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정지

빌리 와일더 ‘선셋대로’

스타는 늙지 않는다. 다만 순식간에 사라질 뿐이다.

빌리 와일더의 걸작 ‘선셋 대로’(1950)는 할리우드를 거쳐간 스타의 처연한 뒷모습을 잔인하리만치 똑바로 바라본다. ‘사브리나’(1954), ‘뜨거운 것이 좋아’(1959) 등을 통해 할리우드의 대표적 흥행감독으로 자리해온 와일더가 ‘선셋 대로’같이 자기반영적인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영화는 퇴락한 대저택의 수영장에서 총탄에 맞아 죽은 시나리오 작가 길리스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그는 자기가 죽음에 이른 경위를 관객에게 설명한다.

장면 1

장면 1

인정받지 못하는 작가 길리스는 우연히 무성영화 시절 스타였던 노마의 집을 찾는다. 길리스는 그곳에서 노마의 요청에 의해 그의 복귀작 시나리오를 쓴다. 노마는 길리스에게 연정을 느끼고, 길리스는 날로 집착이 심해지는 노마를 떠나려한다. 길리스는 노마에게 “당신은 50대야. 성장할 때가 됐다고. 25세라고 여기는 50대를 보는 것만큼 슬픈 건 없어”라고 일갈한다. 노마는 “아무도 스타를 떠나지 않아”라고 외치며 길리스의 등 뒤에서 방아쇠를 당긴다.

장면 2

장면 2

잊혀진 스타의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수사·취재하기 위해 경찰과 언론이 출동하지만, 노마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수사 증거물인 총을 들고 온 경찰을 못본 척하며 노마는 화장을 고친다(장면 1). 그러다가 수사관이 “방송 카메라가 와 있다”고 상관에게 말하자 노마는 반응을 보인다. 한때 노마의 남편이자 영화감독이었고, 지금은 저택의 집사로 일하는 맥스는 “공주가 궁전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며 노마를 아래로 불러오고 ‘액션’을 외친다(장면 2). 노마는 “클로즈업할 준비가 됐어요”라고 말하며 기괴한 표정으로 카메라에 다가온다(장면 3).

장면 3

장면 3

대중은 스타를 박제한다. 스타의 눈가에 주름이 가거나 배가 나오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대중의 머리 속에 스타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모습으로만 남아야 한다. 그래서 여성 스타는 나이가 들면 잠적이라도 하듯 사라지게 마련이고, 대중은 또다른 아름다움을 찾아 탐식한다. 여기서 스타는 늙어가는 육체를 인정하고 새 삶을 살 것인가, 환상 속에서라도 젊음을 유지할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성형과 촬영 기술 발달로 요즘의 스타는 영원한 20대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영화 속 노마는 자신의 환상을 공고히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이성을 잃는다 하더라도.

노마 역을 맡은 글로리아 스완슨은 실제 무성영화 시절 스타로, 전작을 찍은 지 9년 만에 ‘선셋 대로’에 출연했다. 극중 노마와 스완슨의 삶은 상당 부분 겹친다. 전직 영화감독 맥스로 출연하는 에릭 폰 스트로하임 역시 ‘탐욕’(1924) 등 걸작을 남긴 감독이었다. 이밖에 이 영화에는 코미디언 버스터 키튼, ‘십계’의 세실 B 드밀 감독 등이 실명으로 출연한다. 이들은 낡은 장난감처럼 버려진 스타의 비극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고백했다.

〈백승찬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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