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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마음을 움직인 미니스커트 입은 아프간 여성 사진은

이인숙 기자
[알아보니]트럼프의 마음을 움직인 미니스커트 입은 아프간 여성 사진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돈낭비”라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가파병을 하기로 했다. 결정 과정의 막후를 전한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자신의 슬로건인 ‘어메리카퍼스트’를 놓고 싶지 않아 수개월을 고심하던 트럼프는 아프간에 적극적 개입을 원하는 군 장성 출신 허버트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에게 설득당했다. 그 때 맥마스터가 내민 한 장의 사진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사진을 “1972년 카불 시내를 미니스커트 입은 아프간 여성들이 걸어가는 흑백 사진”이라고 했다. “아프간에 한때 서구적 규범이 존재했고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목적이었다.

맥마스터가 정확히 어떤 사진을 썼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언론들은 전해진 정황으로 보아 위 사진일 거라고 추정했다.

사진을 보면 자유로운 헤어스타일에 미니스커트와 구두를 신은 아프간 여성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에는 ‘1970년대 카불’이라는 문구가 있고 포르투갈어로 ‘탈레반 이전(antes do Taleban)’이라고 돼 있다.

이 사진은 영국의 여성 전쟁사진가 해리엇 로간이 2002년에 펴낸 사진집 <아프간의 여성들>에 등장하는 사진이다. 하지만 이 사진은 로간이 찍은 것은 아니다. 로간은 1997년 12월 처음 아프가니스탄을 찾았다.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을 잡은 것이 바로 15개월 전이었다. 아프간 여성들은 미니스커트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덮는 부르카로 갈아입어야 했다. 2008년 로간은 BBC와 인터뷰에서 “남자 기자와 함께 동행했고 통역과 기사가 있었지만 나는 부르카를 입고 여성들과 따로 다녀야 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로간은 탈레반 통치로 억압받던 많은 여성들을 만나고 인터뷰했다.

사진을 찍은 이가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진은 이후 국제 인권단체와 역사가들이 탈레반 이전 아프간이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됐다. 영국 앰네스티는 2013년 10월 40년 사이 아프간 여성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하는 글을 올리면서 이 사진을 인용했다. 이 글에는 앰네스티에서 아프간 조사원으로 일하는 호리아 모사디크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모사디크는 “내가 어린 소녀였을 때 어머니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우리는 영화관에 데려갔던 것을 기억한다. 내 이모는 카불의 대학을 다녔다”고 회상한다. 그러면서 “아프간 여성은 전쟁으로 가장 많은 것을 잃었다”고 했다. 사진 속 상황을 말해주는 증언이다.

191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1979년 소련의 침공 이후 내전에 휘말리기 전까지 60년은 아프간 여성들에게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이 시기 아프간을 이끈 아프가니스탄의 군주들이 근대화와 개혁을 추구하면서 가능한 일이었다. 1919년 독립 후 아프가니스탄 왕국의 왕으로 즉위한 아마눌라 칸은 이듬해 여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고, 조혼을 없애고 일부다처제를 제한하는 가족법을 만들었다. 아마눌라 국왕은 “종교는 여성의 손과 발, 얼굴을 가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부족의 관습이 개인의 자유 의지를 강제해서는 안된다”며 부르카를 반대했다. 그의 부인 소라야 왕비는 아프간의 첫 여권 운동가로 불리는 인물이다.

1920년대 아프간 여성들의 모습. 서구식 복장에 단발머리가 인상적이다. |위키피디아

1920년대 아프간 여성들의 모습. 서구식 복장에 단발머리가 인상적이다. |위키피디아

1950년대 카불 시내 여성들의 모습. 여성들이 부르카가 아닌 히잡을 쓰고 짧은 치마와 구두를 신고 대중교통을 타고 있다. |포린폴리시, 위키피디아

1950년대 카불 시내 여성들의 모습. 여성들이 부르카가 아닌 히잡을 쓰고 짧은 치마와 구두를 신고 대중교통을 타고 있다. |포린폴리시, 위키피디아

국왕 부부의 사회 개혁은 보수적인 이슬람 부족 사회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아마눌라 국왕의 암살로 뒤를 이은 나디르 샤는 숨고르기를 해야 했다. 1933년 나디르 국왕도 암살되고 아들 자히르 샤가 즉위했다. 자히르의 재위 40년 동안 사촌인 무함마드 다우드 총리의 개혁에 여성들에게는 남성들과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다. 자히르 국왕이 1964년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면서 마련한 새 헌법은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명시하고 여성의 투표권과 참정권을 보장했다. 모사디크가 미니스커트를 입은 어머니와 손을 잡고 영화관에 갔던 시기다. 자히르 국왕은 미국과 소련이 대립한 냉전 속에서 미·소 양국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중립외교로 중심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쿠데타를 일으켜 자히르 국왕을 퇴위시키고 대통령이 된 다우드도 아마눌라 국왕의 기조를 이어 여성의 자유와 권리는 더 확대됐다. 이런 개혁은 카불 등 일부 대도시에 한정적이라는 한계는 있었다. 부족의 통제력이 강한 지역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억눌려 있었다.

영국의 전쟁사진가 해리엇 로간이 탈레반 집권 직후인 1997년 아프간을 방문해 찍은 사진. 여성들이 모두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쓰고 있다. |BBC

영국의 전쟁사진가 해리엇 로간이 탈레반 집권 직후인 1997년 아프간을 방문해 찍은 사진. 여성들이 모두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쓰고 있다. |BBC

공산 혁명과 소련의 침공, 내전을 겪고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후 아프간 여성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탈레반 집권 전까지 노동인구의 절반이 여성이었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탈레반이 샤리아 율법에 근거한 칙령을 발표하면서 여성들은 교육을 받을 수도, 직장에서 일할 수도, 정치에 관여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소리 내 말할 수도 없게 됐다. 집 밖을 나가거나 병원에 갈 때도 남편이나 남성 친척이 동행해야 가능했다. 맨살을 드러낼 수 없어 부르카를 입어야 했다.

2001년 탈레반이 축출된 후 모든 억압이 공식적으로는 해제됐다. 첫 여성 의원, 첫 여성 시장이 나왔고 여성문제를 위한 정당도 설립됐다. 하지만 중앙 정부의 통제력은 여전히 미약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다시 득세한 탈레반은 아프간 전 국토의 40% 가까이를 잠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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