다. 봄과 가을은 오롯이 농장에서 재배한 것이 식탁 위에 오른다. 저녁 장사를 하지 않는다. 열 명의 농부 (043)848-6262

다른 지방에서는 흔히 잡어로 퉁쳐서 부르는 민물 생선이 있다. 마지, 마디, 메자, 참매자 등 다양한 사투리로 부른다. 참마자가 원래 이름으로 잉엇과의 민물고기다. 충주 지역에서는 참매자로 부른다. 민물고기는 달다. 바다 생선과는 다른 맛과 향이 있다. 혹자들은 향을 흙내 난다고 해서 멀리하기도 한다. 흙내가 나는 경우는 오래 수족관에 보관하거나 아니면 물이 좋지 않은 곳에서 잡은 것은 냄새가 난다. 지금은 오·폐수가 직접 강으로 흘러들지 않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하천 오염이 심각한 시절의 인식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참매자 조림은 시간이 좀 걸린다. 시장 구경을 하면서 미리 전화했다. 그렇지 않으면 30분 정도 ‘멍 때릴’ 각오를 해야 한다. 시장을 나와 목계나루 근처로 갔다. 이름이 실비집, 차려 낸 반찬을 보니 딱 실비집이었다. 가장 적당한 반찬 수였다. 조림이나 매운탕 등은 그 요리가 찬이다. 숫자에만 몰입한 곳을 보면 저것을 뭐 하러 내나 싶은 것들이 많다. 실비집은 네 개의 찬이 나온다. 조림하고 먹다 보면 그마저도 많다고 느낀다. 조림은 실한 참매자 몇 마리가 들어 있다. 참매자 밑에는 국물을 품고 있는 감자와 시래기가 있다. 붕어조림은 잔가시가 있어 먹기 불편하다. 잔가시가 없는 매자는 편하다. 살을 발라 먹으면 단맛이 은은하게 퍼진다. 설탕의 단맛이 아니다. 재료가 품고 있는 단맛이다. 매자 살을 발라 먹다가 감자와 시래기를 숟가락으로 떠서 밥과 비비면 끝장이다. 여기에 달곰한 살을 올려도 좋다. 실비집 (043)852-0159



[지극히 味적인 시장](66)육고기·바다생선 없어도 허리띠 풀게 만드는 ‘내륙의 맛’

김진영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6년차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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