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계에 손내미는 러시아… '내부 분열' 유도하나

박용하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6일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관저에서 이탈리아 기업인들과의 화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모스크바 | 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6일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관저에서 이탈리아 기업인들과의 화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모스크바 |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서방 국가들과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가 최근 유럽연합(EU) 재계와의 접촉점을 넓히고 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 에너지와 경제 문제를 고리로 정부와 민간 부문의 분열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논란이 된 회의는 26일(현지시간) 이뤄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이탈리아 재계 관계자들의 화상 회의였다. 이탈리아-러시아 상공회의소와 이탈리아-러시아 비즈니스위원회가 주최한 이날 회의에는 푸틴 대통령을 비롯해 러시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이탈리아에선 최대 에너지 기업 에넬(Enel)과 양대 은행 인테사 산파올로·우니크레디트, 보험사 제네랄리 등 16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했다.

회의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언급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이탈리아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러시아의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에 이탈리아 기업들이 일익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은 러시아 국영가스업체인 가즈프롬과의 장기 계약을 통해 유럽 시장가격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가스를 구매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에너지 분야의 다른 영역에서도 러시아와 이탈리아의 비즈니스 파트너쉽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회의를 앞두고 이탈리아 정부와 재계는 물밑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 등을 이유로 회의를 취소하거나 기업들이 참석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재계는 회의를 예정대로 진행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엄중한 상황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며 기업들을 비판했다.

일각에선 러시아가 이탈리아의 기업들과 접촉한 것을 두고 에너지와 경제를 고리로 EU 내부의 분열을 노린 것이라고 분석이 나왔다. EU는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예고했으나 높은 천연가스 의존도는 잠재적 취약점으로 꼽혀왔다.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차단하면 가스 가격이 10배 이상 폭등하고, 수백만명이 한파에 시달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기업과 가계 등 민간부문이 러시아와의 관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탈리아 국제문제연구소의 나탈리 토치 소장은 “푸틴은 기업 부문을 유럽의 정치적 대응을 완화할 수 있는 통로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특히 이탈리아를 나토 동맹 중에서도 ‘약한 고리’로 본다는 분석도 있다. 500여개의 이탈리아 기업들이 러시아에 진출해 있으며 북극 가스전 개발에 참여한 기업도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대기업들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당시 러시아에 대한 과도한 제재가 이뤄지지 않도록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민간 부문에 대한 러시아의 공략은 앞서 독일에서도 포착됐다. 러시아 외교관계자들은 지난 13일 독일상공회의소 회원사들과 화상회의를 열었으며 그 뒤 독일 대기업들은 정부에 러시아에 대한 강경 대응보다 외교적 해결에 나서줄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경제적 파장이 심화되면 민간 부문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의 천연가스 재고량은 이날 전년 같은 기간보다 크게 낮은 40%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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