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얏, 뭐얏! 한 알에 정신이 번쩍 드네

김진영 MD

(86) 강원 횡성 오일장

1과 6(1·6일장)이 낀 날에 열리는 횡성 오일장은 횡성시장을 중심으로 ‘ㄷ’ 자 모양으로 장이 들어선다. 한여름의 강원도 장터에서는 여기저기서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삶는 모습이 한창이다.

1과 6(1·6일장)이 낀 날에 열리는 횡성 오일장은 횡성시장을 중심으로 ‘ㄷ’ 자 모양으로 장이 들어선다. 한여름의 강원도 장터에서는 여기저기서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삶는 모습이 한창이다.

지난번은 원주 오일장이었다. 원주 새벽시장의 감흥을 잊지 못해, 사지 못한 토종 오이도 살 겸 해서 이웃한 횡성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횡성장은 1과 6(1·6일장)이 낀 날에 열린다. 횡성은 자주 갔었다. 지금이야 대기업에서도 유기농 우유가 나오지만, 2000년 중반은 일부 지역의 목장형 유가공 공장에서 유기농 우유를 생산했다. 울산의 신우목장, 평창의 설목장, 그리고 횡성의 범산목장을 자주 다녔다. 지금이야 범산목장이 새말 나들목 근처지만 예전에는 횡성과 양평의 경계에 있었다.

오전 9시경, 횡성 읍내에 도착했다. 아침나절임에도 벌써 해는 뜨거운 기운을 발산한다. 카메라를 메고 우선 한 바퀴 돌았다. 횡성 오일장은 횡성시장을 중심으로 ‘ㄷ’ 자 모양으로 장이 섰다. 차가 다니는 서문을 제외하고 북문, 동문, 남문에 장사꾼들이 제법 있다. 두 바퀴 돌 때 즈음 장터가 보이지 않는 선으로 분리된 듯 보였다. 선수와 비선수로 말이다. 시장의 동쪽에 횡성등기소가 있다. 맞은편은 농협이다. 등기소 앞과 농협 앞쪽을 따라서는 비선수, 즉 할매들이 판을 벌이고 있다. 등기소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오일장마다 돌아다니는 선수들 구역이다. 세 번째부터는 선수들 구역은 돌지 않고 할매들 있는 장터만 보고 다녔다. 한여름의 강원도는 감자와 옥수수다. 다른 지역 장터도 그렇지만 강원도 장터만큼은 아니다. 이미 6월에 감자나 옥수수 수확이 끝났기 때문이다. 횡성장 여기저기서 옥수수 껍질을 벗기고 삶는 모습이 한창이다. 옥수수는 수확할 때가 가장 맛있다. 이때는 소금만 넣고 삶아도 다디달다. 시간이 지나면서 액상의 당분이 결합해 단단한 전분이 된다. 이때는 인공적인 맛, 즉 사카린의 씁쓸한 단맛에 기대야 한다.

단맛만 가득한 개량 자두(사진 왼쪽)와 새콤함이 먼저 달려드는 자두 오얏.

단맛만 가득한 개량 자두(사진 왼쪽)와 새콤함이 먼저 달려드는 자두 오얏.

토종 자두 오얏, 강원도 말로 ‘고얏’…강렬한 신맛 짜릿함 선사
사카린 없이도 달달한 제철 옥수수에 바로 부친 감자전도 한 입
‘안흥찐빵’ 유명세에 가린 우리밀 빵·미숫가루도 지나치면 서운

강원도의 여름은 감자와 옥수수라 했다. 여름 강원도 오일장에서는 하나를 더 기대하고 간다. ‘오얏’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다. 오얏은 잘 모를 것이다. 여기서는 ‘고얏’이라 한다. 일본에서 개량형 자두가 들어오기 전 이 땅에 있던 자두가 오얏, 강원 사투리로는 고얏이다. 4년 동안의 오일장 취재에서 여름마다 만났다. 처음은 영월, 이듬해는 진부, 작년은 정선에서 만났다. 오얏의 매력은 새콤함이 먼저 달려든다는 것이다. 몸서리치는 신맛이 지나면 단맛이 달래주듯 나타난다. 단맛만 가득한 밍밍한 개량 자두와는 맛의 결이 다르다. 두어 바퀴 돌고 서문 쪽에서 다시 돌아 동문으로 가는 초입에서 고얏을 1년 만에 만났다. 더위에 말라가던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샀다. 한 알 베어 무니 상상했던 그 맛. 짜릿한 신맛, 도망 나갔던 정신이 제자리를 찾는다. 지나오면서 못 봤던 고얏이 보이기 시작한다. 강원도 장터에서 만나도 어쩌다 한 군데에서만 팔던 고얏이 여기는 개량한 자두만큼 많았다.

