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獨·伊는 유럽의 병든 나라”

21세기 ‘유럽의 병자’는 누구인가. 요즘 유럽 언론들의 중요한 화두이다.

“佛·獨·伊는 유럽의 병든 나라”

이 말이 최근 이탈리아에서 좌파연합이 힘겹게 우파 정권을 교체하고 프랑스 우파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학생·노동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좌초되면서 다시 등장했다. 누가 병자인가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은 독일 언론이다. 독일은 1990년대 후반 이래 높은 실업률과 높은 재정적자 등으로 인해 올 초까지 ‘독일병’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12일 슈피겔 영문판은 오랫동안 병을 앓아온 독일 사정 역시 별로 달라진 것이 없지만 최근엔 프랑스, 이탈리아에 대비돼 비교적 ‘건강한’ 나라로 비친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는 전날 총선에서 로마노 프로디가 이끄는 좌파연합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우파연합을 가까스로 이겼지만 시장으로부터 조금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좌파가 우파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데다 내부적으로도 사분오열돼 있어 강한 추진력을 갖기 어렵다는 예상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학생·노동계가 최초고용계약제(CPE) 도입을 무산시킨 데 이어 내친 김에 작년부터 시행 중인 신고용계약제(CNE)도 없애자며 시위를 가속화하고 있다. 시장의 입장에선 ‘레임덕’에 접어든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가 영 미덥지 못하다.

“佛·獨·伊는 유럽의 병든 나라”

독일 역시 허덕이기는 마찬가지다. 독일 dpa통신은 이날 이탈리아, 프랑스와 함께 독일도 정치적 리더십 부재에 시달리는 환자라고 규정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좌·우파간 절묘한 타협으로 만들어낸 대연정이 흔들리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연정 수립 후 사민당(SPD) 당수로 취임한 지 5개월도 채 안된 마티아스 플라첵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을 발표했고, 사민당 내에서 기민련(CDU)과의 대연정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민당의 비틀거림은 곧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에 타격을 주고 대연정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슈피겔은 독일과 프랑스는 사정에 있어 큰 차이가 없지만 독일에는 ‘성난 학생들’ 대신 ‘죽은 양들’만 있기 때문에 그나마 신자유주의 개혁에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이들 세 나라를 보는 영국 언론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날 칼럼에서 “세 나라 모두 역대 최약체의 정부를 갖고 있다”면서 “약한 정부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시민사회가 건실하지 않고 정책 환경이 협조적이지 않다면 약한 정부는 그 자체로 악”이라고 지적했다.

〈손제민기자〉

◇‘유럽의 병자’= 한때 발칸과 중동 지역을 다스리다 19세기 후반 열강과의 전쟁에 계속 패해 쪼그라든 오토만 제국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가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이후 1970년대에는 영국을, 80년대에는 ‘프랑코 시대’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90년대 경제불황을 겪은 러시아·동유럽·독일을 일컬을 때 사용됐다. 2005년 5월 이코노미스트가 이탈리아를 ‘유럽의 진정한 병자’라고 지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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