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식품사막’ 미국

볼티모어·페어팩스·비엔나 | 손제민 특파원

가난하고 차도 없어 신선식품 못 사… 통조림 끼니 ‘악순환’, “내 가족에게 쓰레기 먹이고 싶지 않아” 텃밭 가꾸기 열풍

▲ 통조림 파는 동네 가게도 차로 10분, 걸어선 40~50분
정부 지원금으로만 생활 ‘소득 비만’의 주요 원인

▲ 미국 곳곳이 ‘식품사막’ 특히 흑인 빈민 거주지나
어린이 등 취약계층과 겹쳐

▲ 워싱턴 근교 사는 질리 가족 하루 2~3시간 밭일에 투자
오이·호박·토마토 등 얻어 식비 3분의 1 줄이는 효과

▲ 미국 3가구 중 1가구 ‘텃밭’
미셸 오바마도 6년째 가꿔

지난달 8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의 빈민가 길모어스트리트. 승합차량 트렁크에서 한 흑인 여성이 봉지에 담긴 식료품들을 바쁘게 내리고 있었다. 봉지들에는 ‘세이브얼랏’ 로고가 적혀 있다. 값싼 식료품들을 파는 동네 슈퍼마켓 체인이다. 이 여성은 근처에 사는 조카가 한 달에 한 번 차를 몰고 시장에 갈 때에 맞춰 식료품을 구입하는 줄리아 플레밍(69)이다. 그의 집에서 세이브얼랏은 차로는 10분 정도 거리이지만 걸어가면 40~50분 걸린다. “나이 든 사람이 어떻게 거기까지 걸어가서 이 모든 걸 다 사오겠어요.” 플레밍이 땀을 닦으며 말한다.

소득이 거의 없는 플레밍은 매달 300달러(약 35만원) 정도의 정부 지원금으로 생활한다. 보충영양지원프로그램(SNAP)으로 불리는 이 복지수당은 미국 저소득층 가정의 식생활을 지탱하는데 필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만 의존할 경우 대개는 값싸고 칼로리 높은 식품 위주로 사게 된다. 저소득층에 비만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플레밍은 “푸드스탬프(SNAP의 옛이름)를 잘 쓰면 한 달 동안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동네 식료품점엔 유통기한이 없는 통조림 음식이나 정크푸드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심에서 살면서 신선한 채소나 치즈, 우유를 얻기는 쉽지 않다. SNAP의 제한된 액수로 신선한 음식들을 사려면 코스트코 같은 대형할인점에 가야 하는데 회원 가입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그런 매장은 교외에 있어서 자동차 없이는 갈 수가 없다. 흑인들이 많이 살고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는 치안 문제 때문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 값을 더 주더라도 식료품을 구할 수 있는 동네 가게조차 찾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그러니 플레밍 같은 사람들은 꼼짝없이 통조림을 뜯어야 한다.

볼티모어에 남아 있는 과일 마차. 애라버(arabber)라고 불리는 이 마차는 뉴욕, 필라델피아 등에서 흑인들이 애용했지만 이제 볼티모어에만 남아 있다.

볼티모어에 남아 있는 과일 마차. 애라버(arabber)라고 불리는 이 마차는 뉴욕, 필라델피아 등에서 흑인들이 애용했지만 이제 볼티모어에만 남아 있다.

그래도 이날은 장을 볼 수 있었다. 플레밍은 아무런 연고 없이 찾아온 기자를 경계하는 빛이 전혀 없다. 연립주택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좁은 복도에 방 두 개와 부엌이 한 줄로 늘어선 구조다. 방에는 창문이 없어 한낮인데도 토굴 같았다. 30대 초반의 딸과 둘이 사는 그는 대부분의 음식을 집에서 해먹는다. 플레밍은 방금 사온 양상추와 호박, 토마토를 쓱쓱 잘랐다. 그 위에 칠면조 슬라이스를 얹고 마요네즈를 뿌렸다. “우리는 이렇게 먹고 살아요.”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기자에게도 건네준다. 5분 만에 선 채로 점심을 해치운 그는 냉동실에 포장육을, 냉장실에 요거트와 양배추, 버섯, 계란을 채워넣었다.

과일은 ‘애라버’(arabber)가 동네에 올 때 살 거라고 말했다. 애라버는 말이 끄는 마차에 과일을 싣고 다니는 과일장수다. 뉴욕, 펜실베이니아 등 동부 해안 도시에서 흑인들이 했던 일이지만 동물권리운동가들의 반대와 도시에서 마구간을 관리하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볼티모어 서부 빈민가에 거의 유일하게 애라버가 지금도 남아 있다.

