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등급제 좌담

‘대학 말바꾸기’ 학부모 불신 자초

고교등급제 논란을 계기로 교육현안들이 이념 대결이나 지역간·계층간 갈등 양상으로 번져나가면서 국가 전체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경향신문은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 생산적인 대안을 찾아보자는 의도에서 14일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본사 5층 회의실에서 진행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내신 부풀리기 실태와 고교등급제, 본고사 허용, 새 대입제도안 등에 논박을 벌였고 머리를 맞대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고교등급제 좌담] ‘대학 말바꾸기’ 학부모 불신 자초

▲ 내신 부풀리기와 고교등급제

사회=대학은 왜 수시전형 등에서 고교간 학력차를 반영하는 것인가.

김영수 서강대 입학처장=지난 몇년간 수능시험이나 학력평가 등을 살펴보면 고교간 학력격차가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대학이 그것을 입시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석수 교육부 학사지원과장=학교간 학력차는 수능시험이 충분히 메워줄 수 있다. 학생부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런데 교과 및 비교과, 성취도 등에 대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학교간 학력차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송원재 전교조 대변인=대학입시는 학교 대항전이 아니고 개인경쟁이다. 여기에 학교간 학력차 개념을 도입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학교간 학력차라는 개념은 허구적이다. 여기에서 성적위주 선발에서 잠재능력이나 학습능력에 대한 종합적 판단으로 학생을 뽑자는 수시모집의 취지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김=수능점수가 5~10점 차이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지만 50~60점까지 차이날 경우 이는 분명 학생간 학습 능력차이며 수시전형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데도 특목고와 일반고의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꼴찌도 ‘수’를 받는 내신성적을 어떻게 전형자료로 활용하겠나. 통계학에서는 샘플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보정장치를 인정하고 있다.

송=보정장치, 그 부분을 국민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대학들이 투명하지 못하게 처신하고 있다. 학생들은 지원하는 대학에 대한 정보가 없다. 입시요강에 나와 있지 않은 기준까지 모두 공개해야 한다.

한=200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선안엔 ‘고교의 특성과 교육과정의 특징을 고려해 그 차이를 내부 전형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자율’이라는 조항이 있다. 대학들은 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항변하는데 연세대·이화여대·고려대는 이를 반영한 게 아니다.

김=문제는 부풀려진 내신에 있다. 내신을 신뢰하지 못하므로 대학은 나름의 전형자료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특정지역, 특히 강남에 집중돼 있고 자신의 성적이 선배나 학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문제다.

송=학교간, 학교내에서도 개인간 학력차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학교간의 학력차가 심하다면 이는 사회병리현상으로 봐야 한다. 사회가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고교등급제를 적용하는 것은 반사회적인 것이라 찬성하기 어렵다.

사회=내신 부풀리기가 엄존하고, 이게 문제가 된다면 학교 현장에서 점수를 직접 매기고 주는 교사들은 왜 이의 방지노력을 하지 않는가.

송=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 학교, 학부모, 교사 모두 힘써 막아야 된다. 하지만 내신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이것이 고교등급제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 본고사 문제

김=본고사는 도입돼야 한다. 과거처럼 국·영·수 단일과목에 대한 학습능력을 측정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논술·면접 등 기존에 있는 다양한, 학습능력이나 가능성을 측정하기 위한 도구에다 대학이 따로 마련한 다양한 형태의 측정방법을 도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본고사 도입이 왜 필요한가.

김=학생들의 잠재력과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다. 내신이나 수능 등 교육부가 제시하는 전형자료로는 우수한 학생을 뽑을 수 없다.

사회=교육부는 본고사를 금지하고 있는데 다른 대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우리가 금지하는 것은 논술고사 이외의 필답고사이다. 만약 본고사를 도입할 경우 고교과정은 물론 초·중등교육의 파행이 우려된다. 따라서 본고사 도입을 막을 수밖에 없다.

사회=그렇다면 우수한 학생은 어떻게 육성하나.

한=본고사를 실시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을 판단할 수 있는 도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논술·구술로도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 이공계 활성화를 위해 도입하려는 과학 논술이 그 예다.

사회=그렇다면 영어논술, 수학논술 등도 가능하다는 말인가.

한=모집단위의 특성을 감안한 ‘논술형태의 필답고사’를 다양화하겠다.

송=지금도 본고사 형태의 논술이 사실상 실시되고 있다. 일부 대학이 가르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문제다. 사교육을 별도로 받아야 하는데 이는 고교 교육과정의 파행을 낳는다.

김=그렇지 않다. 미적분이나 철학 등도 고교과정에 포함돼 있다. 문제는 난이도에 있을 뿐이다.

한=고교와 대학간 이해가 부족하다. 교육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고교·대학·교육청간 협의체를 상설화하려고 한다. 교사와 교수가 만나 협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올해부터라도 추진하겠다.

▲ 대학개혁 문제

사회=입학은 쉬워도 졸업장을 따기가 어려워진다면 이같은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엄격한 학사관리를 위한 대학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전적으로 동의한다. 노력하고 있다. 서강대의 경우 매년 입학정원의 5% 가량이 성적불량 등으로 탈락하고 있다.

송=초·중·고생의 학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권이지만 대학만 가면 떨어진다. 대학이 잠재력 있는 학생보다 입시교육으로 훈련된 학생들을 ‘입도선매’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대학이 발전 가능성 있는 학생을 육성하는 쪽으로 선발방식을 바꿔야 한다.

김=학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고교 교사들이다. 그러나 내신과 학력평가 성적은 낮지만 뛰어난 잠재력 있는 학생을 추천해 달라고 할 때 학부모 눈치 안보고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교사가 있는가. 대학이 학생선발 자율권을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2008학년도 이후의 대입제도 등

한=2008학년도 이후의 대입제도 개선안의 기본 취지는 성적우수자 선발 경쟁보다 잠재력 있는 학생을 발굴해 달라는 것이다. 내신 부풀리기를 막고 상설 협의체를 가동하기 위해서라도 빨리 최종안을 확정하는 게 좋다.

송=고교등급제 논란을 보더라도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시간이 필요하다. 특목고 정상화, 고교·대학간 협의체 구성, 내신 부풀리기 방지책 등이 마련돼야 한다.

한=내신평가문제 해결을 위해 학생부 9등급제에다 원점수, 평균, 표준편차까지 제공키로 했다. ‘3불 원칙’의 법령화 등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늦출 필요가 없다.

김=새 대입제도 시안을 보면서 수능 9등급제는 변별력이 적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대입제도는 상위 몇 대학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신 신뢰도를 확보할 것으로 판단해 대학이 양보키로 했다.

송=고교등급제 논란이 단절된 대학·고교간 대화의 소통을 가져왔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은 선발과정에 대한 공정성을 높이고 학교는 내신의 신뢰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면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본다.

한=천주교에서 ‘내 탓이오’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교육계에서도 이 운동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서로를 이해하다보면 해결점이 찾아질 것으로 믿는다.

사회=오늘 토론을 보니 자주 만나서 토론을 하면 국민들의 혼란은 좀 가라앉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리 조찬제·이지선기자 helpcho65@kyunghyang.com〉
〈사회 김종훈 사회부 차장〉
〈사진 남호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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