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정적’ 나발니 장례식 거행…“우리는 두렵지 않다”

손우성 기자

시민 1000여명 운집…300m 긴 줄

“그는 진정한 영웅” 뜨거운 추모 열기

러시아 당국 “나발니 지지 집회는 불법”

러시아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 가족과 지인들이 1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한 교회에서 거행된 장례식 도중 시신 주변에 모여 그를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 가족과 지인들이 1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한 교회에서 거행된 장례식 도중 시신 주변에 모여 그를 추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베리아 오지 교도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은 러시아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장례식이 1일(현지시간) 거행됐다. 1000여명의 시민들은 나발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철권통치에 맞섰던 생전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러시아 당국은 장례식장 주변에 경찰 인력을 대거 투입하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제한하는 등 추모객을 압박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나발니 장례식은 이날 오후 2시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남동부 마리이노 지역의 한 교회에서 진행됐다. 비공개로 열린 장례식엔 나발니 부친 아나톨리 나발니와 모친 류드밀라 나발나야 등 극소수만이 참석했다. 배우자인 율리아 나발나야와 자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디언 등 외신들은 이들이 러시아 경찰에 체포될 가능성이 있어 불참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후 나발니 시신은 모스크바 보리소프스코예 묘지에 안장됐다.

장례식장 밖 추모 열기는 뜨거웠다. BBC에 따르면 교회 주변엔 1000명 이상의 시민이 몰려 300m가 넘는 긴 줄이 형성됐다. 추모객들은 운구차가 나타나자 “우리는 두렵지 않다” “전쟁 반대” “살인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박수 세례를 보냈다. 린 트레이시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와 피에르 레비 프랑스 대사 등 일부 서방 외교관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알렉세이 나발니 죽음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1일(현지시간) 장례식이 진행된 모스크바의 한 교회 주변에서 슬픔에 잠겨 있다. AFP연합뉴스

알렉세이 나발니 죽음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1일(현지시간) 장례식이 진행된 모스크바의 한 교회 주변에서 슬픔에 잠겨 있다. AFP연합뉴스

자신을 마리나라고 소개한 추모객은 CNN에 “사랑하는 나발니를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여기까지 왔다”며 “그는 진정한 영웅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추모객 타티아나도 “나발니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모인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그의 정책과 생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 당국은 장례식 전부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추모객들을 향해 으름장을 놨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나발니를 지지하는 집회는 불법”이라며 “나발니를 정치적 인물로 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경찰도 추모 행사가 정치적인 성격을 띠는 즉시 시민들을 해산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로이터통신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경찰들이 1일(현지시간) 알렉세이 나발니 장례식이 열린 모스크바 한 교회 주변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경찰들이 1일(현지시간) 알렉세이 나발니 장례식이 열린 모스크바 한 교회 주변에서 경계를 서고 있다. AP연합뉴스

장례식 준비 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AFP통신은 “나발니 장례식을 앞두고 영구차 업체들이 그의 시신 운구를 거부했다”며 “누군가로부터 나발니 시신을 어디로도 옮겨서는 안 된다는 협박 전화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BBC에 따르면 애초 나발니 시신은 이날 오전 11시 가족에게 인계될 예정이었지만, 운구차를 구하지 못해 3시간 정도 작업이 늦춰졌다.

러시아 당국은 앞서 나발니가 지난달 16일 시베리아 최북단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의 제3교도소에서 갑자기 사망했다고 밝히며 사인은 자연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발니 가족들과 야권 인사들은 푸틴 대통령 암살 배후설을 제기하며 맞섰다. 유족들은 사망 8일 만인 지난달 24일 나발니 시신을 확인했고, 이후에도 “장례식을 비공개로 진행하라”는 등의 숱한 압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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