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적' 미국·탈레반, '공동의 적' IS에 맞서 손 잡나

박하얀 기자
아프간을 떠나는 마지막 미군. 미국 82공수사단 사령관인 크리스 도나휴 미 육군 소장이 8월31일 아프가니스탄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떠나기 위해 C-17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카불 | 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간을 떠나는 마지막 미군. 미국 82공수사단 사령관인 크리스 도나휴 미 육군 소장이 8월31일 아프가니스탄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떠나기 위해 C-17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카불 | 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2.0 시대를 맞은 가운데 ‘20년 전쟁’을 치른 미국과 탈레반이 ‘공동의 적’인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 국가(IS)에 맞서기 위해 협력 모드로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지난 1일(현지시간) 국방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탈레반이 변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면서도 아프간에서 IS 등의 테러 공격과 관련해 탈레반과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31일 “미국과 탈레반이 이미 암묵적인 협력을 실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이익의 문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지난달 아프간 카불 공항에서 벌인 구출 작전에서 탈레반의 통제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을 취재진이 지적하자 이렇게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한 상호 이익은 미국이 탈레반과 구축하려는 새로운 관계 지형을 시사한다.

NYT는 미국과 탈레반 간의 향후 관계는 IS의 위협에 이들이 얼마나 깊이 협력하는지에 따라 향방이 갈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IS의 위협이 커지면 전략적인 협력 관계를 도모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미군과 동맹국 군대가 모두 철군한 아프간에서 미국은 테러 대응 전략을 새로 수립해야 한다. 미국은 아프간이 국제 테러리스트들의 잠재적 피난처라고 보고 있다. IS-K(이슬람국가 호라산) 등의 테러를 억제하려면 현지에 있는 탈레반과 테러 관련 정보를 공유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미국은 지난달 카불 공항에서 미군 13명을 비롯해 민간인 2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IS-K의 폭탄 테러 이후 탈레반과 정보를 교환하는 등 ‘새로운 현실’을 경험했다.

탈레반도 국제사회로부터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전처럼 미국과 반목할 수 없다. 아프간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하는 해외 원조가 중단돼 경제가 무너져내린 상황에서 미국의 개입 없이는 국가 안정이 보장되기 어렵다. 미국에 협력해 IS의 테러 활동을 감시함으로써 외국 정부의 지원을 되돌릴 수 있는 당위성도 확보할 수 있다. 탈레반은 무엇보다도 새 정부의 연착륙을 위해 IS의 테러를 감시해야 할 내재적 필요도 있다. 초국가적 칼리프 체제(이슬람 신정일치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IS는 탈레반의 이슬람 통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하며 이들이 미국과 협상의 여지를 둔 것을 두고 “배교자”라고 비난한 바 있다.

하지만 20년 전쟁을 치른 미국과 탈레반 간 협력에 회의적인 시선도 짙다. 탈레반과 IS 간 연결고리가 되는 테러 조직들, 탈레반의 여성 인권 보장 여부 등이 관계의 변수로 지목된다. 탈레반과 IS가 공식적으로는 전면 갈등 관계에 있지만, 탈레반 연계 조직인 하카니를 통해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알카에다를 통제하겠다는 탈레반의 약속도 흔들리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우리가 취하는 모든 조치는 탈레반이 이끄는 정부의 발언이 아니라, 이들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탈레반은 실리와 이념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다”며 “탈레반의 새 정부는 실패하고, 탈레반과 다른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조직들 간의 투쟁이 발발해 국제 안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AP통신은 미군 철수 당시 탈레반과의 협력을 두고 “양측 모두에 편의상 문제였으며 앞으로 정기적인 관계를 추구하거나 심지어 원할 것이라는 신호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NYT는 “미국과 탈레반은 협력과 갈등, 타협과 경쟁 사이에서 몇 년, 심지어 수십 년을 보낼 수도 있다”며 “서로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도, 배제할 수도 없는 관계를 관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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