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 20년 만에 최저…칼날 위에 선 ‘아베노믹스’

박은하 기자

1달러당 126.78엔까지 치솟아…외신 “통화 정책 안 바꾸면 130엔도 가능”

일본은행 총재 “경제에 마이너스” 우려 불구 금융 완화 지속 뜻…문제는 수출 이득 적고 내수 악화

엔화 가치, 20년 만에 최저…칼날 위에 선 ‘아베노믹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치솟던 엔·달러 환율이 20년 만에 최고 수준을 돌파했다. ‘엔저는 좋은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해오던 일본은행 총재와 재무상도 20년 내 최저를 기록할 정도로 가파른 엔화 가치 하락에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통화정책 방향을 전환할지는 미지수이다.

엔·달러 환율은 18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오전 한때 1달러당 126.78엔까지 치솟았다. 2002년 5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일본은행이 통화정책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엔·달러 환율은 130엔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고 전했다.

NHK에 따르면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엔화 가치가 최근 한 달 동안 10엔가량 하락했다. 상당히 급속한 환율 변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엔저는 일본경제에 플러스”라면서도 “엔화 약세가 급속하게 진행되면 불확실성을 고조시켜 경제에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엔저 현상이 나타나면 수출기업에 유리하지만 수입물가가 상승하는 만큼 원자재 가격 부담이 큰 중소기업이나 가계에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구로다 총재가 엔저 현상의 문제를 알고 있지만 여전히 ‘엔저는 플러스’라고 언급하면서, 완화적 통화정책을 바꾸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일 환율이 치솟는 이유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 때문이다. 올해 들어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등 돈 옥죄기에 나선 반면 일본은 반대 방향의 정책을 펼쳤다. 현재 일본의 단기금리는 -0.1%, 장기금리의 기준이 되는 10년물 국채금리는 0%이다. 일본경제가 코로나19에서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파장으로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실질적인 가계소득 감소와 경제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통화 정책의 근원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2차 집권기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에서 찾을 수 있다. 아베노믹스가 엔저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다쓰자와 겐이치 교토다치바나대 객원교수는 최근 경제 주간지 프레지던트에 보낸 기고문에서 “지금 발생하고 있는 엔화 약세와 물가 상승은 아베노믹스의 청구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아베노믹스는 완화적 통화정책, 기동적 재정정책, 규제완화를 중심축으로 하는데 핵심은 돈을 풀어내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인위적인 인플레이션을 만든다는 점에 있다.

문제는 아베노믹스가 일본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 기업이 이미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해 놓은 상황에서 엔저 정책의 수출 회복 효과는 크지 못했고, 일본 국민들은 오히려 앉아서 가난해진 결과가 됐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실질구매력 평가에 이용되는 빅맥지수에서 일본은 3.38달러로 태국(3.84달러), 한국(3.82달러)보다 낮다.

일본의 엔화 약세는 한국 기업에는 크게 불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기업 역시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고 품질로 승부하는 수출 품목이 많아지면서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많이 줄었다”며 “대일 수출품이 많지 않은 데다가 부품·자재 위주 대일 수입품이 많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유리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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