플레밍의 집을 나서 5분쯤 걸었을 때 저 멀리서 방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과일이 한가득 실린 노란 지붕의 마차가 왔다. 49년째 이 지역에서 애라버로 일하는 피위(65)는 “이 마차는 신선한 과일을 원하는 주민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며 딸기 한 팩을 내밀었다. 딸기 한 쿼트(약 1ℓ 부피)에 3달러로 코스트코보다 1달러가량 싸다. 5달러 지폐를 내밀자 거스름돈 대신 복숭아 두 개를 건넨다. 애라버의 과일마차는 SNAP를 받지 않기 때문에 플레밍 같은 노인들에게는 부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의 밥상](3) ‘식품사막’ 미국

볼티모어는 미국에서 시 정부로는 처음으로 ‘식품사막’ 개념을 규정하고 실태를 조사한 곳이다. 식품사막이란 지리적으로 식료품점이 멀고, 자동차가 없어 이동성이 떨어지고, 거기에 빈곤이 겹쳐 건강한 음식에 접근하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시 식품정책국과 존스홉킨스대의 ‘살 만한 미래 연구소’가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볼티모어시 인구 62만명 가운데 4분의 1이 식품사막에 산다. 도시 곳곳에 고루 퍼져 있는 식품사막은 주로 흑인 지역과 겹친다. 홀리 프레이슈탯 볼티모어시 식품정책국장은 “도시 주민들의 기대 수명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20~30년까지 차이가 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라 할 수 없다”며 “식품사막은 우리 시의 어두운 모습이지만 그 모습을 정확히 드러내야 정책적 대응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만다 부진스키 존스홉킨스대 연구원은 “식품사막은 미국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인종적으로 흑인들이, 세대별로는 어린이와 노인 등 취약 계층이 더 많이 식품사막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볼티모어시 서부 펜노스의 한 도서관. 오후 1시가 되기를 기다리던 흑인 아이들이 몰려들어왔다. “어머니들은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아이들 혼자서도 잘 먹을 수 있습니다.” 옥타비아(23)가 딸 스카일러(5)의 식사를 돕겠다며 따라 들어오다가 제지당했다. 급식 자원봉사자 키아 애크우드(19)는 스카일러를 자리로 안내했다. 방학 중인 아이들이 도서관에 무료 점심배급을 받으러 온 것이다. 스카일러도 그중 하나다.

받아든 도시락에는 베이글과 치킨샐러드, 사과 4분의 1조각, 막대치즈, 주스가 들어있다. 그는 나중에 먹으려는지 사과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베이글을 반으로 잘라 치킨샐러드를 발라 먹기 시작했다. 손놀림이 빠르다. 오늘 처음 먹는 식사다. 애크우드가 20여명의 아이들에게 “아침 먹은 사람?” 하고 물었다.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애크우드는 기자에게 “이 아이들은 대부분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b>빈민가 무료 급식</b> 여름방학에 볼티모어 빈민가의 한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이 받는 무료 점심 도시락.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주스, 치킨샐러드, 베이글, 빨대와 일회용 수저, 사과, 치즈, 우유.

빈민가 무료 급식 여름방학에 볼티모어 빈민가의 한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이 받는 무료 점심 도시락.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주스, 치킨샐러드, 베이글, 빨대와 일회용 수저, 사과, 치즈, 우유.

갑자기 남자아이 둘 사이에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마이크(10)가 에릭(9)의 막대치즈를 빼앗으려다 벌어진 일이다. 마이크는 그 벌로 5분간 밖에 나가 있다가 다시 들어왔다. “막대치즈를 원 없이 먹어봤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자원봉사자 제이다 아르카(16)는 다른 아이들 모르게 자신의 도시락에서 치즈를 하나 꺼내준다. 마이크는 두 손으로 치즈를 들어올리고는 춤을 춘다. 온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다.

식단표에 ‘1온스 흰색 미국 치즈’라 적혀 있는 막대치즈는 샐러드에 조금 들어 있는 닭고기와 함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다. 막대치즈 한 개당 단백질은 3.8g으로 식품의약국(FDA)이 권장하는 어린이 1일 단백질 섭취량 19~38g에는 훨씬 못 미친다.

방학이 되면 학교급식을 못 먹는 아이들을 위한 여름 급식 프로그램이 반경 3~4㎞ 이내에 스무 곳 가까이 운영된다니 굶주리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된다. 여름 무료급식은 볼티모어시의 재정과 기부를 받아 도서관, 교회 같은 곳에서 실시된다.

