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엘리자베스 시대 저물고 찰스 시대 열리나

김보미 기자

영연방 정상회의 왕세자 부부 첫 참석… 왕권 이양 수순 관측

60여년 ‘여왕시대’가 저무는 것일까.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87)이 공식 행사에 연달아 불참하면서 찰스 왕세자(65)의 왕위 승계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영국 왕실이 11월 스리랑카에서 열리는 영연방 정상회의(CHOGM)에 여왕이 참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7일 BBC가 보도했다. 영연방 수장인 여왕은 1971년 첫 회의를 빼고 1973년부터 2011년까지 매번 참석했다.

왕실 대변인은 고령인 여왕의 장거리 여행 횟수를 되도록 줄이려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 대신 찰스가 부인 카밀라 콘월과 동행해 자리를 채우게 된다. 찰스는 여왕을 보좌하기 위해 회의를 따라간 적은 있지만 부인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왕실의 큰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 왕실 관계자는 “여왕이 쇠약해 보이지만 건강은 양호한 상태”라며 “찰스에게 왕권을 넘기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왕은 올 초 위장염으로 입원해 영연방 기념일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등 대부분 약속을 취소했지만 3월11일 신영연방 헌장식은 수행했다. 당시에도 몸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오른쪽)이 8일 런던 상원에서 의회 개회 연설을 하는 동안 찰스 왕세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왕은 이날 정부에 경제 살리기와 불법이주자 차단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라고 제안했다. 찰스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1996년 이후 처음이며, 부인 카밀라도 배석했다. 런던 | AP뉴시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오른쪽)이 8일 런던 상원에서 의회 개회 연설을 하는 동안 찰스 왕세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왕은 이날 정부에 경제 살리기와 불법이주자 차단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라고 제안했다. 찰스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1996년 이후 처음이며, 부인 카밀라도 배석했다. 런던 | AP뉴시스

‘다음 시대’ 준비로 해석되는 징후는 또 있다. 영국 언론은 “왕실이 몇 주 전 찰스와 카밀라의 이번 회의 참석을 알리는 공지를 일부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신중한 언어로 이미 띄웠다”고 전했다. 카말레시 샤르마 영연방 사무총장은 지난 3월 헌장 서명식에서 여왕의 오랜 공로를 찬양하며 찰스의 역할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줄리아 길러드 호주 총리 역시 “영연방의 미래에 대해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여왕의 후계자(찰스)가 세습군주로서 언젠가는 여왕과 같은 자질로 수장의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왕실 측은 “왕권 이동을 위한 물밑작업”이라는 해석에 선을 긋고 있지만 최근 움직임은 ‘찰스 시대’ 서막을 높인다. BBC는 “당장 여왕이 퇴위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앞으로 여왕보다 찰스가 나서는 일이 많아지면서 더 많은 의무를 나눠 갖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영, 엘리자베스 시대 저물고 찰스 시대 열리나

그러나 여왕 지지층은 여전히 견고하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갑작스럽게 왕권을 넘기면 느슨하게 묶여 있는 영연방 국가들의 탈퇴 움직임을 부추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찰스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져 바로 윌리엄 왕세손에게 왕위가 이어져야 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여왕 즉위 60주년에 맞춰 실시된 여론조사를 보면 윌리엄(62%)의 선호도는 여왕(48%)과 동생 해리 왕자(36%)를 제치고 가장 높았다. 찰스(21%)의 선호도는 윌리엄의 3분의 1 수준으로 2001년(38%) 조사 때보다 힘을 잃은 모양새다.

군주제 폐지론도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영국 왕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왕위를 이어야 유지될 수 있다고 타임이 전했다. 올가을 영연방 정상회의는 이 가능성을 점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올 7월 윌리엄의 아이가 태어나 관심이 집중될 때를 활용해 계승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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