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효시 ‘대처리즘’ 영국병 치유·양극화 폭발 상반 평가

배문규 기자

포클랜드 전쟁 등 ‘대영제국 영광 재현’ 이면엔 “미국의 푸들 됐다” 비판도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1980년대 신자유주의 바람을 일으켰다. 그의 정책은 ‘대처리즘’으로 대변된다. 이는 대처 전 총리의 경제정책과 그의 강력한 신념에 따른 행동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대처리즘의 골자는 재정지출 삭감, 공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와 경쟁 촉진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공공부문의 민영화로 완성됐다.

대처가 총리가 되기 전인 1970년대 영국은 과도한 사회복지와 노조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지속적인 임금상승, 생산성 저하 등으로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해 소위 고복지·고비용·저효율을 특징으로 하는 만성적인 영국병에 시달렸다. 1976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에까지 몰렸다.

1979년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가 된 대처는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처럼 집권하자마자 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복지정책을 과감히 수술하고 경제 전 부문에 걸친 개혁에 돌입했다. 총리로 재임한 1990년까지 5개 노동법 개정을 통해 만성 파업을 주도해온 노조를 전쟁을 치러 무력화시켰다. 또 공무원 수를 11만명이나 줄이고, 공기업 50여개를 민영화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1986년에는 ‘빅뱅’으로 불리는 금융개혁도 단행했다.

그의 정책은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 영국의 경제 호황의 밑바탕이 됐다고 흔히 인정받고 있으나 반대자들로부터는 빈부 및 지역 격차, 영국 제조업의 붕괴를 초래했다고 비판받고 있다. 또한 대처의 경제개혁 정책은 당시 영국의 경제문제를 뿌리부터 해소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외교·안보 면에서는 국방력을 강화하고 과거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1982년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섬을 두고 벌인 전쟁의 승리는 이를 확인시켜준 대표적인 사례다.

외교적으로는 시종일관 친미 정책을 추구했다. 1983년 미국의 크루즈 미사일을 유럽 국가로는 최초로 배치했으며, 1985년엔 레이건 미 대통령의 전략방위구상(SDI)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지지했다. 1986년엔 리비아 폭격을 위해 미군 폭격기의 영국 기지 사용을 허가하기도 했다. 또 그가 신봉한 반공주의는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옛 소련이 붕괴하는 데 초석을 놓았다.

하지만 대처의 친미 노선은 ‘미국의 푸들’로 전락했다는 야당과 언론의 비난을 샀다.

한편 대처 전 총리의 정책은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언급할 정도로 박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쳤다.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대처를 여성 지도자의 모델로 삼고 한국을 위기에서 구할 리더십으로 대처리즘을 언급했다.


Today`s HOT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폭격 맞은 라파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