도서관을 나와 주변을 둘러봤다. 불타버린 편의점, 깨어진 창문들. 전당포와 담배 가게는 있어도 식료품점은 없었다. 넉 달 전 프레디 그레이(25)라는 흑인 청년이 경찰에 연행되다가 척추가 부러져 사망한 뒤 흑인 폭동이 일어난 곳이다.

볼티모어시가 식품사막의 ‘오아시스’라며 소개해준 펜실베이니아애버뉴의 라파예트마켓 편의점으로 갔다. 초입부터 분위기가 살벌했다. 가게 앞에서 경찰 대여섯 명이 한 흑인 남성을 에워싼 채 손으로 온몸을 훑고 있었다. 마약 단속을 하는 중이었다. 가게에 들어가니 뜻밖에 한국계 여성이 주인이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 여성은 흑인 남편 에드워드 브라운과 가게를 운영한다. 볼티모어시가 식품사막을 해소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동네 가게들을 ‘건강 가게’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다. 식품사막 대책 마련에 부심하던 볼티모어시는 구멍가게들을 건강한 식품을 파는 가게들로 키우는 방안을 생각했고, 이 가게를 1호로 선정했다. 지원이라야 냉장고와 진열대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정도이지만 이 가게들이 싼값에 건강에 좋은 음식을 공급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여주인은 말했다.

가게에는 흰색 강낭콩, 말린 완두 등 콩 종류만 10여가지가 있고 토마토, 고추, 호박, 오이도 있었다. 현미도 있었다. 이곳은 통조림만 가득한 일대 식료품 가게와 다른 모습이었다. 냉동실에는 직접 만들어 얼린 콩 수프가 가득 들어 있다. SNAP로는 즉시 먹을 수 있는 뜨거운 음식은 사지 못하도록 돼 있어 택한 편법이다. 이 여성은 한국어로 “처음에는 제가 먹으려고 비치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것을 다 어디서 조달했는지 궁금했다. 비밀은 가게 뒷마당 텃밭에 있었다. 브라운은 텃밭의 호박, 고추, 토마토를 보여주며 “아내가 없었으면 이런 일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아시스는 억척스러운 부인의 세심함, 지칠줄 모르는 건장한 남편이 만나 만들어진 것 같았다.

땅덩이가 넓은 미국에서 살다 보면 슈퍼마켓에 가기 힘든 식품사막은 도시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교외 지역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다.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주의 페어팩스에 사는 주부 후마 질리(39)도 그런 경우다. 지난달 7일 그의 집으로 찾아갔을 때 질리는 공교롭게도 20일째 라마단 금식을 하고 있었다. 질리는 “금식으로 내 육체가 고통받을 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알게 된다”며 “그 고통을 겪음으로써 신의 뜻을 더 이해하고, 금식 기간 중 내가 먹지 않은 음식을 돈이 없어서 굶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다”고 했다.

<b>도심 거주자·텃밭 이용자 ‘다른 냉장고 속’</b>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빈민가 길모어스트리트에 사는 줄리아 플레밍의 집 냉장고에 보충영양지원프로그램(SNAP)으로 불리는 푸드스탬프로 사온 인스턴트 식재료 몇 가지가 놓여 있다(왼쪽). 반면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사는 후마 질리의 냉장고 속엔 텃밭에서 키운 시금치, 오이 같은 채소가 가득하다.

도심 거주자·텃밭 이용자 ‘다른 냉장고 속’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빈민가 길모어스트리트에 사는 줄리아 플레밍의 집 냉장고에 보충영양지원프로그램(SNAP)으로 불리는 푸드스탬프로 사온 인스턴트 식재료 몇 가지가 놓여 있다(왼쪽). 반면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사는 후마 질리의 냉장고 속엔 텃밭에서 키운 시금치, 오이 같은 채소가 가득하다.

20년째 미국에서 살고 있는 파키스탄계 미국인 질리는 자기 소유의 주택에서 남편, 두 초등학생 아들과 산다. 실내장식업을 하는 남편의 일이 많지 않을 때에는 SNAP에 의존하기도 한다. 집이 있으니 중산층이라 부를 수도 있고, 가계소득이 들쭉날쭉하다는 점에서 중산층의 아래에 위치한다고 할 수도 있다.

몇 년 전 자동차 정기점검을 통과하지 못했을 때 그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장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도 걸어가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에 있어, 이웃들의 차를 빌려타야 했다. 미국에 와서 내내 질리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비싼 외식비와 정크푸드다. 올해 7살, 8살인 두 아들에게 “쓰레기를 먹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벌이로는 매달 식비지출이 300~400달러로 한정돼 있으니 선택지가 없었다. ‘건강한 식탁’과 ‘예산 제약’ 사이에서 4년 전 시작한 일이 텃밭 가꾸기다.