주문과 동시에 깎아서 갈아내 번철에서 바로 부쳐 김 모락모락 나는 시장의 감자전.

주문과 동시에 깎아서 갈아내 번철에서 바로 부쳐 김 모락모락 나는 시장의 감자전.

횡성 전통시장은 여느 강원도 시장처럼 메밀전병과 배춧잎을 올린 메밀전 파는 곳이 많았다. 전병 부치는 것을 보니 이웃한 원주와 비슷하게 당면이 들어간다. 골목골목 다니다가 한 집에서 멈췄다. 메밀전병 파는 곳에 떡하니 있는 감자전 간판 앞이었다. 가만히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할매 한 분이 감자 껍질을 까고 있었다. 손님인 듯한 할배는 감자전 몇 장을 드시고 있었다. 활짝 열린 가게로 들어갔다. 감자전 하나를 주문하고 앉았다. 번철에서 바로 부친, 김 모락모락 나는 감자전이 나왔다. 보통은 강판에 간 감자만으로 부친다. 이 집은 매운 고추와 부추를 넣어 부쳤다. 감자의 쫄깃한 맛에 부추의 향긋함과 고추가 내주는 매운맛의 조화가 너무도 좋았다. 메밀전병 가득한 시장에서 감자전 딱 하나만 한다. 전병이냐 감자전이냐를 고르라 한다면 횡성장에서는 감자전이다. 전은 바로 부쳐야 맛있다. 횡성장뿐만 아니라 모든 시장에서 메밀전병이나 전은 이미 만들어 놓는다. 주문하면 데워서 내준다.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전이 다시 데운 전이다. 어떤 재료로 해도 마찬가지다. 동환이네 감자부침 010-9431-1358

횡성은 안흥찐빵이 유명하다. 읍내에서 안흥까지가 대략 20㎞. 굳이 찐빵만 사러 안흥까지 갈 필요가 없다. 시장 안에도 맛있는 찐빵 가게가 있다. 시장을 몇 바퀴 돌고 찐빵을 사러 갔지만 사지 못했다. 아직 발효가 덜 끝나 만들어 놓은 찐빵이 없었다. 오후에 오면 있다 해서 다른 곳 갔다가 6시경 다시 들렀지만, 시장은 끝났고 찐빵집 또한 문을 닫았다. 물건 살 때 다음에 사야지 하면 그 물건 다시 사기는 힘들다(다음날 새벽시장에서도 토종 오이를 사지 못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안흥이지만 찐빵 말고 다른 빵도 있다. 안흥에서 영월, 둔내 가는 길에 몇 군데의 찐빵 가게가 있다. 가게를 지나쳐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 우리밀로 빵을 만드는 곳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설탕이 주는 달곰한 빵보다는 씹을 때마다 단맛이 우러나는 빵을 만드는 곳이다. 구석진 시골까지 누가 와서 빵을 사갈까 걱정이 들지만, 기우다. 잠시 앉아 있는 사이 여러 팀이 들어온다. 커피나 과실 차도 있지만, 오랜만에 앉은뱅이밀로 만든 미숫가루 한잔했다. 빵집 앞 나무에는 아직 익지 않은 파란 열매가 달려 있었다. 혹시나 물으니 맞았다. 횡성에 고얏이 많은 이유를 알았다. 동네마다 이렇게 키우고 있어서 그런 듯싶었다. 안흥에 찐빵만 사러 가면 ‘앙꼬 없는 찐빵’ 사는 격이다. 우리밀로 만든 빵도 같이 사야 제대로다. 이가본때 010-5624-0805

메밀 칼국수에 호박채무침 고명을 얹은 횡성식 비빔 건진국수.

