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일본 정부 ‘전범 이미지 씻고 중국 시장 개척’ 교감

베이징 | 오관철 특파원

중국인 강제징용자에 전격 사과·배상 속뜻은

시진핑 방미 전 ‘과거사 장애 제거’ 아베 의중 반영

한국인 피해자엔 ‘1876원’ 내주고 “배상책임 소멸”

지난 2월 초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일본연금기구는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 강제동원돼 일했던 한국인 80대 할머니 3명에게 각각 후생연금 탈퇴수당 199엔(약 1876원)씩을 지급했다.

근로정신대로 끌려간 이들은 된장국에 단무지 한 쪽이 전부인 식사에 일본인 작업반장의 감시를 받으며 비행기 페인트칠 등 중노동을 해야 했다. 2009년에는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후생연금 탈퇴수당 지급을 요청하자 99엔을 내줬다.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한국인 여성들에게 일제는 “다달이 적금을 해서 한꺼번에 지급하겠다” “조선에 돌아가 있으면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으나 모두 거짓이었다.

그러나 같은 미쓰비시 계열사인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24일 자사 탄광에 강제징용됐던 중국인 3765명에게 1인당 200만엔(약 1884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지난 19일 강제징용된 미군 포로들에게 공식 사과한 데 이어 이번에 중국에 고개를 숙인 것은 전범기업 이미지를 탈색하는 것이 중국 시장 개척에 도움이 된다는 미쓰비시그룹의 자체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쓰비시 머티리얼 사외이사인 오카모토 유키오는 22일 도쿄 기자회견에서 “중국인 강제노역 징용자들과도 원만한 해법을 찾고 싶다. 그들이 배상금 요구 소송을 하고 있어 해법은 돈과 관련될 것”이라고 말해 진작부터 중국 측과 사전 조율작업이 진행 중임을 시사했다.

여기에는 중·일관계 개선을 바라는 일본 정부의 의중이 기업을 통해 표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9월 방미를 앞두고 미·일 양국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순방 성과에 장애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일본 대법원은 2007년 판결에서 “1972년 중·일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강제노역 손해배상 권리는 이미 소멸했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미쓰비시는 이를 뒤집었다. 결국 일본 정부 의중이 반영된 정치적 선택의 성격이 짙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앞으로 다른 나라들에도 배상 및 사과 조치를 확대할지, 다른 일본 기업들도 동참할지가 일차적 관심이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전신인 미쓰비시 광업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과 영국, 네덜란드 등 다른 나라 징용자들도 강제노동에 동원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미쓰비시가 운영한 강제노역장 6곳에서 일한 전쟁포로 2041명 중 영국인이 672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중국만 해도 2차 세계대전 당시 4만명에 가까운 인력이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한국의 강제징용 피해배상은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재의 한·일관계 상황, 피해자 규모 등에서 한국과 중국의 상황이 다른 만큼 해결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실제 미쓰비시그룹은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배상 요구에 야박한 행보를 보여왔다. 1944년 10대의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가 미쓰비시중공업에서 강제노역을 했던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배상이 대표적이다. 광주고법은 최근 양금덕 할머니(84) 등 원고 5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각각 1억여원의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그러나 미쓰비시중공업은 이에 불복해 지난 13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일본 기업들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에 대한 배상 책임은 소멸됐다고 주장하며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는 시간끌기 전략을 쓰고 있다.

일본은 중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리를 들이대며 배상 요구를 반박해왔다. 1972년 9월 체결된 중·일 공동성명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일본에 대한 전쟁 배상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항목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의 청구권은 포기됐을망정 개별 민간인의 청구권은 포기된 것이 아니라며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상대적으로 소극적 입장을 보여온 한국 정부가 이번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조치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한국 외교부는 이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는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면서도 배상과 관련해서는 현재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입장 표명은 자제한다고 밝혔다.


Today`s HOT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폭격 맞은 라파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침수된 아레나 두 그레미우 경기장 휴전 수용 소식에 박수 치는 로잔대 학생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