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카핑 베토벤-9번 교향곡 ‘합창’의 미학

-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출연 에드 해리스·다이앤 크루거-

[영화 리뷰]카핑 베토벤-9번 교향곡 ‘합창’의 미학

고전음악 작곡가 중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만큼 스크린으로 옮기기 좋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변화무쌍한 음악, ‘청력을 잃은 작곡가’라는 극적인 삶, 그에 따른 대중의 인지도 면에서 베토벤의 삶은 좋은 영화 소재다.

11일 개봉하는 ‘카핑 베토벤’(원제 Copying Beethoven)은 9번 교향곡 ‘합창’ 작곡을 전후한 베토벤 말년을 그렸다. 영화는 조카를 제외하고는 왕래하는 가족도 없었던 괴팍한 작곡가가 청력을 잃은 채로 어떻게 위대한 교향곡을 작곡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합창’ 초연 당시 베토벤이 엄청난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서있자, 한 여성이 무대에 올라 베토벤을 뒤로 돌려세워 환호에 답하게 했다는 에피소드를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편다.

베토벤은 9번 교향곡 작곡을 앞두고 연주용 악보를 제작할 카피스트를 찾는다. 음대 우등생인 안나는 위대한 작곡가를 만나 자신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일을 떠맡는다. 여성 카피스트에 대해 회의하던 베토벤은 안나의 재능을 본 뒤 그에게 신뢰를 보낸다. 그러나 괴팍한 베토벤과의 작업은 쉽지 않다. 어느덧 ‘합창’ 초연이 다가오고 베토벤은 제대로 듣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지휘봉을 잡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안나는 무대 뒤에서 베토벤의 지휘를 돕는다.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주연을 맡았던 ‘토탈 이클립스’를 통해서 광기어린 시인 랭보의 삶을 그린 적이 있다. ‘카핑 베토벤’이 그려낸 위대한 예술가 베토벤도 대중이 상상해온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안하무인에 변덕은 죽끓듯 한다. 오만함은 하늘을 찔러 신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은 음악으로 신과 대화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합창’ 초연 장면이다. ‘음악 영화’라는 정체성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이 장면은 10분 이상 지속돼 보여진다. 오히려 이 장면 이후 감독은 큰 미학적 욕심을 부리지 않고 이야기를 안전하게 마무리하는데 주력하는 듯 보인다. 좀 더 새로운 영화적 해석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아쉬울 법도 하다.

그러나 어떤 영화도 베토벤의 ‘합창’을 넘어서는 미학적 성취를 전해주기는 쉽지 않을터다. ‘합창’으로 향하는 길을 어렴풋이 안내하는 것만으로도 ‘카핑 베토벤’은 그 소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백승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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