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에 젖은 날…녹진하면서도 담백한 ‘이 맛’에 녹네, 녹아!

김진영 식품 MD

(70) 거제도 고현시장

비가 오는 탓에 오가는 이가 적지만 고현시장은 딱 봐도 잘되는 시장이었다. 겨울의 시장에서는 점박이 게, 베도라치, 철 지난 민어, 병어, 열기에 중하까지 다양한 생선이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사진 크게보기

비가 오는 탓에 오가는 이가 적지만 고현시장은 딱 봐도 잘되는 시장이었다. 겨울의 시장에서는 점박이 게, 베도라치, 철 지난 민어, 병어, 열기에 중하까지 다양한 생선이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거제도는 20년 동안 1년에 두어 차례 출장 다니던 곳. 한때는 여기서 도라지 함량을 높인 도라지배즙을 생산하기 위해 뻔질나게 다녔다. 오랜만에 서울서 출발해 덕유산을 넘을 때 구름 낀 하늘이 화창해졌다. 거제 학동리 몽돌해수욕장에서 어렴풋이 대마도가 보일 정도로 날이 좋았다. 오랜만에 온 나를 반기는 듯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겨울 거제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 대구와 파인애플 때문이었다. 거제 외포는 대구의 성지. 진해 용원항과 더불어 산란기에 대구를 잡을 수 있는 포구다. 잡은 대구는 알과 정자를 채취해 인공 산란을 한다. 부화한 치어를 키워서 다시 바다로 돌려보낸다. 그 사업 덕에 대구가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다만 여전히 즐겨 먹는 노가리 때문에 애써 한 일들이 수포가 된다. 노가리는 명태의 치어, 노가리만 잡히는 것이 아니라 대구 새끼도 섞여서 잡힌다고 한다. 세상엔 먹을 것이 많다. 굳이 맥주 안주로 명태나 대구 치어를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예전처럼 대구나 명태가 차고 넘친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 그렇지 않은 지금은 말리고 싶다. 외포에 도착해 포구 구경에 나섰다. 외포는 작다. 잠시 산책하기 좋은 정도의 크기다. 대구 경매는 보통 아침 9시에 열린다. 통영의 상인까지 몰려 제법 북적거린다. 아직은 대구가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외포 가면서 대구보다는 아귀를 살 생각이었다. 대구 잡을 때 아귀도 딸려 들어온다. 대구가 주인공이기에 아귀는 찬밥. 상인에게는 찬밥 신세지만 사는 나에게는 따뜻한 밥이다. 가격을 알아보니 실한 아귀가 한 마리에 2만원. 수육 할 생각으로 두 마리를 샀다. 신선한 아귀는 양념보다는 수육이 제격이다. 쫄깃한 내장과 녹진한 간의 맛은 ‘일품 중의 일품’이다. 효진수산 (055)636-6318

폭우 탓에 오일장은 안 섰지만
아쉬움 품고 찾은 ‘주차장 시장’
쏨뱅이 등 어물전 생선이 반겨

구우면 천하일미, 젓국으로도 좋은 쏨뱅이가 철 지난 민어 옆에 자리 잡았다.

구우면 천하일미, 젓국으로도 좋은 쏨뱅이가 철 지난 민어 옆에 자리 잡았다.

