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반성소수자법 도입에 ‘비상사태’에 처한 미국 LGBTQ

최서은 기자
미국 디즈니월드에 방문한 사람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무지개가 담긴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디즈니월드에 방문한 사람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무지개가 담긴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올해 들어 미국에서 성소수자 차별 법안이 잇따라 도입되면서 미국에 사는 성소수자(LGBTQ)들이 비상사태에 직면했다는 경고가 나왔다.

6일(현지시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성소수자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캠페인(HRC)은 미국의 주정부가 LGBTQ를 표적으로 삼는 정책을 시행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미국에 사는 LGBTQ들이 비상사태에 처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HRC는 성명에서 “올해 주의회를 휩쓸고 있는 반LGBTQ 입법으로 전례없는 위험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켈리 로빈슨 HRC 회장은 “LGBTQ 미국인들은 비상사태 속에서 살고 있다”며 “수백 만명의 LGBTQ 커뮤니티가 직면한 위협은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위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LGBTQ에 대한 폭력을 초래하고, 더 안전한 국가를 찾아 삶의 터전을 떠나도록 강요하며,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 성소수자 혐오 물결을 촉발한다”고 지적했다.

HRC에 따르면 올해 이미 500개 이상의 반LGBTQ 법안이 도입돼 지난 2015년 115개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트랜스젠더 반대 법안이었다. 헤리티지 재단, 자유수호연맹 등 미국 보수 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런 법안을 강력히 요구해왔고, 이러한 법안이 법적 분쟁에 휘말리면 이들이 재정 지원을 해왔다.

세계 곳곳에서 열린 LGBTQ 퍼레이드 행사.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곳곳에서 열린 LGBTQ 퍼레이드 행사. 로이터연합뉴스

특히 공화당이 장악한 주에서 반성소수자 법안이 확산하고 있다. ‘리틀 트럼프’라고 불리는 공화당 대선 주자 론 디샌티스가 주지사로 재임 중인 플로리다주는 LGBTQ 차별법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주 가운데 하나다. 플로리다주는 일명 ‘게이라고 말하지 마’ 법을 제정해 교실에서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금지해 글로벌 미디어 기업 월트디즈니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연방법원은 이날 이 법안 시행을 일시 중단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디샌티스 측은 “이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계속해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공화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켄터키주는 트랜스젠더 미성년자의 성별 재지정 수술을 금지하고, 생물학적 성이 아닌 성 정체성에 따라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며, 학교에서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대해 토론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트랜스젠더 반대 법안을 도입했다. 올해 들어 미성년자 성별 재지정 수술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한 주는 켄터키를 포함해 앨라배마, 아칸소, 애리조나, 조지아, 아이오와 등 최소 17개에 이른다.

테네시주에서는 지난 3월 미국에서 처음으로 드래그쇼(여장 남성 공연)를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공화당 소속 빌 리 테네시주 주지사는 공공장소 또는 미성년자가 볼 수 있는 장소에서의 드래그 쇼 진행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고, 위반할 경우 최대 징역 6년 형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캔자스주에서는 지난 4월 트랜스젠더가 성 정체성에 따라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미국 내 최소 8개 주에서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사용 금지법을 제정했지만, 대부분 공립학교 등에 제한적으로 적용됐다. 그러나 캔자스주의 이 법안은 운동시설의 탈의실, 가정폭력 보호소, 성폭행 위기 센터, 교도소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면서 미국 내 가장 강력한 트랜스젠더 규제법 중 하나로 꼽힌다.

이같이 반LGBTQ 법안이 쏟아지는 것은 내년 대선을 앞둔 공화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의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화당이 다가오는 선거에서 지지층을 결집하는 도구로 트랜스젠더 반대법을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계산을 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들은 분석했다.

LGBTQ를 향한 혐오와 위협은 이미 미국 내에서 확산하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의달인 6월 미국 ‘프라이드 먼스’ 행사에서 보수 성향 시민들이 반발하며 갈등이 번지고 있다. 지난 2일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선 성 소수자 관련 행사가 열리는 데 반대하는 학부모들과 찬성하는 시위대가 서로 충돌하는 일이 발생했다. 온라인에서는 몇 주 전부터 이러한 반대 시위가 계획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학교에서는 지난달 한 트랜스젠더 교사가 걸어놓은 무지개 깃발이 불에 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반LGBTQ 시위를 하는 사람들. AP연합뉴스

미국 마이애미에서 반LGBTQ 시위를 하는 사람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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