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스탈린식 납치…” 벨라루스 야권 인사들 속속 실종·추방

이윤정 기자
“21세기 스탈린식 납치…” 벨라루스 야권 인사들 속속 실종·추방

26년째 장기 집권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야권 인사들이 속속 실종되거나 추방되고 있다. 7일(현지시간) 하루에만 야권 인사 3명이 납치된 것으로 전해지자 유럽연합(EU)은 벨라루스 당국에 이들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날 오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시내에서 조정위원회 간부회 임원 마리야 콜레스니코바(사진)가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콜레스니코바는 유력 야권 정치인이었던 남편을 대신해 정치에 나선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 베로니카 체프칼로와 함께 야당 여성 지도자 3인방으로 불려왔다. 지난달 9일 치러진 대선에서 득표율 2위를 기록한 티하놉스카야도 신변위협을 느껴 리투아니아로 피신한 상태이고, 체프칼로 또한 강제로 국외로 추방당했는데 콜레스니코바마저 정부 당국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보인다고 타스통신은 보도했다.

목격자들은 현지 언론에 이날 아침 민스크 시내에서 마스크를 쓴 괴한들이 콜레스니코바를 미니버스에 강제로 태워 어딘가로 떠나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벨라루스 경찰은 콜레스니코바를 연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BBC는 현지 매체를 인용해 현재 콜레스니코바가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 구금돼 있다고 보도했다.

뒤이어 조정위원회 공보서기 안톤 로드녠코프와 조정위원회 집행서기 이반 크라프초프 등의 야권 인사들도 연락이 두절됐다. 하루에만 야권 인사 3명이 실종된 것이다. 야권에선 당국이 이들을 연행했거나 납치 후 외국으로 강제 출국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전날에는 조정위원회 다른 간부회 임원 올가 코발코바가 당국자들에 의해 폴란드로 강제 출국당했다.

벨라루스 국가국경위원회는 이날 로드넨코프와 크라프초프가 불법으로 벨라루스를 떠나 우크라이나로 출국했으며, 콜레스니코바는 체포됐다고 밝혔다. 위원회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로드넨코프와 크라프초프, 콜레스니코바 등이 오늘 새벽 4시께 벨라루스-우크라이나 국경의 차량검문소를 통해 출국을 시도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대변인은 “3명은 BMW 승용차를 타고 세관을 통과해 우크라이나 쪽으로 이동하다 국경수비대원을 보고는 자동차를 가속해 수비대원들의 생명에 위협을 가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콜레스니코바는 자동차에서 밖으로 튕겨 나왔고 다른 2명은 우크라이나 쪽으로 도주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도 이날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콜레스니코바 체포 사실을 확인하면서 “우크라이나로 도주하려다 출입국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콜레스니코바의 동료이자 조정위원회 위원인 막심 즈낙은 3명의 야권 인사들이 벨라루스를 떠날 계획이 없었다며 당국의 발표가 조작일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 우크라이나 지국도 자체 소식통을 인용해 “벨라루스 보안요원들이 3명을 국경으로 데려가 강제 출국시키려 했으나 콜레스니코바가 자신의 여권을 찢어버려 출국시킬 수 없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당국도 로드넨코프와 크라프초프 등 벨라루스 야권인사 2명의 입국 사실을 전하면서, 이들이 강제로 출국당했으며 콜레스니코바는 스스로 강제 출국을 불가능하게 하는 행동을 해 우크라이나로 들어오지 않았다면서 인테르팍스 통신의 보도를 간접적으로 확인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이 지난달 9일 대선에서 80.1% 득표율로 압승을 거둔 이후 벨라루스에선 투표 부정과 개표 조작 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한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시위가 격해지면서 정부 탄압도 거세지고 있다. 인권단체 비아스나(Viasna)에 따르면 루카셴코 정권은 반정부 인사, 야권 인사와 언론인 등을 마구잡이로 체포해 고문·구타를 자행하고 있다.

EU와 이웃나라들은 루카셴코 정권을 비판하고 나섰다. EU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EU는 벨라루스 당국이 8월 9일 조작된 대통령 선거를 전후로 정치적 이유로 억류된 모든 이들의 즉각적인 석방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EU는 폭력, 억압, 선거결과 조작에 대한 책임이 있는 이들에게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벨라루스 내 정치범들의 소재를 명확히 밝히고 이들을 모두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도 “벨라루스의 마리야 콜레스니코바의 안전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 루카셴코 정권은 그의 안전한 귀환을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나스 린케비치우스 리투아니아 외교부 장관은 “스탈린식 옛 소련 비밀경찰 행태가 21세기에 자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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