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난민 확산, 나라 안 따진다

박하얀 기자

전 세계 홍수·산불·태풍 등

기후 변화 할퀸 곳에 난민

분쟁으로 인한 난민의 3배

2050년 안에 12억명 전망도

<b>산불 연기 뒤덮인 하늘, 떠나는 사람들</b> 산불과 연기로 하늘이 붉게 물든 그리스 에비아섬에서 지난 8일(현지시간) 주민들이 여행가방 안에 급히 짐을 꾸려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에비아 | AP연합뉴스

산불 연기 뒤덮인 하늘, 떠나는 사람들 산불과 연기로 하늘이 붉게 물든 그리스 에비아섬에서 지난 8일(현지시간) 주민들이 여행가방 안에 급히 짐을 꾸려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에비아 | AP연합뉴스

호랑이가 사는 유일한 맹그로브숲인 방글라데시 남서부 슌도르본의 마지막 두 유인도는 더는 주민들로 북적이지 않는다. 사이클론이 2년 동안 네 번이나 섬을 덮치면서 이재민 3만4000명이 섬을 떠났다. 기후변화는 이들 삶의 터전을 앗아갔고 극심한 빈곤에 내몰린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이주를 선택했다.

“우리의 땅, 동물, 집, 모든 것이 불타버릴 것입니다. 우리에게 또 어떤 것이 있습니까.”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터키 남부 해안의 카칼라르 마을 주민 얀 카카르(56)는 CNN에 이렇게 말했다.

기후변화가 훑고 지나간 자리엔 사람이 있었다. 기후난민의 등장이다. 기후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은 정립돼 있지 않지만, 세계은행은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해수면 상승, 폭풍 해일 등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생존을 위협받아 강제로 이주해야 하는 사람들을 기후이민자로 정의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난민감시센터(IDMC)에 따르면 기후난민이 분쟁난민보다 3배가량 더 많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18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2050년 안에 기후 관련 사건으로 최소 12억명이 실향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잇따른 허리케인이 닥친 과테말라에서는 주민들의 미국 이주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국제이주기구 조사 결과 과테말라·멕시코 국경 근처 산악 지역 알타베라파스와 우에우에테낭고에서 허리케인으로 집을 잃은 가구의 15%는 지난 5년 동안 최소 한 명의 가족 구성원이 이주했거나 이주를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밝힌 이주 동기 상위 5개 중에는 자연재해와 기후변화로부터의 탈출이 있었다.

기후난민은 특정 국가에 한정되지 않는다. 올해 독일, 중국, 미얀마 등에서는 대규모 홍수로 이재민이 100만명 이상 발생했다. IDMC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에만 미국에서 약 171만명이 기후재난으로 이재민이 됐다. 산불이 강타한 그리스 에비아섬에서는 수천㏊의 땅과 집, 사업체들이 파괴되고 2000명 이상이 대피했다. 터키도 최악의 산불로 8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집을 떠났다. 카칼라르 인근 마을의 농부 나멧 아틱(37)은 “우리의 생활은 숲 그 자체다. 불에 타면 아무것도 돌아올 수 없다”고 CNN에 말했다.

기후난민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더 빈번하고 강렬해지는 극한기상 현상은 토지 황폐화로 인한 식량 부족, 기아 문제 등을 야기해 이주 수요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후난민을 지원하는 대응 시스템은 갖춰져 있지 않다. 70여년 전에 마련된 난민의 국제적 정의에 대한 재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마 프란시스 국제난민지원프로젝트(IRAP) 전략가는 “20세기에는 전쟁과 갈등으로 많은 사람이 이동했고 그것은 여전한 현상이지만, 이제는 기후변화와 관련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동하고 있다”며 “추세를 반영해 법이 재정비돼야 한다”고 말했다.

IRAP는 이에 따라 최근 조 바이든 미국 정부에 기후난민과 관련해 의회 동의 없이 취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조치들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타격을 받는 국가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임시 보호 지위 사용 등을 다뤘다. 기후변화가 미국법에 따라 난민 지위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미 법무부의 의견도 첨부했다. 바이든 정부는 이달 마감 예정인 ‘기후변화에 따른 이주에 대한 부처 간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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