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물도 없다···말라 비틀어지는 카호우카 댐 상류 지역

정원식 기자

우크라 헤르손 댐 수위 낮아져

와인 농장·야금공장 생산 중단 등

산업 타격 및 생태계에 치명타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인근의 드니프로 강이 지난 6일 댐 폭파 여파로 수위가 내려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인근의 드니프로 강이 지난 6일 댐 폭파 여파로 수위가 내려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헤르손주의 카호우카댐 폭파로 댐 하류 지역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주거 지역 대부분이 침수되고 최소 14명이 숨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다행히 댐 상류 지역인 자포리자 인근은 댐 붕괴에 따른 홍수는 피했지만, 카호우카 저수지의 수위가 내려가면서 생활 기반이 송두리째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반 가정과 농업, 산업 등 주민 활동의 거의 전 영역이 75년 전에 건설된 카호우카 저수지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이 지역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생명줄과도 같은 카호우카 저수지의 수량은 카호우카댐이 폭파된 이후 하루에 약 1m가량씩 낮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1일 “댐 상류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재난이 느린 속도로 펼쳐지고 있다”고 전했다.

자포리자주 프리드니프로우스케 마을에 사는 테티아나(64)는 NYT에 아침부터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모든 것이 죽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의 식물에 물을 주는 데 사용했던 파이프에도 물이 말라버렸다.

카호우카댐 위쪽 지역에서 와인농장을 경영하는 안드리 스트릴레츠는 저수지에 물이 빠지면서 생길 미시적인 기후변화가 포도 재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어떤 품종의 포도가 살아남고 어떤 품종이 살아남지 못할지 일주일 안에 알게 될 것”이라면서 “특이한 몇몇 품종들은 습기를 머금은 공기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저수지 주변 산업도 큰 타격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최대 야금공장 아르첼로르미탈 크리비이리흐는 댐 붕괴 직후 물 부족을 이유로 철강 생산을 중단했다.

저수지 인근 마을들은 저장해둔 물로 며칠은 버틸 수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트럭을 이용해 물을 공급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주민들은 그러나 장기적으로 생계에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농업 당국은 이번 댐 붕괴로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 농지 가운데 5000㎢가 황무지로 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위가 내려가면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갯벌과 모래톱이 물 밖으로 드러나는 등 주변 풍경도 변했다. 올렉시 바실리우크 우크라이나 자연보호그룹 대표는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최악의 환경 재난이 될 것”이라면서 민물고기는 대량으로 바다로 쓸려나가고 물이 말라버린 진흙에서 조개가 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실리우크 대표는 또 물이 말라버리면 인근 공장 지대에서 저수지로 흘러들어 바닥에 고여 있던 오염 물질들이 바람을 타고 흩어질 수 있다면서 들풀 따위를 심는 등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빈 저수지가 독성 건조지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 최대 원전인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냉각수 공급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카호우카댐을 관리하는 국영 우크르하이드로에네르고의 이호르 시로타 대표는 카호우카 저수지의 수위가 지난 8일 저녁 냉각수 공급을 위한 임계치 이하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각수 공급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지만 주민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한 50대 문학교사는 NYT에 “제때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 발표를 주의 깊게 듣고 있다”면서 “가방을 싸두고 박스에 음식을 담아놨다. 방사능에 대비해 물도 준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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