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카드 같은 작품입니다.”
김광보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연극 <세인트 조앤>을 “언젠가 주머니에서 꺼내고 싶었던 작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세인트 조앤>은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 이야기를 그린 조지 버나드쇼(1856~1950)의 희곡이다. 김 연출이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 부임 후 처음으로 연출을 맡아 내달 5~30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린다.
김 연출은 20일 서울역 인근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초 2015년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릴 생각이었는데 서울시극단 단장에 부임하게 되면서 하지 못했다”며 “스케일이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언젠가는 꼭 도전해보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세인트 조앤>이 국내 무대에 오른 것은 1963년 국립극단 공연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정치와 종교가 타락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주인공 ‘조앤’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 연출은 백년전쟁 시기를 다룬 고전을 무대에 올리기로 한 이유에 대해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동시대성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버나드쇼는 잔 다르크의 영웅적인 면모가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에 치중해 이 작품을 썼죠. <세인트 조앤>은 잔 다르크가 갖고 있던 신념과 가치관이 어떻게 오도되고 무너지고 좌절되는가를 추적하는 연극입니다.”
그는 “연극은 개인의 신념이 사회 구조나 타인에 의해 배제되고 짓밟히며 가치가 전도되는 상황을 그린다”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지속적으로 인간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김 연출은 “버나드쇼가 이야기했듯 이 작품에 악인은 없다.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라며 “특정 인물을 더 선하고 악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충실한 인물들을 그리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김광보 연출은 지난해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하며 3년의 임기 동안 연출 작업은 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예술감독으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하겠다는 의미였는데, 많은 분들이 왜 예술감독이 작품을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전해주셨고 이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니지만 예술감독으로서의 첫 작품이고, 3년 만의 연출작이라 너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첫 리딩을 할 때 전율을 느꼈다”며 “숨어 있던 연출가로서의 감각이 살아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배우 백은혜와 이승주가 주인공 조앤과 샤를 7세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김 연출은 “백은혜 배우와는 한 차례 작업을 함께 한 적이 있는데 새로운 배우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이승주 배우와는 많은 작품을 같이 했는데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 배우”라고 말했다.
조앤 역의 백은혜는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잔 다르크가 가진 힘과 믿음에 대해 주안점을 두고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5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이승주는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이지만 버나드쇼가 어떻게 이들을 그리고 해석했는지 관객분들께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