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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하는 ‘거리의 좀비’…중남미에 무력 투입한다고 사라질까

최서은 기자

미국 ‘공공의 적 1호’

마약과의 끝없는 전쟁

[사이월드] 실존하는 ‘거리의 좀비’…중남미에 무력 투입한다고 사라질까

50여년간 미국 최대 난제
중독자 넘쳐나는 켄싱턴
사실상 정부도 단속 포기

닉슨 시절부터 현재까지
멕시코·콜롬비아 상대로
통로 차단·마약왕 사살 등
대대적 단속에도 ‘건재’

‘군사력으로 카르텔 소탕’
대선 공약에 입법도 추진
멕시코, 미 총기 수출 비난
“카르텔에 돈·장비 제공”

최근 급증하는 펜타닐
약물 과다복용 사망 1위로
중국도 개입 ‘거대 산업화’

일명 ‘좀비 거리’로 불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에서 한 마약중독자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비틀거리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제공

일명 ‘좀비 거리’로 불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에서 한 마약중독자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비틀거리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제공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에는 일명 ‘좀비 거리’가 있다. 수천명의 마약중독자와 마약상이 길거리에 넘쳐나는 곳으로, 마약에 중독된 이들이 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관절이 꺾인 채 좀비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곳에선 시 차원에서 중독자에게 무료로 주사기를 나눠준다는 증언도 나왔다. 마약중독자들이 너무 많아 정부가 사실상 단속을 포기했고, 감염성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주사기라도 안전한 걸 쓰라는 의미에서 나눠줬다는 것이다.

현재 마약은 미국에서 가장 중대한 사회문제 중 하나다. 미국 국립 약물남용통계센터(NCDAS)는 2020년 기준 12세 이상 인구 중 절반이 불법 약물을 투약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18~49세 청장년층 사망 원인 1위가 약물 과다복용이다.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한 해 10만명을 넘어섰으며, 2000년 이후 누적 사망자는 100만명에 이른다.

미국은 마약 근절 대책 중 하나로 멕시코,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와의 국경단속을 강화하겠다고 천명했다. 미 공화당 대선 주자들은 마약 카르텔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멕시코에 미국 군사력을 투입하겠다는 공약까지 앞다퉈 내놓고 있다. 미국에 들어오는 마약 중 다수는 이들 국가로부터 유입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멕시코와 콜롬비아만 소탕한다고 해서, 이 길고 긴 마약과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중남미 장악한 ‘마약 카르텔’

중남미 지역이 마약 공급처의 대명사가 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곳에 대마초, 양귀비 등이 처음 전파된 것은 스페인 정복자와 일자리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중국인 노동자들로부터였다. 19세기 말부터 멕시코에서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마약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으로 흘러들어갔다. 이후 베트남 전쟁에서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던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된 미국 참전 군인들이 주된 수요처 중 하나가 됐다.

마약중독 문제가 심각해지자 19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1973년 마약 제조, 유통, 밀수 및 자금세탁 등 마약 단속을 전담하는 미국 마약단속국(DEA)이 창설됐다. 미국 정부는 국내 마약 단속뿐 아니라 국경 넘어 멕시코에서도 대대적인 마약 카르텔 소탕 작전에 나섰다. 멕시코에 헬기를 제공해 마리화나 재배지를 초토화시킨 일명 ‘콘도르 작전’이다.

이로 인해 멕시코에서 마약 생산이 다소 주춤해지자, 이웃 국가 콜롬비아가 새로운 마약 거점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콜롬비아에서 제조된 코카인이 미국 마이애미를 통해 다량 유입됐다. 이 과정에서 코카인 유통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콜롬비아 최대 마약 밀매 조직 ‘메데인 카르텔’이 탄생했다. 이 카르텔의 수장이 바로 넷플릭스 유명 시리즈 <나르코스>의 실제 모델인 파블로 에스코바르다.

[사이월드] 실존하는 ‘거리의 좀비’…중남미에 무력 투입한다고 사라질까

이 당시 그의 추정 자산은 현재 가치로 약 33조원에 달해,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 7대 부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에스코바르는 ‘은 아니면 납’(Plata o Plomo), 즉 돈(뇌물) 아니면 총알(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방식으로 경찰, 판검사, 공무원, 정치인 등을 매수했다.

이에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1980년대 또 한번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콜롬비아에서 마이애미로 들어오는 밀매 통로를 차단했다. 그러자 이번엔 멕시코의 마약 유통 루트가 다시 활성화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수차례에 걸쳐 ‘마약과의 전쟁’을 치른 후에도 마약 카르텔은 좀처럼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 DEA가 콜롬비아·멕시코 정부와 공조해 1994년 ‘메데인 카르텔’의 보스인 에스코바르를 사살하고, 2014년에는 멕시코 ‘시날로아 카르텔’의 보스인 마약왕 ‘엘차포’ 호아킨 구스만에 이어 올해 초 그의 아들 오비디오 구스만까지 체포하는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2010년 이래로 멕시코의 주요 마약 카르텔 숫자는 거의 줄지 않고 있다. 2022년 세계에서 가장 살인율이 높은 인구 30만명 이상 도시 1~8위를 멕시코가 싹쓸이했는데, 이는 모두 그 지역을 장악한 마약 카르텔 탓이다.

미국 “멕시코에 군사력 투입해야”…멕시코 “미국산 총기 책임져야”

[사이월드] 실존하는 ‘거리의 좀비’…중남미에 무력 투입한다고 사라질까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약 문제는 다가오는 미국 대선에서도 주요 화두 중 하나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팀 스콧 상원의원 등 공화당 대선 주자들은 멕시코에 미국 군사력을 투입해 마약 카르텔을 소탕해야 한다는 주장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사실상 전쟁 선포와 다를 바 없다.

