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모로코 4강전이 ‘축구 그 이상’인 까닭은

김서영 기자

프랑스, 과거 모로코 식민 통치 역사에

현재 모로코계 이민자 약 150만명 거주

“아버지와 어머니의 경기같다” 딜레마

모로코, 4강 승리 땐 침공국 상대로 3승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모로코가 포르투갈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이후, 모로코 축구 팬들이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모로코가 포르투갈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이후, 모로코 축구 팬들이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경기를 보고 싶지만 두렵기도 하다.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가 경기하는 것 같다. 불가능한 딜레마다.” 프랑스의 유명한 배우 겸 코미디언 자멜 드부즈는 월드컵에서 프랑스와 모로코가 맞붙는 심정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드부즈의 말은 14일(현지시간) 2022 카타르 월드컵 준결승전을 앞두고 모로코와 프랑스에 감도는 긴장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두 국가의 경기는 단순한 축구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프랑스24·AFP통신 등 외신은 이번 결전에 담긴 정치적 의미에 주목했다. 과거 프랑스는 모로코를 1912년부터 1956년까지 식민지배했다. 프랑스가 다른 식민지였던 알제리보다는 모로코를 덜 혹독하게 통치해 독립 이후에도 양국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럼에도 옛 식민국가에 저항한다는 민족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모로코의 정치분석가 하산 아우리드는 “모로코와 프랑스의 관계는 (알제리의 경우보다) 더 차분하다. 그러나 모로코를 지배하고 식민통치한 적으로 프랑스를 보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AFP통신에 말했다.

모로코가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4강에 진출한 국가라는 상징성도 더해진다. 아프리카 대륙 및 아랍 세계가 모로코에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 이반 가스토 니스대 교수는 “수십년의 역사가 90분짜리 경기와 충돌할 것이다. 아찔할 정도”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이번에 모로코가 승리하면 프랑스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이어 모로코를 침공한 유럽 국가 중 3번째로 패하는 나라가 된다. 2001년 프랑스-알제리전 당시 관중들이 프랑스 국가에 아유를 보내고 경기장에 난입했던 사례가 있다.

더 큰 문제는 경기장 바깥이다. 프랑스에는 모로코계 이민자가 약 150만명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 절반은 이중국적이다. 현 모로코 대표팀 또한 감독 포함 선수 2명이 프랑스 이중국적자다. 모로코계는 프랑스의 이민자 집단 중 알제리계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이에 따라 ‘어디를 응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흔히 보인다.

지난 10일 모로코가 포르투갈을 꺾은 이후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는 약 2만5000명이 뛰어나와 승리를 자축했다. 그날 몰려든 인파들은 축포를 발사하고 상점을 파손하는 등 소란을 빚었고 약 100명이 체포됐다. 프랑스전 이후 이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더 큰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샹젤리제 거리를 관할하는 잔 도트세르 파리8구 구청장은 “거리가 전쟁터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경기 당일 샹젤리제 거리를 폐쇄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프랑스 내무부는 경찰과 치안 인력을 샹젤리제 거리에 5000명 그 외 지역에 5000명 등 총 1만명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NYT는 이번 경기가 이민자를 터부시하는 프랑스 극우 세력에 빌미를 제공할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이미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는 지난 12일 이민자 2세들이 “식민지 역사와 관련된 복수의 감정을 끊임없이 표출하며 외국 국민처럼 행동한다”고 비난한 바 있다.

디디에 데샹 프랑스 대표팀 감독은 13일 카타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모로코전의 상징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치적 해석과는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는 역사를 알고 있고 열정도 많지만 스포츠맨으로서 제 길을 가고 싶다”고 밝혔다. 프랑스계 모코로인 아나스 다이프(27)는 “이번 경기는 다문화주의를 축하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프랑스계 모로코인으로서 누가 이기든 결승에 가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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