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이민’ 이어 ‘反녹색’···유럽에 부는 ‘극우 포퓰리즘’ 새 바람

선명수 기자
지난 7월28일(현지시간)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열린 극우 포퓰리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이 투표 용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7월28일(현지시간)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열린 극우 포퓰리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이 투표 용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독일 중부에 위치한 인구 4만2000여명의 소도시 노르트하우젠에서 열린 시장 선거에 독일은 물론 유럽 정치권과 언론의 이목이 쏠렸다.

나치의 강제수용소 중 하나인 미텔바우-도라가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이 작은 도시에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소속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게 점쳐졌기 때문이다.

이날 선거에 앞서 진행된 각종 여론조사와 1차 투표에서 AfD 후보로 나선 요르그 프로페트가 선두를 차지했다. 노르트하우젠이 위치한 튀링겐주에서 AfD의 정당 지지율도 30%를 넘어서며 1위를 달렸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선거 결과는 무소속으로 나선 카이 부흐만 현 시장의 승리였다. 부흐만은 54.9%를 얻어 45.1%를 득표한 프로페트를 비교적 넉넉한 격차로 따돌렸지만, 독일 정치권에선 AfD의 영향력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됐음을 재확인한 선거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튀링겐 지역 AfD는 이 정당 내에서도 특히 극단주의적인 성향이 두드러져 AfD 튀링겐지부는 독일 연방헌법수호청의 감시를 받고 있다. 이 지역 홀로코스트 희생자단체는 “노르트하우젠에서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 반유대주의,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의 후보가 시장이 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 AfD 후보는 결국 낙선했지만, AfD의 최근 지지율은 22%까지 치솟으며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확장해가고 있다. AfD 지지율은 이미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을 넘어섰고, 일부 지역에선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도 제치는 등 급부상하고 있다.

독일 시민 12명 중 1명(8.3%)이 ‘극우적 세계관’을 보유하고 있다는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재단의 최근 조사 결과 역시 극우 정당의 약진을 뒷받침한다. 이는 2년 전 조사 결과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이런 성향은 특히 젊은층(18~34세)에서 두드러졌으며, 전체 응답자의 6.6%는 ‘강력한 지도자와 유일 정당에 기반한 우익 독재’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치 독일과 파시즘의 기억을 갖고 있는 유럽에서 ‘극우의 재부상’은 비단 독일만 직면한 문제는 아니다. 이탈리아와 핀란드, 헝가리에는 극우 정권이 들어섰고, 폴란드에서도 극우 민족주의 성향 집권 법과정의당이 오는 15일 열리는 총선에서 재집권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스웨덴은 백인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스웨덴민주당이 원내 2당으로 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마리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이 중도 우파를 밀어내고 있으며, 오스트리아의 극우 성향 자유당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15개 국가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20%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히틀러를 찬양한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온 오스트리아의 극우 정치인 외르크 하이더가 2000년 정부에 입성해 유럽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 이후, 2015년 100만명이 넘는 난민들이 유럽 국경을 넘는 이른바 ‘이민 위기’가 발생하면서 ‘반(反)이민’ ‘반(反)EU’를 내건 극우세력이 더욱 힘을 얻기 시작했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일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 바람’이 과거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이들 극우 정당들이 여전히 ‘반이민’을 핵심 의제로 내걸고 있지만, 영국의 브렉시트 경험을 통해 EU에 대한 적대감은 대체로 누그러졌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EU 단일통화 체계에서 탈퇴하자는 주장도 거의 사라졌다.

대신 최근 유럽의 극우정당들은 ‘반이민’과 함께 각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후 정책에 대한 적대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극우파는 유권자의 분노를 고조시킬 주제를 기회주의적으로 찾고 있다”면서 “특히 기후 정책을 평범한 시민들을 기만하는 ‘엘리트주의’로 규정하며 그 적대감을 십분 이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과 맞물린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서민 가계의 타격도 극우 세력이 ‘반녹색 노선’을 끌고 가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독일 AfD는 정부가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국민들에게 값비싼 히트펌프를 설치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공세를 펼쳐 정부가 해당 조치를 완화하도록 만들었다. 독일의 정치 컨설턴트이자 포퓰리즘 연구가인 요하네스 힐예는 “AfD는 이민과 기후 정책이 독일의 문화적 정체성과 생활 방식에 위협이 된다는 ‘공포의 내러티브’로 지지층을 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에는 네덜란드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선 신생 우익 포퓰리즘 정당 ‘농민-시민운동당(BBB)’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해 네덜란드 정치권에 충격파를 던졌다. 이 선거는 유럽의 정치 지형에서 우익 포퓰리즘이 이민 문제에 이어 환경 의제로도 확산하게 됐다는 신호탄으로 분석됐다.

영국 요크대학의 비교정치학자인 다프네 할리키오풀루는 최근 가디언 인터뷰에서 “극우 정당은 다양한 관심사로 유권자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면서 “여전히 이들에게 가장 큰 이슈는 이민 문제지만, 이제 이들은 핵심 지지층을 넘어 다양한 의제에서 유권자의 불안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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