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 지지자들 ‘정오 시위’···죽은 나발니, 푸틴에 마지막 일격

정원식 기자
17일(현지시간) 정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줄을 서 있다. AP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정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줄을 서 있다. AP연합뉴스

“오전 11시55분까지는 아무도 줄을 서지 않았는데 낮 12시1분이 되자 갑자기 80명이 줄을 섰다.”

러시아 대선 마지막 날인 17일(현지시간) 러시아 독립언론 메디아조나가 전한 이날 정오 모스크바의 한 투표소 앞 풍경이다.

모스크바타임스와 메디아조나 등 현지 매체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정오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곳곳의 투표소와 해외 주재 러시아 대사관 앞에는 갑자기 몰려든 유권자들이 긴 줄을 형성했다.

이들은 지난달 옥중에서 사망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제안에 따라 투표소로 나온 야권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구호를 외치지도, 플래카드를 들지도 않았지만 가만히 줄을 서는 행위만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반대하는 민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푸틴에 반대하는 정오’로 명명된 이 시위는 앞서 나발니가 지난달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푸틴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은 17일 정오에 투표소에 나가자”고 제안한 데서 시작됐다. 러시아에서 반푸틴 시위는 원천봉쇄 돼 있으나 투표소에 줄을 서는 행위 자체는 당국이 제지할 수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나발니는 지난달 26일 시베리아의 감옥에서 사망했으나 남편의 유지를 이어받기로 한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 나발나야는 지난 6일 유튜브를 통해 17일 정오에 투표소에 나가서 푸틴 아닌 다른 사람을 찍거나 ‘나발니’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쓰자고 호소했다.

나발나야의 호소에 응해 이날 정오에 모스크바의 투표소에 나온 한 학생은 야권의 유튜브 채널에 “역사는 가장 예기치 못한 순간에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여성은 로이터통신에 “희망이 없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투표소에 나온 유권자들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집계하기는 어렵지만 투표소에 따라 수십명에서 수백명 규모였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호주, 일본,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독일, 영국 등의 러시아 대사관 등에 마련된 투표소에서도 각기 수백명이 ‘푸틴에 반대하는 정오’ 시위에 참여했다. 나발니의 측근 레오니드 볼코프는 이날 시위에 참여한 이들이 러시아 내 주요 도시에서만 수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나발나야는 이날 정오 독일 베를린의 러시아 대사관에서 투표에 참여했다. 그가 줄을 서서 투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지지자들이 나발나야의 이름을 외치면서 환호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나발나야는 투표를 마친 후 취재진과 지지자들에게 “줄을 서 준 모두에게 감사하다”며 “물론 나는 나발니의 이름을 적었다”고 말했다.

죽은 나발니가 푸틴 대통령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나발니에게 ‘푸틴에 반대하는 정오’ 시위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야권 정치인 막심 레즈닉은 폴리티코 유럽판에 “나발니는 죽어서도 푸틴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고 있다”면서 “그는 자신의 전 생애를 우리의 자유를 위해 바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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