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천연가스 투자 ‘친환경’ 분류한 EU… 독일 "절대적으로 잘못됐다"

박용하 기자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형상화한 가면을 쓴 환경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원전 정책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파리 |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형상화한 가면을 쓴 환경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원전 정책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파리 |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논란 끝에 원자력 발전과 천연가스 발전에 대한 투자를 친환경 투자로 잠정 분류했다. 집행위의 방침이 향후 EU 의회에서 최종 확정되면 국제사회의 탈원전·탈석탄 기조에 적잖은 여파가 미칠 전망이다. 독일 등 탈원전 국가들과 환경단체들은 EU의 방침에 강하게 반발했다.

로이터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1일(현지시간) EU 집행위가 회원국들에게 보낸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 개정 초안을 입수해 자세한 내용을 소개했다. EU는 녹색분류체계를 통해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활동을 정의하고, 친환경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산업을 규정하고 있다. 원전과 가스발전 투자의 친환경 분류 여부는 2019년부터 검토했으나 회원국들간 찬·반이 갈려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집행위는 이번 초안에서 신규 원전과 가스발전 사업이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이에 대한 투자를 친환경으로 분류하도록 했다. 원전은 2045년 이전에 허가를 받는 원전이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계획과 이를 실행하기 위한 자금·부지를 확보하면 친환경으로 분류할 방침이다. 가스발전소는 전력 1킬로와트시(kWh)를 생산할 때 나오는 온실가스가 270gCO2eq(이산화탄소 환산량) 미만이고 기존의 화석연료 발전소를 대체하는 조건이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2030년 12월31일까지 건축 허가를 받으면 친환경으로 분류된다.

EU가 원전과 가스발전을 친환경이라고 분류한 데는 지난해 발생한 에너지 위기가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유럽은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이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화석연료의 수급 불안 사태에 당면했다. 이 때문에 가스 등 에너지 가격은 급등했고,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의 자리를 대체하기 전까지 원전과 가스발전을 과도기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집행위는 이번 초안에서 “과학적 조언과 현재의 기술 진보, 에너지 전환을 위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회원국 전반의 다양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미래로 전환하는데 가스와 원자력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U 집행위의 초안은 27개 회원국과 전문가 패널의 면밀한 검토와 수정 논의를 거쳐 이달 중순쯤 확정된다. 그 뒤 EU 의회에서 의결되면 1조유로(약 1348조원) 규모의 유로 그린딜 예산이나 녹색채권을 이들 사업에 투입할 수 있게 된다. EU의 방침에 동조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면 후쿠시마 사태 이후 위축되던 원전 산업에 반전이 이뤄질 수 있다.

다만 핵폐기물 처리 문제 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앞서 EU 집행위 공동연구센터(JRC)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원전의 활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원전 가동에 따른 사고나 핵폐기물 저장과 관련된 위험성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집행위는 이번 분류체계에서도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계획과 이를 위한 부지 확보를 친환경 분류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이 조건이 충족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원전과 가스발전에 투자금이 쏠리면 재생에너지 산업 발전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앞서 영국 서식스대와 독일 국제경영대학원(ISM) 연구팀은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에서 “원전에 대한 대규모 신규 투자가 이뤄지면 재생에너지가 기후변화에 대응할 능력과 이득이 억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린피스도 이날 성명에서 “(EU의 결정은)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 100%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방해하고 기후 약속에 대한 EU의 실천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집행위의 결정으로 EU 내 친원전과 탈원전 국가들의 갈등이 심화될 조짐도 보인다. 탈원전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독일은 EU의 초안 공개 이후 오스트리아 등과 대응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테피 렘케 독일 환경장관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집행위의 초안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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