거제시에는 몇 개의 시장이 있다. 그중에서 오일장이 제대로 서는 곳은 거제면 오일장(4, 9가 낀 날)으로 점심이면 시장이 파한다고 한다. 날이 맞지 않아 고현시장 오일장(5, 0이 낀 날)을 찾았다. 고현시장은 상설시장과 주차장 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차장을 지으면서 1층 실내를 상설시장 주변에서 장사하던 노점상에게 내주었다고 한다. 상인들은 비바람을 피해서 좋고 행인들은 길이 넓어져서 좋다고 한다. 고현시장이 깔끔한 모양새라면 주차장 시장은 날것의 냄새가 난다. 고현시장은 깔끔해서 좋았지만 가는 길이 고난이었다. 어제처럼 날이 좋았으면 흔적만 남은 오일장이라도 섰겠지만, 장마 같은 폭우에 장은 서지 않았다. ‘날이 어제만큼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품은 채 시장을 다녔다. 비가 오는 탓에 오가는 이가 적지만 고현시장은 딱 봐도 잘되는 시장이었다. 상점마다 상품이 쌓여 있는 모양새가 그렇다고 대신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차장 시장도 마찬가지, 구경하러 다니다가 어물전 앞에 멈췄다. 점박이게, 베도라치, 철 지난 민어, 병어, 열기에 중하까지 다양한 생선이 지갑을 열라고 유혹했다. 여름 시장을 다니면 살 것이 없어 빈손인 경우가 대부분. 겨울 시장은 여름과 달리 살 것이 너무 많다. 새우와 쏨뱅이가 좋아 보이는 어물전 앞에서 멈추고는 쏨뱅이를 샀다. 구워 먹는 생선으로는 갈치, 고등어, 삼치 등등 몇 가지를 꼽는다. 사실 바위틈 사이에서 사는 녀석들인 볼락류의 참맛을 아는 이는 드물다. 굵은 소금 쳐서 구우면 천하일미, 살짝 말려서 젓국 끓이면 해장으로 그만인 녀석들이다. 실한 쏨뱅이 9마리에 2만원. 안 살 수가 없었다.

거제면의 파인애플 농장. 국내산 파인애플은 익혀서 따기 때문에 향이 좋다.

거제면의 파인애플 농장. 국내산 파인애플은 익혀서 따기 때문에 향이 좋다.

시장을 나와 거제면에 있는 파인애플 농장에 갔다. 몇 년 전 귀농한 이가 파인애플을 키우고 있다. 초록마을에서 같이 근무했던 이들이다. 파인애플은 모종을 심고 1년6개월을 지나야 수확한다. 외국에서는 한 번 심으면 서너 번 딴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한 번 따면 끝이다. 애써 키운 파인애플은 지인과 아는 이들을 통해서 판매하고 대부분은 거제에 있는 건강식품 업체에 들어간다고 한다. 국내산 원료만 사용하는 곳에서 아이용 식품 만들 때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과는 신맛과 단맛 중에서 신맛이 좀 드세다. 대신 익혀서 따기 때문에 향은 좋다. 파인파인농장 010-4300-1119

시장에서 파인애플 농장으로 가기 전, 간단히 요기했다. 맛집 골목이라고 따로 식당이 모여 있기도 하지만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곳도 시장 곳곳에 있었다. 그중 한 곳에 들어갔다. 요새 김밥 중에는 속 재료를 많이 넣거나 하나만 넣은 것들이 있다. 나름 김밥이지만 김밥이라는 게 재료와 밥의 궁합이 중요함을 잠시 잊은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는 속 재료 양과 밥의 양으로 적당히 해 김밥을 만다. 번잡하게 종류도 많지 않다. 김밥 한 줄 1200원. 사는 이나 김밥 마는 이나 고민이 없다. 그냥 말고, 그냥 사 간다. 김밥과 어묵, 밀떡으로 만든 떡볶이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먹는 김밥다운 김밥. 속 재료와 밥이 어우러지는 맛은 적당한 재료 덕. 과한 것은 씹어 넘기기 급급하지만 이런 것은 편하게 씹으면서 맛을 충분히 볼 수 있다. 김밥을 먹는 사이 손님이 오갔다. 대부분 포장 손님들로 열댓 개가 기본이었다. 솜씨노랑김밥 (055)637-3766

외포 바다서 잡은 산란기 대구
맑은 탕의 시원한 국물 ‘일품’
귀농인이 가꾼 파인애플 농장
‘생과’ 향 좋아 입소문 타고 인기

거제 외포항의 대표 생선인 대구로 끓인 맑은탕.

거제 외포항의 대표 생선인 대구로 끓인 맑은탕.

