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보스’

-권위에 맹종하는… 서글픈 자본주의-

[영화 가로지르기]‘오 마이 보스’

‘오 마이 보스’(감독 라스 폰 트리에)는 가짜 사장으로 부임한 무명배우의 이야기다. 회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해고를 책임지고 추진할 악역이 필요했던 진짜 사장은 가짜 사장으로 하여금 그 일을 맡도록 한다.

‘오 마이 보스’에는 라스 폰 트리에의 고유한 인장이 찍혀 있다. 도그마 영화에 대한 감독의 신념이 대사에까지 등장하고, 형식미에 있어서도 관객과의 심리적 거리를 확보하는 개성적 편집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영화에 자신의 모습까지 드러내는 감독은 점프 컷(두 장면 사이를 부자연스럽게 단절시키는 편집기법)을 이용하여 관객의 정서적 이입을 적절히 견제한다. 편집의 위력을 생생한 형태로 보여주는 점프 컷에는 영화라는 매체의 독자적 정체성이 간직되어 있다.

‘오 마이 보스’는 전문성의 신화를 재치있게 조롱한다. 첨단 IT기업의 경영자로 행세하는 무명배우 크리스토퍼의 모습은 허상에 의해 미화된 기업가들을 상징한다. 그래서 ‘오 마이 보스’는 단순한 가짜사장 소동이 아니라 능력에 비해 명성과 위신이 턱없이 부풀려져 있는 기업가 모두에 대한 풍자로까지 읽힌다. 가짜 사장을 둘러싼 소동에는 지위와 능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내장되어 있다. 영화는 능력이나 전문성에 대한 일반적 믿음이 일종의 신화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크리스토퍼(젠스 알비누스)는 전통적 의미의 능력 때문에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 라운(피터 갠츨러)의 평판관리 혹은 이미지메이킹을 위해 고용되지 않는가.

한편 ‘오 마이 보스’의 직원들은 자본의 모든 대리인들에게 본능적으로 공손하다. 그들은 회사의 냉혹한 조직문화에 거부감을 보이면서도, 실제 소유주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체불명의 ‘사장님의 사장님’까지 등장하지만, 직원들은 그 익명의 권위마저도 충실히 추종한다. 자본가에게 부여된 지엄한 권위 앞에서, 그들은 권위의 허상을 직시하려는 일체의 노력을 포기한 채 권위가 수반하는 화려한 후광에 현혹되고 만다. 그들이 사장의 비정한 행태에 대해 묵인하거나 회피하지 않았다면 사장의 정체가 그렇게 오랫동안 은폐될 수 있었을까. 감독은 자신의 앞날을 자본가에게 위탁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반응을 놓치지 않는다.

[영화 가로지르기]‘오 마이 보스’

‘오 마이 보스’의 대사처럼, 배우에게 관객은 법이고 무대는 법정이다. 그러나 배우가 단지 현실로부터 격리되어 무대에 유폐된 존재라면, 그가 과연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관객과의 소통이 운명인 배우가 밀폐된 자의식의 세계에 갇힌 은둔자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창하는 예술지상주의는 자칫 예술가의 나르시시즘에 불과할 수 있다. 크리스토퍼가 자신의 역할모델로 숭배하는 ‘감비니’는 실존 배우가 아니라 라스 폰 트리에가 길에서 우연히 만난 트럭의 이름이다. 가상의 인물 감비니를 원용하여 자신만의 연기론을 변호하는 크리스토퍼는, 현실에서 유리된 채 예술지상주의의 포로가 되어버린 예술가들을 상징한다.

배우의 진정한 임무란 과연 무엇일까. 가짜 사장 크리스토퍼는 자신의 배역과 대사에만 관심이 있다. 그가 직원을 해고하는 악역을 맡지 않으려는 것도 배우로서의 자존심 때문이지 해고의 부당성에 대한 확고한 자각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그는 직원들의 해고를 초래할 매각계약서에 마침내 서명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크리스토퍼는 자신이 숭배하는 배우 감비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충동적으로 계약서에 서명한다. 해고된 직원들의 운명에는 아랑곳없이 자신만의 예술에 몰두하는 크리스토퍼의 마지막 모습은, 자폐적 순수예술이 결국 자본가와 권력자들의 이익에 복무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준다.

볼테르는 진실보다 평화가 더 소중하다고 충고한다. 반면 셰익스피어는 연극의 목적은 자연을 거울에 고스란히 비추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어쩌면 예술가의 숙명은 평화로운 거짓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롭지 않은 진실을 증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 마이 보스’에는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서글픈 자화상이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권위에 맹종하는 직원들, 가공된 이미지로 자신을 체계적으로 미화하는 자본가, 그리고 자신만의 관념적 예술세계로 도피한 예술가까지. 사람을 진실의 거울에 비추는 것이 예술이라면, 자본주의 사회의 부속품이 되어 버린 우리들의 초상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의 몫일 것이다. 그것을 거부하고 ‘순수예술가’라는 호사스러운 칭호만을 탐한다면, 결국 크리스토퍼처럼 힘 있는 자들의 충직한 공모자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황승현 영화평론가 hinn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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