냉장고에는 질리가 집에서 키운 오이, 콩, 호박, 토마토가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이, 콩 씨앗을 말려 이듬해 다시 심는다. 토마토는 가지를 쳐내 수경재배한 뒤 이듬해 봄 다시 심는다. 유기농 식료품 체인인 홀푸즈마켓과 비교하면 식료품 구입비가 3분의 1로 줄어든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뒤 집에 있는 시간 중 2~3시간 정도를 텃밭 가꾸기에 써야 한다. 물도 많이 쓰지 않는다. 양동이와 컨테이너에 빗물을 받아 사용한다. 거름도 직접 만들어 쓴다. 가정용품 대형매장인 홈디포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 원예코너에서 근무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홈디포 원예코너에 가면 텃밭을 가꾸는 데 필요한 공구, 울타리, 컨테이너 화분, 토양, 그리고 각종 채소와 과일 씨앗들을 구할 수 있다.

질리의 가족들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돈도 돈이거니와 건강에 좋지 않아서다. 빵, 피클, 피자 모두 집에서 만든다.

<b>건강한 식탁을 위해…</b> 미국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주의 페어팩스에 사는 주부 후마 질리가 지난달 7일 텃밭에서 콩과 오이를 따고 있다. 20년째 미국에서 살고 있는 파키스탄계 미국인인 질리는 두 아들에게 정크푸드를 먹이고 싶지 않아 마당의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키운다.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건강한 식탁을 위해… 미국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주의 페어팩스에 사는 주부 후마 질리가 지난달 7일 텃밭에서 콩과 오이를 따고 있다. 20년째 미국에서 살고 있는 파키스탄계 미국인인 질리는 두 아들에게 정크푸드를 먹이고 싶지 않아 마당의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키운다.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질리의 식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육류와 유제품이다. 그는 육류는 반드시 이슬람 율법대로 도축된 ‘할랄’ 제품을 산다. 미국의 식문화에 대해 물었다. “너무 많은 음식을 만들어 상당량을 버리고, 어디서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음식을 배가 터지게 먹고는 병원에 가고 심지어 죽기도 하는 게 미국의 음식문화인 것 같아요.”

미국에서 질리처럼 텃밭을 가꾸는 사람은 드물지 않다. 기자가 2년간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동네에도 텃밭이 눈에 띄게 늘었다. 전국가드닝협회의 지난해 집계에 따르면 세 가구에 한 가구 꼴로 자신이 키운 작물을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늘어나는 텃밭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2012년 플로리다 올랜도에서는 한 주민이 앞마당을 채소밭으로 바꿨다가 미관을 해쳐 동네 집값을 떨어뜨린다는 이웃의 신고로 공방을 벌였고, 미시건 오크파크에서는 여섯 자녀를 둔 주부가 텃밭을 갈아엎으라는 명령을 거부해 93일간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시 당국이 텃밭을 규제하는 법을 둔 경우, 대개는 거대 종자기업들의 로비가 뒤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제 대통령 부인이 백악관 앞마당에 텃밭을 가꾸는 시대다. 6년간 백악관 텃밭을 가꿔온 미셸 오바마가 사람들의 먹거리에 대한 인식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지역 농산물을 파는 식료품점에 가면 미셸 오바마의 저서 <미국에서 기른(American Grown·사진)>과 함께 토종 종자 목록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중산층이 모여사는 버지니아 비엔나시 메이플애버뉴마켓에서 지역 농산물을 파는 새라 게르는 직접 농사짓는 일이 얼마나 이로운지, 1940년대 이전의 토종 종자를 찾아내고 공유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왜 1940년대인가? 몬산토나 듀폰 같은 거대 농생명공학 회사들이 대규모 화학농법에 맞춰 종자를 개량해 특허를 내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곳곳에 퍼져 있는 식품사막에서 미국의 절망을, 차츰 늘어나는 텃밭에서 희망을 읽었다. 식품사막과 텃밭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것 같았다.

▲ ‘식품사막’(Food Desert)

① 반경 400m 이내에 슈퍼마켓이 없고 ② 중위가구 소득이 연방 빈곤선의 185% 미만이고 ③ 30% 이상의 가구가 차가 없으며 ④ 건강식품지수가 낮은 지역 (전체 도시 거주민의 4분의 1이 식품사막에 거주)


■ 특별취재팀 국제부 구정은·김세훈·남지원, 모바일팀 정대연, 워싱턴 손제민·베이징 오관철·도쿄 윤희일 특파원, 사진부 강윤중 기자

<취재 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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