여행 예능 프로그램인 <1박 2일>에 나간 이후로 거제의 해물 파는 식당마다 신메뉴가 등장했었다. 해물뚝배기 안 파는 곳이 드물 정도였다. 방송에 나오기 전부터 출장 다녔기에 메뉴 변화를 눈으로 봤다. 뚝배기 안에 여러 해물을 넣고 끓인 것. 별거 없지만, 방송 이후 찾는 이가 많으니 여기저기서 판매하고 있다. 다만 해물에 따라, 가열 시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살짝 익혀야 하는 것이 있고 더 익혀야 하는 것이 있다. 이를 무시하고 요리하는 것이 해물뚝배기가 아닌가 싶다. 국물은 시원하겠다 생각은 들었지만 먹어 본 적은 없다. 12월, 거제에 간다면 대구탕이다. 해물뚝배기나 물메기가 유혹해도 겨울 거제는 대구탕이다. 쫄깃한 대구 내장과 녹진함의 끝판왕인 정소(‘이리’라 부르기도 한다) 먹는 맛이 일품이다. 두 가지가 있으면 살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맑은 탕의 핵심은 신선도. 아무리 냉장시설이 잘되어 있다고 해도 대구 산지에서 먹는 맑은 탕만큼은 맛을 낼 수 있는 곳이 없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대구전이나 말린 대구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대구회와 전이 포함된 코스 요리도 있지만, 대구회는 그다지 맛이 있지 않다. 대구전만 추가되면 좋겠지만 외포 포구에는 그럴 만한 식당이 없었다. 신선한 대구를 끓이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밥이 탕의 수준을 못 쫓아간다는 점. 탕을 끓이고 맛난 반찬을 내는 이유는 밥을 맛나게 먹자고 하는 일이지만 참으로 맛이 없었다. 탕이나 찬은 기대 이상이었지만 말이다. 양지바위횟집 (055)635-4327

3개의 반점이 박힌 점박이 게. 거제에서 게장으로 즐겨 먹는다.

3개의 반점이 박힌 점박이 게. 거제에서 게장으로 즐겨 먹는다.

저녁 술안주로는 ‘코끼리조개’
소금 톡 찍어 입에 쏙 넣으면
깔끔하게 씹히는 맛이 매력적

깊은 수심에서 잠수부가 잡아 올린 코끼리조개.

깊은 수심에서 잠수부가 잡아 올린 코끼리조개.

저녁에 소주 한잔 안주로 고민 없이 이 녀석을 선택했다. 5~6년 전 거제 왔다가 홀딱 반한 녀석이다. 모양이 코끼리 코 닮았다고 해서 이름도 ‘코끼리조개’다. 처음에 발견했을 때는 말조개라고 했지만, 나중에 저리 바꿨다고 한다. 깊은 수심에 있기에 잠수부만 잡는다. 잠수부가 가지고 들어간 호스로 바닥에 물을 내뿜고는 펄에 숨어있는 녀석을 밖으로 노출시켜 잡는다고 한다. 왕우럭조개로 불리기도 하지만 같이 놓고 보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일단 물과 먹이가 오가는 수관이 코끼리조개는 밝지만 왕우럭조개는 시꺼멓다. 게다가 코끼리조개는 항상 수관을 노출하고 다닌다. 둘의 차이는 씹는 맛에서 난다. 코끼리조개는 깔끔하게 씹히지만 왕우럭조개는 끝이 살짝 걸린다. 보통은 참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본연의 맛을 음미하고자 한다면 소금에 찍어 먹기를 권한다. 그래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참기름에 찍는 순간 참기름 맛밖에 안 난다. 진이회식당 (055)634-6114



[지극히 味적인 시장]겨울비에 젖은 날…녹진하면서도 담백한 ‘이 맛’에 녹네, 녹아!

김진영 식품 MD
제철 식재료를 찾아 매주 길 떠나다보니 달린 거리가 60만㎞. 역마살 ‘만렙’의 26년차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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