대선 주자들뿐 아니라 의회에서도 공화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마약 카르텔을 타깃으로 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미 하원에는 마약 카르텔에 군사력 사용을 승인하는 내용의 법안이 제출됐고, 상원에서는 마약 카르텔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자는 법안도 추진되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당연히 이 같은 움직임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멕시코는 주권국가로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미 의원들은 확실히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내에서도 무력으로는 마약 카르텔을 근절하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 남부 국경을 통한 이민자 급증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특히 중국이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힘을 쏟는 상황에서 우방인 멕시코와의 관계 악화는 미국으로서도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당선될 경우 실제 마약 카르텔과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5월 마크 에스퍼 전 국방부 장관이 출간한 회고록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멕시코의 마약 제조시설을 미사일로 폭격하자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을 단순히 중남미 마약 카르텔의 피해자로만 볼 수 있을까. 대부분의 마약 소비는 미국에서 이뤄지지만, 정작 각종 범죄에 휘말리는 곳은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다. 미국에서 발생하는 마약 관련 사망 사건이 자발적인 마약 ‘투약’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중남미에서는 미국에 마약을 공급하는 마약 카르텔의 조직범죄로 인해 마약과 관련 없는 애먼 시민들이 다수 희생되고 있다.

멕시코에서 2022년 1월 한 달 동안에만 마약 카르텔 연관 범죄로 사망한 숫자는 614명에 이른다. 멕시코의 마약 관련 강력 사건은 대부분 총기 사건이지만, 멕시코에서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총기 판매상은 1곳뿐이다. 이에 비해 미국의 총기 판매 허가업체는 6700개에 이른다. 2007년부터 2011년 사이 멕시코의 마약 관련 사건에서 사용된 총기의 약 70%는 미국에서 밀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멕시코 주재 미국대사 역시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5년 총기 관련 업자에게 총기 사고나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을 금지하는 내용의 ‘무기 합법거래 보호법’이 발효되면서 이를 근절하기도 어려워졌다. 미국은 멕시코로부터 마약을 사들이는 동시에 총기를 수출함으로써 멕시코의 폭력 사태를 심화시키고 있다. 마약 소비자이자 무기 공급자인 미국이 사실상 중남미 마약 카르텔에 금전과 장비를 모두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멕시코 정부는 2021년 미국의 대형 총기 제조사들을 상대로 100억달러(약 14조25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멕시코 국경으로 불법 유통될 것임을 알면서도 총기를 판매해 밀수 방지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미국 법원은 명백한 증거가 없고, 현행법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모르핀 100배’ 펜타닐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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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화나와 코카인을 상대로 수십년간 벌여왔던 ‘마약과의 전쟁’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그리고 이 전쟁은 이제 오히려 더 복잡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바로 펜타닐과의 전쟁이다.

펜타닐은 암환자 등을 위한 의료용 진통제로 처음 사용됐다. 2000년대 전후로 제약회사들이 각종 로비와 허위광고 등으로 시중에 펜타닐을 많이 풀면서 중독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펜타닐의 중독성과 환각 효과는 헤로인의 50배, 모르핀의 100배 정도로 강력하며 단 2㎎ 정도만 복용해도 사망에 이를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이다. 게다가 다른 마약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확산 중이다. 현재 미국에서 약물 과다복용 사망자의 80%가 펜타닐로 인한 중독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워싱턴시는 지난 4월 곳곳에 펜타닐 해독제를 제공하는 무료 자판기를 설치했다. 약품에 펜타닐이 들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테스트기도 함께 제공한다. 각급 학교에 직접 마약 해독제를 공급하는 지역도 늘고 있다. 중고등학교에서 펜타닐 복용으로 인한 사망 사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 브랜드 초콜릿이나 캔디 포장지에 펜타닐을 담아 유통시키거나 젤리나 일반 진통제 등에 펜타닐을 덧씌워 판매하는 사례도 크게 늘고 있다.

문제는 펜타닐이 글로벌 분업화된 일종의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하면서 단속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펜타닐 제조에 필요한 화학 성분인 ‘전구체’의 최대 생산국은 중국이다. 멕시코 카르텔은 중국에서 생산된 원료를 밀수해 멕시코에서 합성 및 제조 과정을 거쳐 미국으로 유통하고 있다.

이 때문에 펜타닐 단속은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기도 했다. 펜타닐 거래를 막기 위해 힘을 모으기로 합의한 것은 이번 회담의 최대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은 멕시코와도 펜타닐 문제에 관해 공조를 이어가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지난 5~7일 멕시코를 방문, 오브라도르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주요 인사들과 만나 펜타닐 문제 대응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을 잠식한 마약 문제는 다른 대륙으로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한 해 350만명이 마약을 투약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몇년 전까지 마약 청정국이라 불렸던 한국의 추이도 다르지 않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2년 국내 마약류 사범은 1만8395명으로, 통계가 파악된 30년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4년 전과 비교해 8배 증가했고, 전년도와 대비해서도 13.9%나 늘었다. 올해 9월까지 적발된 마약사범은 역대 처음으로 2만명을 넘어섰다. 연구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 범죄 암수율은 28.57배로 알려졌는데, 이를 적용하면 지난해 기준 국내 마약 사용자는 52만명이 넘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미국만큼 펜타닐이 주요 약물로 자리 잡진 않았지만, 미국에서 순식간에 펜타닐이 약물 과다복용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한 것을 고려하면 국내에서도 빠르게 퍼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 7월 미 NBC뉴스는 미국이 벌인 역대 최장 전쟁은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베트남 전쟁도, 이라크 전쟁도 아닌, “5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4월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선언한 한국 정부도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을 내놓는 등 범정부 차원의 강력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시작된 ‘마약과의 전쟁’은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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