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사임·총선 불출마
“언제 떠나야 할지 아는 것도 정치인의 역할
총리직은 탱크가 가득 차 있지 않는 한
수행할 수 없고 수행해서도 안된다”
공감·결단의 리더십···최근엔 정치적 부침
“특권을 가진 역할에는 책임이 뒤따릅니다. 자신이 그 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야 하는 책임입니다. 저는 떠날 때가 됐습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42)가 19일(현지시간) 전격 사의를 표명하고 오는 10월 열리는 총선에도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dpa·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아던 총리는 이날 노동당 연례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다음 4년을 위한 에너지가 없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총리직을 이어가기 위한 에너지와 열망을 탱크와 연료에 비유해, “총리직은 탱크가 가득 차 있지 않는 한 수행할 수 없고 수행해서도 안된다. 또한 여유분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여름 휴가기간 동안 (나 자신을) 돌아본 결과 내게 더이상 총리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탱크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올해 3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던 와중 갑작스럽게 발표된 아던 총리의 사의 표명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뉴질랜드 집권 노동당은 아던 총리의 사임에 따라 오는 22일 차기 당대표 선출에 나선다. 다만 아던 총리는 보궐 선거를 피하기 위해 올 4월까지는 의회 의원으로 남는다.
아던 총리는 “나는 인간이다. 정치인도 인간이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나면 (떠날) 때가 된다. 내게도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총리로 지낸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이었다. 내게 지난 5년반 동안 이 나라를 이끌 특권을 준 뉴질랜드 국민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고 dpa통신은 전했다.
아던 총리는 2017년 뉴질랜드 역대 최연소인 37세 나이로 총리직에 오르며 세계에서 가장 젊은 정부 수반으로 꼽혔다. 그는 총리에 오른 뒤 2018년 6월 동거하던 연인 클라크 게이포드와 딸 ‘니브 테이 아로하’를 낳고 6주간 출산휴가를 다녀왔으며, 모유 수유를 이유로 3개월 된 딸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참석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8년 타임이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올랐으며 패션 잡지 보그에서는 그를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젊은 층과 여성, 진보 진영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저신다 마니아’ 현상을 낳기도 했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공감’의 정치가 가진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와 이슬람센터에서 무슬림을 상대로 총기 테러가 일어났을 때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유족을 만난 것이 대표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아던 총리의 이 같은 행보 덕에 “무슬림들의 분노가 완화됐다”고 평가했다. 이후 그는 테러에 사용된 반자동 총기를 금지하도록 총기법을 개정했다.
또 코로나19 초기에 과감한 결단력으로 발빠르게 봉쇄 조치를 취해 지역사회 전파를 막은 것 또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를 발판으로 2020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1996년 이래 처음으로 의회에서 압도적 다수 지위를 확보했다.
그러나 최근 노동당 지지율은 부침을 겪고 있다. 생활비 상승과 경제적 전망 악화로 인해 민심이 돌아섰기 때문이다. 지난달 발표된 1뉴스-칸타르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동당 지지율은 33%로 국민당(38%)보다 뒤처진다. 국민당과 연합한 ACP당의 지지율 11%까지 더해지면 노동당이 여당 자리를 내려놓을 위기에 처했다.
아던 총리는 지지율과 사임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정치적 역경 때문에 사임한다는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다. 우리(정치인)도 인간이니 영향은 있겠지만, 내 결정의 근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기지 못할 것 같아서 떠나는 게 아니다. 우리(노동당)는 이길 것이고 이길 수 있다. 그러한 도전을 위해 신선한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아던 총리는 앞으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외에 다른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는 “딸 니브가 올해 학교에 들어갈 때 함께 그곳에 가는 엄마가 되고 싶다”며 현장에 있던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에게 웃으며 “드디어, 우리도 결혼식을 올리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