메밀 칼국수에 호박채무침 고명을 얹은 횡성식 비빔 건진국수.

횡성은 한우의 도시다. 언제부터 유명해졌는지는 몰라도 도심이나 길가에 횡성한우 파는 곳이 많이 있다. 횡성 시내와 둔내역 주변에도 한우의 도시답게 정육식당이 제법 많다. 다들 등급 높은 소를 판다는 것을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2021년 기준, 1등급 이상 판정을 받은 소는 93만2000마리 중에서 74.9%(축산물 품질 평가원 기준)라 한다. 나머지 25.9%는 2등급 이하를 받았다. 약 24만마리다. 등급 판정 2등급이 나왔다고 해서 맛이 2등급은 아니다. 지방이 예쁘게 끼지 않았을 뿐이다. 모든 곳에서 1+ 이상을 판다고 자랑하는 곳에서 3등급 한우 파는 곳이 있다. 한우를 무한 리필로 운영한다. 여느 고깃집이라면 혼자 식사가 불가능하겠지만 여기는 가능하다. 시장 취재 4년, 고깃집 혼밥도 가능한 짬밥. 질 좋은 숯불 위에 혼자서 고기를 구웠다. 자리를 잡으면 나무 도마에 등심, 부챗살, 업진살, 치맛살을 내준다. 기본 구성을 먹은 다음부터는 취향과 양에 따라 먹으면 된다. 등급 낮은 고기는 높은 등급의 고기와는 굽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 등급 높은 소는 기름이 많기에 살짝 굽는 것이 요령이다. 녹은 지방이 윤활유 역할을 하기에 씹는 둥 마는 둥 해도 잘 넘어간다. 등급 낮은 것을 그렇게 구웠다가는 질겅질겅 씹히기만 할 뿐, 맛이 없다. 등급 낮은 소가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다. 미디엄 레어로 구우면 안 된다. 웰던으로 구웠을 때 제맛이 나는 게 3등급 한우다. 핏기가 가시고 진한 갈색이 될 때 씹으면 이 말이 생각난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다.’ 냉면도 있지만 된장찌개를 잊어서는 안 된다. 막장으로 끓인 된장국에 구운 고기를 넣어서 같이 먹으면 밥 한 공기 뚝딱 사라진다. 거세우는 등급이 잘 나오든 말든, 축종 불문 맛이 심심하다. 향이 있는 황소로 대신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라오니아 070-4145-9100

우리밀로 만든 빵과 앉은뱅이밀 미숫가루.

우리밀로 만든 빵과 앉은뱅이밀 미숫가루.

제물국수와 건진국수가 있다. 제물은 면을 따로 삶아서 넣지 않고 육수에 그냥 끓이는 국수다. 보통 바지락칼국수를 이런 식으로 끓인다. 건진국수는 육수와 면을 따로 삶아서 낸다. 잔치국수 국물이 맑은 이유다. 횡성에는 다른 식의 건진국수가 있다. 면을 따로 삶는 것까지는 맞는데 육수가 없다. 비빔 건진국수다. 메밀 넣고 만든 칼국수 면을 삶은 뒤 위에 고명으로 호박채무침을 올렸다. 그대로 비벼도 좋지만 같이 나온 콩나물무침을 넣어야 맛이 완성된다. 구수한 면에 달짝지근한 호박볶음, 거기에 매콤하게 무친 콩나물이 포인트. 싱겁진 않지만 양념간장을 조금 넣어서 비비면 한 그릇 후딱이다. 순댓국이 전문인 곳이라 건진국수는 여름 한정이다. 겨울엔 대신 장칼국수가 나온다. 동네 사람들을 보니 순댓국 먹는 이가 많았다. 출장길 오다 가다 순댓국 생각나면 다시 한번 갈 생각이다. 순대먹거리식당 0507-1486-2246



▶김진영

[지극히 味적인 시장]고얏, 뭐얏! 한 알에 정신이 번쩍 드네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7년차 그린랩스 팜모닝 소속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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